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148화 오랫만에 만난 야니에게 로터 2개 쑤셔넣고 돌아오기. 기한은 나도 모른다.
미레와 밝은 훗날을 꿈꾸며 웃음소리가 감도는 순간.
그녀의 머리칼.
맑은 하늘을 닮은 은빛 광채가갑자기 가슴을 파고들었다.
공기 중에 남아있던 그 은은한 향기와 손끝에 남은 따스한 온기까지 떠올라 참을 수가 없어 바헬무토 저택이 자리한 층으로 발걸음을 옮겨볼까, 짧게 다녀오자고 마음먹었다.
허나 나가는 문고리를 잡았을때 에스틴의 말이 자꾸만 신경을 긁었다.
-너 태어나기 이전의 삶이 있었어. 이번 삶이 두 번째야?
또 나의 좋지 않은 표정을 보면 미레가 걱정할것이 뻔해 마지막으로 에스틴에게 묻고 훌훌털고 가기로 결정했다.
‘쩝. 내가 지금 환생이라도 했단 거야? 도대체 뭐지?’
머리를 싸매며 자문자답해도 돌고돌아 결국 한번 더 만나서 물어보는 것 밖엔 답이 없다고 생각됐다.
헬레나는 아침…아니, 이곳에선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출근”을 했다.
은발을 묶고, 검은 망토를 두르고.
그녀는 아까 그 코 고는 소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위엄 있고 차가운 표정으로 방을 나서면서 마지막으로 나를 힐끗 보더니,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결국 왜곡을 걸어 미청년의 모습을 보이기 싫은지 황급히 문을 닫았다.
‘…뭐였지 지금?’
저럴꺼면 왜 단장을 했을까? 생각하다가도 저것이 진정한 [자기만족]이란 것에 경외감이 들었다.
‘그래. 마족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추구하는 존재들.’
아니면 내게 보여주려고?
생각이 끝나자 고요가 찾아왔다.
혼자 남았다.
거대한 방 안에서 나 혼자.
침대에 널브러져 한 로맨스 소설의 중반부를 읽고 있을 때, 소설 속 공기는 갑자기 무거워졌다.
페이지를 넘기자 평화롭던 서사는 전장의 서곡으로 바뀌어 두 나라가 서로의 영지를 침범하고, 드래곤이 떠나 홀로 남은 황무지를 차지하려 무력을 과시한다는 묘사가 등장했다.
전쟁이라.
송곳니에 새겨진 마법진들.
“어금니 부족의 오크들이 전쟁을 준비하던데 말이야.”
그 물자들은 아무렇게나 흩뿌린 잡동사니가 아니었다.
박스마다 규칙적으로 정렬된 물품들, 쇳소리로 박힌 봉인표와 계산된 무게감이 느껴졌고, 공기에는 목적을 증명하는 기름냄새와 방부제, 그리고 전쟁을 위해 준비된 금속 냄새가 배어 있었다.
모든 것이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배치되어 있었고, 그 의도는 저마다의 궤적을 따라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야니가 살고 싶다했는데. 전쟁하지 말아달라 할까? 그렇다기엔 야니는 내 입장에서도 영 껄끄러운 존재란 말이야.”
천계와 내탁하는 루시퍼의 휘하 부하.
야니의 뜻은 아니겠지만 그 충성심 하나만은 대단했지.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다 …그때의 섹스가 떠올랐다.
야니의 애널은 상상 그 이상으로 탄력 있고 촉감이 깊어, 다른 곳과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마치 질긴 과일의 속살을 씹는 듯한 쫄깃함과, 은근히 스며드는 온기가 뒤섞여 있었다.
공기의 움직임마저 달라지는 그 지점은 혀끝으로 누비던 감각과는 다른 종류의 쾌락을 남겼다.
거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듬직한 그녀의 체격은 포옹하면 온몸을 뒤덮는 포근함을 주어, 안길 때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게감 있게 포획되는 감각을 선사했다.
