136화 136화 들리는 괴소문
“이 씨발같은곳에서 언제 나갈수 있답니까?”
“그러게다. 윗대가리놈들만 외출가능한게 나도 불만이긴하지.”
“담배나 원 없이 빨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개새끼들 한갑에 오만엠포인트는 니미럴.”
“난 어디 모텔이나 들어가서 여자하나 불러서 원없이 놀고싶다.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템 몇개는 팔아야겠지만.”
“에휴. 이제 다와가니 준비하자.”
“예이.”
부스럭ㅡ
“경계중 이상 무.”
불만을 토로하던 두 사내가 지척으로 다가온 남자에게 군대식를 방불케하는 태도로 보고하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별 문제없고? 교대까진 얼마나 남았지?”
“네, 문제없습니다. 늘 보던 빨간 하늘과 움직이지 않는 나뭇가지들, 울리지 않는 알람 모든게 다 좋습니다. 교대까진 1일남았습니다.”
“혈월길드의 일, 들었나?”
“알고있습니다.”
* * *
악신진영에서 무시 못할 세력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혈월길드.
길드를 이끄는 길드마스터 중국인 플레이어 슈에밍휘(薛明輝 / Xue Minghui).
현실 세계에서 중국 출신의 고고학자이자 역사학도로서, 공산당의 철저한 문화 검열을 겪었다.
‘금기’로 찍힌 주제를 연구할 때마다 연구 자료가 압수되고 학계에서 배제되었고 끔찍한 트라우마로 이어졌다.
[신의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YES/NO]
결국엔 군홧발이 척척 걸어들어왔다.
공산단원의 ‘검열’이 지나간 뒤, 연구실은 처참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서랍은 뒤엉켜 열려 있고 서류는 바닥에 흩어졌으며, 책장의 일부는 산산조각 나 있었다.
쓰러진 동료 학도들의 몸은 어딘가에 짓눌린 듯 비틀려 있었고, 누군가는 아직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머리 뒤통수에 남은 둔탁한 통증이 점점 더 뚜렷해지며, 곧 눈이 감길 것만 같은 어지러움과 함께 끔찍한 타박상이 겹쳐오고 있었다.
[게임에 참가하셨습니다.]
[당신은 이제부터 ‘Player'로 활동하게 됩니다.]
포탈을 통과한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전투와 생존의 반복으로 굳어졌다.
생존, 생존!
시간을 나눌 틈은 전혀 없었다. 붉은 하늘은 해가 지고 뜨는 구분조차 무의미해졌고, 붉은 하늘 아래에서의 하루는 비정상적으로 이어졌다.
밤과 낮이라는 개념은 희미한 환영에 불과했고, 휴식이나 수면을 위한 여유는 아예 배제되었다.
잠깐 눈을 붙이는 것도 사치였고, 쉬는 시간 따위는 규칙이 아닌 사라진 권리였다.
몬스터들과 싸우며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갔고, 발톱에 찢긴 몸은 곧 흔적이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폐허 속에서 오래된 고문서를 발견했는데, 그 문서에는 인포탈의 ‘언어체계’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더 깊이 탐색하자, 얼핏 자연의 조형물이나 본능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히 지능을 가진 존재가 설계한 건축물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고, 인간의 손길이 닿은 금속과 도구들이 비밀스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발견은 단순한 유물 이상의 의미를 지녔고, 그녀의 목적과 집념에 새로운 불씨를 지폈다
그녀의 집착은 생존에서 ‘자유로운 문명 재건’으로 승화되고 말았다.
‘이 곳에서라도!’
고대 유적을 발굴해 혈월 길드의 힘을 강화함과 동시에, 현실에서 억압받던 '문화 유산'을 이곳에서 되살리려는 야망!
법이라는 규범이나 인류가 쌓아온 제도가 통째로 사라진 이 세계는 근본부터 판이하게 달랐다.
질서와 정의를 유지하던 규범은 붉은 하늘 아래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오직 힘만이 채웠다.
사람들은 법적인 보호를 기대할 수 없었고, 생존은 곧 곧바로 힘의 우열로 환원되었다.
