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164화 가설
장미연은 쉬지 않고 입술을 오물거렸고, 그 사이사이 침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얼굴선을 따라 줄줄 흘러내렸다.
재갈 사이로 새어나오는 신음이 거실의 정적을 갈랐다.
“흐으읍,으,읍!”
짧고 날카롭게, 칼끝으로 살을 가르는 소리처럼.
“왜? 할 말있어?”
고개를 까딱 기울였다.
“성유물을 돌려달라는 말을 할꺼라곤 생각안해.”
장미연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방금까지 날카로웠던 오만함은 한 번에 흩어지고, 남은 것은 마치 숨을 갈구하는 짐승처럼 꺼칠한 간절함이었다.
이상했다.
저건 장미연의 눈이 아니었다.
턱으로 미연을 가리키자 야니는 느릿하게 움직였다.
미연의 입에 박혀 있던 젖은 재갈이 턱을 스치며 떨어질 때, 끈적한 침이 재갈 끝에 실처럼 늘어졌다가 툭 끊겼다.
“하아, 하아. 주인님.”
질끈 흘러내리던 침이 가늘고 끈적한 실을 그어놓다 툭 끊겼다.
그 한 순간에 미연의 입술이 벌레 떨듯 파르르 떨렸다.
“사실 전 미연이 아니에요.”
눈을 가늘게 뜨며, 숨결이 마치 말라붙은 잎사귀처럼 들쭉거렸다.
“분신마다 다른 이름이라도 있단거야?”
“비슷해요.”
그녀의 눈빛이 또 바뀌었다.
전의 목마른 간절함은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속은 텅 빈 껍질처럼 공허가 깔렸다.
“저는 체르토에요. 후우.”
장미연의 개소리따윈 더 듣고싶지 않았다.
[정신 지배]
당황할 틈 새도 없이ㅡ
안광이 서서히 꺼져갔다.
희미해지더니 멍한 눈의 여자만이 그곳에 남았다.
꼭두각시처럼.
“무슨 말이야?”
“장미연의 다중 인격중 하나입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퍼즐 조각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뭐? 기생충의 이름이야?”
“비슷합니다.”
체르토의 목소리는 단조로웠다.
감정이 배제된 기계음 같았다.
“기생충이 부화된 육체는 원본의 모습으로 변태하되, 인격을 다르게 심을 수 있어요. 저는 장미연이 가진 세개의 인격중 하나에요.”
세 개의 인격.
“……그래서 어쩌라는거지?”
“저는 사실 죽기위해 여기에 왔어요.”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장미연은 그게 쉽지 않을 꺼라고 코웃음 쳤지만.”
“당장 죽여줄 수 있지만.”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일정한 리듬.
하지만 그 소리가 거실에 묘한 압박감을 더했다.
“정보를 다 뱉어내야지?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될 만한 정보만 추려서 말해봐.”
“네.”
체르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에 걸린 구속 장치가 철컥 소리를 냈다.
“장미연은 현재 악신진영을 통합했다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세력을 갖췄습니다.”
“확신하네?”
“그녀의 능력은 이질적입니다. 신체를 강화시켜주거나 공격스킬따윈 없습니다.”
체르토가 잠시 말을 멈췄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고요한 거실에 또렷이 울렸다.
“하지만, 상대방을 자신에게 종속시키는 테이밍스킬이 있죠.”
“테이밍?”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대상이 같은 플레이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법은?”
“장미연은 모든 괴물들로부터 성적매력을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유혹이죠.”
체르토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이후 성교를 통해 지배합니다. 그녀의 능력은 이종교배.”
“미친…….”
괴물과 섹스?
시은의 두 눈이 더 깊게 어두워졌다.
숨이 칼날처럼 얇아졌다.
경멸이 체르토를 찍어눌렀다.
“어떤 이종간이든?”
“네.”
“역겹네.”
시은과 샌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입가까지 올라오던 역겨움이 손등 아래로 눌려져 들어가는 듯했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숨소리가 작게 끊겼다.
장미연이 왜 그토록 많은 괴물들을 거느릴 수 있었는지, 그 이유가 서서히 현실의 냉기처럼 다가왔다.
시은의 머릿속엔 괴물들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크기와 형태는 달랐지만, 그 모든 눈빛과 냄새와 움직임이 한 압축된 패턴으로 겹쳐졌다.
오늘 낮, 상대했던 괴물들은 모조리 다……
“악신진영의 대가리가 되서 할 일이 뭔데?”
“마대륙으로 넘어가 한 플레이어를 찾는겁니다.”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뭐?”
몸이 앞으로 숙여졌다.
“마대륙으로 넘어간다고?”
아스나 헬레나가 말하길 가끔 성유물 탐험가들이 성까지 들어와 물건들을 훔쳐가는데 성공했다곤 들었다.
그래.
오직 여신진영 뿐이었다.
악신진영의 놈들은 큰 리스크를 지면서 마대륙으로 넘어갈 이유가 하등 존재하지 않았다.
밑으로 새로 들어온 유입들을 갈아마시며 편하게 승승장구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기에 장미연이 찾으려는 대상은 한정지을 수 있었다.
바로 여신진영 플레이어들 중 성유물 탐험가급에 오른자들.
손바닥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심장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는 낮동안 마주쳤던 괴물들의 얼굴들이 필름처럼 겹쳐졌다.
눈빛, 냄새, 움직임이 한 덩어리로 압축되어 들어왔다.
손바닥의 땀은 불길하게 차갑고 끈적였고, 그 감각이 생각을 더 빠르게 몰아붙였다.
“그 플레이어가 누군데?”
“팔뮈입니다.”