쾌락을 갈구하는 그녀의 눈빛과 목소리를 떠올릴 때면 온몸의 신경이 한데 모여 성기의 끝이 경직되려는 충동을 일으켰다.
숨결이 가늘어지고 손끝이 저리며, 곧 터질 듯한 긴장이 전신을 감싸는 느낌이었다.
‘한 번만 더 만나봐?’
침대 옆 테이블을 보니 작고 정교한 은빛 벨이 놓여있었다.
‘아, 맞다.’
헬레나가 나가기 전에 말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이걸 누르세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황급히 설명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시, 시종이 바로 달려올 거예요.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아마도 집사가 제일 먼저 달려오겠지만…
데엥ㅡ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렸다.
똑똑똑!
놀라웠다.
벨 소리가 울린 지 채 10초도 안 되어서!
집사 한 명이 공손한 자세로 문 앞에 서 있었다. 허리를 살짝 숙인 채, 두 손을 배 앞에 모으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김남주님?”
나는 문틈으로 복도를 힐끗 봤다.
‘…어?’
복도 끝에 여러 명의 시종들이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정확히 세어보니 여섯 명.
모두 벽에 일렬로 서서, 마치 군인처럼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감옥에 야니라는 오크종 여자가 있는데. 알아?”
집사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그는 문밖으로 나가 복도의 시종들과 자신들만의 대화 수단으로 나눴다. 보통이라면 다른 마족이나, 당연하게도 내겐 들리지 않았어야 하지만.
내겐 또렷하게 들렸다.
"야니? 그 반역자?"
"김남주님이 왜 그녀를…?"
"모르겠어. 일단 확인해."
"기록 찾아봐, 빨리!"
한 시종이 어디론가 뛰어갔다 돌아왔다.
마념으로 빠르게 정보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있어. 지하 특별감방."
"혐의는?"
"천계공모죄, 마계내란죄… 48개 항목."
"…극악범이잖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가 다시 들어왔다.
표정이 더 굳어져 있었다.
“네, 있습니다.”
그는 정중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천계공모죄, 마계내란죄 2종의 극벌과 더불어 약 48개의 혐의가 그녀의 밑으로 기소되어있습니다.”
“맞아. 그녀를 보고싶어.”
“……!”
시종의 눈이 재빠르게 이리저리 굴러갔다. 나의 의도를 짐작하려는 셈이나.
"뭐야, 왜 반역자를 보고 싶다는 거야?"
"설마 아는 사이?"
"위험한 거 아냐?"
"어떻게 하지? 헬레나님께 보고해야 하나?"
집사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하지만 그는 훈련된 전문가였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직접 처벌하시겠습니까?”
‘엥? 아냐!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 같군.’
좌우로 고개를 휘저었다.
"일단 모셔드려. 헬레나님 명령이 최우선이야."
"김남주님이 원하시는 건 들어드려야 해."
"대신 경비 강화!"
"알았어!"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시종의 안내에 따라 수직포탈을 이용해 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어갔다.
이후 층이 적히지 않는 곳에 내렸다.
“이쪽입니다.”
집사가 앞장서서 걸었다.
복도 양옆으로 감방들이 보였다.
두꺼운 철문. 작은 창살.
안에서 신음 소리,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한참을 걸어 복도 끝에 도착했다.
다른 감방들과는 확연히 다른 문이 있었다.
더 두껍고, 더 크고, 마법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치 활화산 안에 있는 듯 전신을 화끈하게 덮쳐오는 열기가 느껴졌다.
“특별감방입니다.”
집사가 설명했다.
“극악범들을 수감하는 곳입니다. 봉마진이 그려져 있어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두 명의 중무장한 경비가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집사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경비들이 자리를 비켰다.
“저는 이곳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저 간수가 야니에게 데려다줄껍니다.”
고개를 숙이는 시종의 얼굴와 목덜미로 땀이 번지르르 흐르고 있었다.