그 결과 사회는 지배계급과 하층민으로 나뉘었고, 권력을 쥔 자들은 철저하게 목줄을 쥐어 짜며 무자비하게 통치했다.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던 제도는 없었고, 약한 자는 짓밟히며 강한 자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 세상에서 슈에는 문명을 찾아내고 되살리는 일에 집착했다. 그 집착은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억압받던 본인의 기억과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되살리려는 치열한 집념으로 구체화되었다.
슈에는 조금이라도 문자나 인위적인 모양새를 띄고있는 곳이라면 길드원들을 끌고나갔다.
“고대의 문자와 기계 잔해로 보이는 모든 것들은 우리 혈월 길드의 힘을 키울 자원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더 이상 억눌림을 받지 않고 힘을 쌓을 수 있다. 공산당의 낙인? 나는 보았다. 묶였던 문화 유산들을 이제는 해방시켜! 새로운 문명으로 꽃피우겠다. 더 나아가… 포탈 밖에서도ㅡ!”
그곳이 던전이던, 필드이던, 미개척지던 상관없이!
하지만 그 탐사는 종종 재앙을 불렀다.
미개척 던전 깊숙이에서 깨어난 고대 수호령이 길드원을 삼키거나, 필드의 몬스터들이 집요하게 추적하며 길드원들의 신체를 손수 으깨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그녀는 ‘피의 미친 악녀’로 소문났고, 그 소문은 자연스레 증오로 번졌다.
“저 여자가 왜 아직 숨 쉬고 있는 거야? 우리 형제들을 몬스터 밥으로 바쳐놓고선 태평히 튀어버렸어! 살려 돌아온 건…피를 얼마나 빨아먹었으면.”
그런 분노가 쌓일 때마다, 슈에를 노리는 칼날이 번뜩였다. 그러나 그 칼날은 결코 그녀의 목을 스치지 못했다.
그녀의 손가락에 가르켜지는 즉시 칠공에서 피가 흐르고 단숨에 근육이 미라처럼 쪼그라드는 현상을 본 플레이어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압도적인 사기스킬이라지만, 결국 그녀도 사람의 한계를 염두한 암살작전들은 슈에밍휘를 제 목숨보다 아낌 없이 지키는 리화룡(李華龍 / Li Hualong), 장천위(張天偉 / Zhang Tianwei), 왕린영(王琳影 / Wang Linying) 철혈 삼인방에게 금세 막히기 일수였다.
리화용은 불의 벽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검이나 갑옷의 형태, 혹은 커다란 벽의 형태로 보호했고.
장천위는 천기예측으로 슈에의 위치를 은폐하고 적대길드에 스파이를 심어 초토화하기 일쑤였고.
왕린영은 혼의 그림자로 슈에의 환영을 만들어내거나, 본모습을 숨기고 환각독을 뿌려대며 다수의 인원을 혼자서도 상대하는데 능숙했다.
셋의 완벽한 연계 때문에 슈에에 대한 암살 시도는 거의 대부분 포기되었다. 리화룡의 불의 방벽, 장천위의 은폐와 기만, 왕린영의 환영과 독기술이 서로 맞물려 단 한 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슈에의 ‘문화혁명’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삼인방의 변함없는 충성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 * *
빨간 하늘은 더 붉은 것 같고, 해와 달이 있다가도 없는 평범한 어느날.
숲에서 아직 몬스터들에게 당하지 않거나 혹은 사기스킬, 천부적인 재능으로 인해 간신히 살아남은 신입들을 붙잡아 노예로 팔아넘기는 루키 슬레이버(Rookie Slaver) 토우치는 오랜만에 3명의 신입을 줄줄이 잡아 신났다.
토우치는 주변에선 자신이 천한 노예상이라 손가락질 하는것은 상관하지 않았다. 정작 자신을 욕하는 자들은 살기위해 인간이면서 스스로 살아있는 개가 된 주제에 말이다.