심장이 멈췄다.
비유가 아니었다.
진짜로 한 박자, 아니 두 박자를 건너뛴 것 같았다.
귀가 멍해졌다.
주변 소리가 물속에 잠긴 것처럼 멀어졌다.
“최초의 플레이어.”
장미연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가 내 심장을 잠시 멈춘게 아닐까 착각을 만들 정도로 경종을 울렸다.
팔뮈!
현 세계에 자신의 권능으로 이 곳을 수호하는 자!
페널티를 만든 자!
그 자가 아니었다면 현 세계는 이미 아포칼립스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오직 플레이어들만이 지배계급이 되어 민간인들을 갈아마셨을테니!
“팔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온몸이 전율하듯 반응했고 폐가 찢어질 것처럼 숨이 막혔다.
머릿속 필름이 번쩍거리며 낮에 마주쳤던 괴물들의 얼굴들이 찰나에 겹쳐 들어왔다.
세상이 한순간 느려지며 심장이 멈춘 듯, 한 박자, 아니 두 박자를 건너뛰는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귀는 멀어지고 입안은 바짝 말랐다.
미레의 목소리와 방의 공기는 모두 유리잔 안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왜곡되어 들렸다.
“너! 어떻게!”
“아십니까?”
“말해!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악신진영의 구역은 숲과 연결되어있습니다. 여신진영은 폐허들과 연결되어있죠?”
“그래서?”
“그 숲엔 엘프들이 부족을 이루어 살고있습니다. 군집생활엔 세력의 경계가 나뉘고 당연 그 선을 긋고 감시하는 자가있죠.”
체르토가 고개를 들었다. 텅 빈 눈이 나를 향했다.
“수호자.”
“그 수호자란 엘프가 말해주었나?”
“네. 수수, 그녀가요. 게임의 시작부터 보여줬어요.”
손이 떨렸다.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하나도 빠짐 없이 말해!”
체르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처음엔 낮게, 그다음엔 한 톤 더 낮아지며 방 안의 공기를 긁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퍼즐의 빈 곳을 예리하게 끼워 넣었다.
모서리들이 소리로 맞물리는 순간이었다.
엘프 수호자가 전해준 이야기, 게임의 기원, 1회차의 존재.
그 말들이 하나 둘 무게를 더해 내 가슴을 짓눌렀다.
창밖의 바람 소리도, 그림자도 모두 정보를 삼키듯 고요해졌다.
내 손끝이 차갑게 굳고, 머릿속에서는 떨어지는 퍼즐 조각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리고 마지막 조각이 떨어졌다.
“이 게임은…….”
입안이 바짝 말랐다.
침을 삼키려 했지만 목구멍이 움직이지 않았다.
“2회차라고?”
“네. 그렇습니다.”
거실이 정적에 휩싸였다.
시은, 샌, 야니, 미레.
모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허나 제일 머릿속이 어지러운건 나였다.
2회차.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메아리는 잔잔하게 또렷하게 돌아와 나를 흔들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그 소리의 결을 더듬었다.
생각들이 찢겨 나가고 빈자리에 차갑고 묵직한 인식이 남았다.
내 지금 인생도 2회차.
앞이 고의적으로 뜯겨진 생적지.
전생.
현생.
뒤섞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쿵. 쿵. 쿵. 귓가에서 맥박 소리가 울렸다.
“1회차의 우승자는 팔뮈, 그 자가 다시 참가했습니다.”
“왜?”
목소리가 떨렸다.
“어째서?”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체르토가 고개를 저었다.
“추측으로는 게임의 개최자와 대적점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게임의 개최자.
팔뮈가 막으려는 자.
그렇다면 지금 이 모든 것은―
“…….”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미레였다.
미레의 말이 정적을 갈라냈다.
“바헬만씨가 제게 말한적이 있어요.”
거실의 시간이 순간적으로 멈춘 듯했다.
모두의 얼굴이 미레로 동시에 쏠렸다.
작은 몸집의 소녀는 무릎 위에서 손을 굳게 쥐고 있었고, 손등은 창백해 손톱 자국이 또렷했다.
내 심장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손끝이 차갑게 굳었다.
“의심해본적 없냐는 거에요.”
미레의 목소리가 떨렸다.
“반지, 목걸이. 우리들은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살지만 저 아이템들은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뿐더러, 심지어.”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창밖에서 들려오던 로마의 소음마저 멀어진 것 같았다.
“이미 사용법을 알고 있는 것 처럼 자연스럽게!”
미레가 고개를 들었다. 푸른 눈동자가 촛불처럼 흔들렸다.
“ 이 차원들은 뿌리에서 뻗어나간 나뭇가지들처럼. 근원은 하나되, 나뉜게 아닐까 하구요.”
“…….”
섬뜩한 생각이 머릿속을 덮쳐왔다.
한 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너무나 멋지게 자랐다.
곧게 뻗은 뿌리와 올곧게 솓아오른 기둥.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나뭇가지들.
한 탐욕스러운 자가 있다.
그 나무는 너무나 멋졌기에.
가지들 끝에 달린 과실들을 하나씩 따고 있음을.
프렝코 구역장 왈.
-이 세계는 둠스데이 이전부터! 이미 오래전 부터 존재해왔다. 다만 우리 앞엔 어째서인지 멸망된 형태로 나타났지만.
창밖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보였다.
조명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품은 건축물.
하지만 그마저도.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렸다.
멀리서 퍼져오는 그 소리가 묘하게 장송곡처럼 들렸다.
누군가의 게임판 위에 놓인 말에 불과한 걸까.
우리 모두가.
장미연, 아니 체르토가 불길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