이 더운 곳에서 대기한다고?
음…그래. 어디 시원한 곳에서 대기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고개를 끄덕이곤 시종을 지나쳐 간수의 안내를 받아 야니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감방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하지만 텅 비어있었다.
침대도, 책상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차가운 석조 바닥과 벽뿐.
그리고 그 중앙에.
'…저게.'
나는 숨이 막혔다.
전신을 옭아매는 구속복을 입은 채로 묶여있었다.
팔은 등 뒤로 꺾여 있었고, 몸통은 단단한 끈으로 감겨있었다.
그녀는 많이 야위어져 있었다.
몰아쉬는 거친 숨으로 몸 상태를 눈으로 알 수 있었다.
아니, 야위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예전의 야니는… 거대했다.
오크족 특유의 우람한 체격. 근육질 몸. 2미터가 넘는 키.
현역 전성기의 레슬링 선수 같은 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아…’
크기가 줄어들어 있었다.
키도, 체격도.
그때에 비해 절반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학급에서 말랐다고 유명해진 아이 정도?
아니, 그보다도 더 작아 보였다.
중간에 두터운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투명했지만, 손가락 두 개 두께는 족히 되어 보이는 강화유리.
마법진이 표면에 빛나고 있었다.
“특수 마법 강화유리입니다. 죄수와의 직접 접촉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유리 너머로 야니가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버튼을 누르시고 마이크에 대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버튼에 손을 뻗었다.
딸깍.
“야니.”
그녀는 생기 없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때의 투기넘치던 안광은 꺼져버린 듯 했고 이제는 죽을 날만을 고대하며 날을 받아놓은 노파같았다.
“꼴이 웃기죠? 마력을 오랫동안…… 흡수하지 못했어요.”
“이 곳에 있으면 그렇게 되는건가?”
“……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에요. 저는 방금 태어난 오크아이에게 목이 부러질 정도일꺼에요.”
목에 힘이 없어 자꾸만 고개가 휘청거렸고 그녀의 푸석한 머리칼이 빳빳한 빗자루처럼 허공에 휘날렸다.
“우연히 어금니 부족을 봤어.”
“아…… 제 고향을 보셨군요. 어떻던가요?”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데?”
생기라곤 없던 그녀가 자신의 전신을 쥐어짜 악 지르듯 외쳤다.
“ㅡ! 네!?”
“마족은 참 내통, 스파이, 정쟁이 치열한 것 같아. 어디서나 스파이가 있어.”
“더 자세히 말씀을…!”
“구역별로 물자들이 나눠져있더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분위기도 흉흉하고.”
“아아아아ㅡ!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엎드리라고 했건만! 도망치라고 했건만!”
어이가 없었다.
자신떄문에 부족 전체가 멸절의 위기에 놓여져있음에도 원통해하다니.
궂이 그 점을 지적하며 꾸짖는 대신.
“네 부족의 멸종을 취소시켜줄게.”
야니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잔뜩 긴장한 눈은 나를 절대로 놓히지 않겠다는 듯 내게 고정되어있었다.
“그리고 너도 살려줄게. 살고싶다며?”
“어, 어째서! 그런 자비를?”
솔직히 말하면 너의 몸이다! 라고 하기엔 분위기가 너무 치우쳤다.
……그리고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에 놔두고 싶지 않았다.
마왕성 병력의 진군은 어금니 부족에게 있어 ‘둠스데이’나 마찬가지 일것이다.
부족들은 죄가 없잖나.
야니만 내 손에서 조종한다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난 이미 늦었었거든.”
야니는 내 말의 의도를 추측하기 위해 그 없는 몸에서 힘을 짜내어 뇌로 보냈다.
“……?”
“재앙을 한 번 맞았어. 모두가 죽을 날을 받아놓고 저항했었어.”
“남주님…당신이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러다 구원받았어.”
야니가 읊조리며 말을 천천히 따라했다.