방금전엔, 노예가 주제에 합심하여 자신이 자는 동안 습격해 볼에 기다란 상처가 났지만, 팔아 넘겨 받을 보상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기에 넓은 아량을 펼쳐 어깨뼈를 가루로 만드는 벌로 합의봤다.
목에 구속구를 채워 연결해 끌고가니, 개를 산책시키는 굴욕적인 꼴이 되었다.
“아~ 3명이라니~ 상등품 3명~”
신입들은 한쪽 어깨뼈가 그의 두터운 손에서 너무나도 쉽게 바스라지는 악몽을 겪고나선 입을 다물고 말았다.
“더 습격해. 내가 자고있으면 니들한테 죽을줄 알았냐? 걱정마, 거긴 그나마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까. 네놈들 숲에서 사는 것 보단 낫겠지. 크케케. 끌고가는 동안은 내가 몬스터들을 처리해주니 안전을 보장받은거 아냐? 그러니 내게 감사해야지!”
토우치는 이쯤이면 혈월길드의 길드원들이 어디선가 은밀히 숨어 경계를 서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휘익-
짧은 휫바람이 공기를 타고 저 멀리 퍼졌다. 나뭇잎이 잔잔히 떨리고 흙먼지가 미세하게 일었지만, 그 끝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빛조차 없었다. 아무 소리도, 아무 움직임도 되돌아오지 않는 그 침묵은 오히려 더 큰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평소라면 반사되어 번쩍였을 금속성의 빛,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경계병의 기척 같은 것들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경계병들 다 처 자나? 킥킥…그럼 몰래 들어가봐?’
그랬다간 목이 땅에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분명히 아는 그는 그리 무모하게 굴지 않았다. 상황을 직시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스스로를 지켰다.
벨트에서 조그마한 거울을 꺼내 경계병이 있을 법한 곳으로 비춰봤지만, 반사된 빛은 아무런 반응도 되돌려주지 않았다. 주변의 잔잎과 흙먼지만 미세하게 떨릴 뿐, 침묵만이 깊어졌다.
토우치는 직감적으로 머릿속을 강타하는 위기 신호를 느끼며 몸을 돌려, 자신이 소중히 여겨 이름까지 붙여둔 단검을 뽑아 들었다. 손잡이에 남은 기름때와 칼날의 미세한 흠집까지 익숙한 손길로 훑으며 경계태세를 갖췄다.
그를 끌고 온 신입들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가도, 목을 꿰맨 줄에 의해 다시 앞으로 끌려오고 말았다. 줄이 당겨질 때마다 그들의 숨소리는 더 가늘어졌고, 눈동자는 두려움으로 흔들렸다.
괴물 같은 힘이 주변 공기를 밀어내는 듯 느껴졌다. 세 사람이 뒤로 물러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그 힘은 마치 보이지 않는 사슬로 그들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신입들은 한 번 더 그 무지막지한 끌림 앞에 완전히 굴복하며 몸을 내맡겼다.
“팔콘으로 잘라줄테니까, 저어기 보이지? 저기로 갔다 와바. 도망치려면 해봐.”
끌려온 자는 그랬다간 저 괴물보다도 더 괴물같은 남자에게 붙잡혀 이번엔 반대방향 어깨가 으스러질것을 알기에 덜덜떨며 시키는대로 가르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똑똑히 보고와야혀.”
잠시후, 다급하게 되돌아오는 신입을 보며 토우치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여? 나도 뛰어야혀? 괴물있는겨!?”
“그, 그게 아니라요!”
“뭔디?”
“웁, 우웩, 우윽, 빨리 여기서 도망쳐야돼요!”
“그래? 일단 숨어야겠구먼.”
경계하기 쉬운 곳으로 다 같이 몸을 숨긴 뒤, 토우치가 신입의 목을 다시 구속구로 단단히 묶으며 말했다. 급히 이동해 허파를 탁탁거릴 만큼 숨이 가쁜 그들은 모두 입으로 거친 숨을 내뱉었고, 뜨거운 숨결이 어깨 위로 퍼졌다.
“이제 말해봐. 안에서 뭔 일이 있었는겨?”
“으으……다죽었어요. 살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뭐? 다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