“구……원. 구원구원구원구원.”
“나라면.”
“구원, 구원!”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어. 그러니 할 수 있으니 하는거야.”
“원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래.”
나의 손끝이 야니를 가리켰다.
대상이 된 야니는 헬쑥한 얼굴로 나의 하명을 기다렸다.
“넌 이제부터 내 개가 되는거야. 짖으라면 짖고, 물으라면 물어야해. 평생의 종이 되는거야. 그리하면 넌 네 부족의 구원자가 될꺼야.”
“그러겠습니다.”
“하나 물어봐도 될까?”
“……네.”
“넌 처음에 네 부족이 마대륙에서 사라지던 말던 신경쓰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왜 생각이 갑자기 바뀌었던거야?”
야니는 눈을 감고 고개를 위로 치켜들며 한참을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남주님 때문입니다.”
“나?”
“당신에게선 세상을 바꿔버리겠다는 루시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상을 바꿔? 왜?”
무슨 불만일까?
“마대륙의 생리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천적으로부터 비틀어졌습니다. 영지에 속하지 못한 부족들이나 집단들은 야생마물들에게 언제나 목숨을 위협받으며 커야했지요.”
내가 모르는 마계의 생리가 또 한번 흘러 나왔다.
그러면서 지구의 사회와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생명체가 살아가는 모든 곳이 닮은 걸까.
“생존을 위한 생존. 그럼 강자에게 머리를 숙이지 그러지?”
“받아주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야생마물을 상대하면 그들이 받아쳐야할 야생마물들의 수가 줄겠지요.”
“필터역할을…….”
“맞습니다. 저흰 사이에 껴서 밑에서 치고올라오는 야생마물들을, 위에선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진 않지만 배척하는 영지. 그 사이에서 천천히 말라죽어가는 입장이었습니다.”
야니의 눈가에서 두 줄기의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여기까지만 하지. 간수에겐 말해 놓을테니 넌 그동안 나에게 목숨을 바쳐 따를 각오를 해둬.”
떠나기 전 그녀의 몸안으로 탐욕의 힘을 집중시켜 뒷구멍과 보지에 각각 마력으로 이루어진 ‘로터’를 생성했다.
위이이잉ㅡ지이이잉ㅡ!
“하윽!?”
“잘 흡수해둬. 너가 느끼면 느낄수록 마력을 주는 생명줄이니까.”
“아, 아으……아윽! 가, 감사합…으읏ㅡ!”
“그래. 다음에 볼 땐 구속복의 차림이 아닐꺼야.”
문을 닫고 나선후 간수에게 귀뜸했다.
“야니, 곧 내 개가 될테니까 저 구속복은 풀고. 딱히 조치는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마왕의 손님이란걸 이미 알고 있는 간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수첩에 나의 말을 적어넣었다.
수첩을 자신의 가슴팍에 넣고는 나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수직포탈에서 내려 다시 헬레나의 방에 도착한 나는 벌러덩 침대에 누웠다.
“아~ 복잡하다, 복잡해.”
그렇게 단편 로맨스 소설의 막장을 다 읽고 표지를 덮을 쯔음 방으로 통하는 복도에서 인기척과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닫힌 문 앞에 잠시 서더니, 권능 왜곡이 감지됐다.
곧 이어 찰랑한 은발을 휘날리며 헬레나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은안에는 방 전체를 훑어보며 무언가를 찾는 시선이었다.
“어! 정말 아직 있었어! 와아!”
폴짝폴짝
내가 떠나지 않은게 그렇게 반가운 걸까.
자리에서 일어나 두팔을 벌려 그녀를 반겼다.
“고생했어. 헬레나.”
헬레나의 걸음이 느릿해지더니 곧 멈췄다.
푹 숙인 그녀의 고개를 따라 두방울의 눈물이 떨어졌다.
이내 손등으로 그것을 훔치며 내 품으로 안겨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