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43)
456.
사촌 언니....
쫙~!
빼입고 온 정장이 무색하도록.....
얼굴이 더욱 아름다운...
서지희.
너무 예쁜 미모에....
연예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결국 수많은 갈림길에서....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어 이젠 애 둘 낳고....
어느새 아줌마의 대열에 들어서는 중이었다.
난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 훗... 언니... 잘 지냈어....? 다혜는? 우진이는 안 왔어? 형부는? "
" 하하... 멀 그렇게 일일이 물어보니? 얘도 참.... 후후... 다 왔지. 저기 앉아있어. "
지희 언니가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애 둘을 데리고 앉아있는 형부의 모습이 보였다.
내 시선이 향하자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고는 나 또한....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어느새 지희 언니는 내 팔짱을 끼며 조잘댔다.
" 어머..... 민희 넌 결혼하기 전 보다 몸이 더 날씬해진 거 같다! 무슨 기집애가 처녀 시절보다 몸이 더 좋니? 남편이 완전 사랑해주나 보다. 호호..... "
" 훗... 날씬하면 사랑해주는 거야? 언니야 말로 여전히 예쁜 걸. 애 둘이나 낳은 학부모라고 어떻게 믿겠어? "
" 에효... 빈말이라도 듣기는 좋네. 하지만 네... 하고 믿기엔 이젠 나도 나이를 먹었나 봐. 이젠... 눈가에 주름도 생기고 목에 주름도 장난 아니다, 얘! 탱탱했던 처녀시절 피부가 하아.... 그리워..... "
" 피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면서 무슨.... 웬 엄살이야? 그나저나 다혜는 정말 예쁘게 크네.... 언니 어렸을 때보다 훨씬 더 예쁜데? "
" 호호호... 내 뱃속으로 낳았지만 나도 정말 믿을 수 없어..... 길에 가는데 아기 모델하지 않겠냐고 갑자기 명함 주는 사람도 있었다니까? "
와.....
모전여전일까?
하긴....
아기때 보고....
너무 예뻐서....
나도 그때 사진을 가지고 있긴 했다.
난 배시시 웃으며 말을 받아주었다.
" 에, 정말? 그럼 우리 다혜 티비에서도 나오고 그러는 거야? "
" 훗.... 됐다고 거절했어. 그래도... 가끔 다혜 보고 있으면 연예인 정말 시켜볼까 고민이 된다, 얘. "
어쩌면 자신이 가지 못했던 길이라....
딸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언니의 시선을 따라 다혜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유전자의 힘은 위대했다.
예쁜 언니...
잘생긴 형부의 만남 속에서....
예쁜 딸 다혜와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들 우진이....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나도 옛날...
상상하곤 했었다.
나하고 누군가....
닮은 아이들을.....
" 참... 니 남편은? 어디 있어? "
갑자기 들려오는....
언니의 목소리.
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 오늘... 회사에 갔어. 급한 일이 있어서.... "
" 이런... 많이 바쁘시구나...."
" 응.... 요새 일이 많아져서.... "
" 그래... 가끔.... 너희 남편 회사.... 뉴스에도 나오더라.... 이래저래 어려운가 보네.... "
" 머... 그렇지..... "
사실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뉴스 기사에 나온다고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직원들이 느끼는 체감과....
밖에서 보는 시선의 온도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경제가 어렵다는 뉴스 만큼....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야근도 잦아지고....
남편의 얼굴에서 피곤함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뭐 그래도 그게....
남편만 그런 건 아니리라.
그건...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
전체적으로 다 느끼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내가 하는 번역 일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단가가 낮아지고 일감을 구하는 것도....
힘들어지고 있었다.
소소히 일을 하면서....
가사에 보태려고 했던 일이....
이젠 필사적으로 다녀야....
간신히 손에 조금이라도....
일을 만져볼 수라도 있었다.
그래서....
아는 사람 통해....
학원 일을 알아볼까....
-생각도 하는 중이었다.
사실....
애들을 가르칠 주변머리도 없으면서....
해도 되나 망설이고 있었다.
지금도....
누구 앞에서.....
무엇을 한다는 건.....
부담스러웠다.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것만큼.....
힘든 것은 없었다.
" 그럼 나.... 애기아빠한테 갈께. 이따 같이 밥 먹자. 알았지? "
" 응... 어서 가봐. 훗.... "
지희 언니는 어느새....
사람들 사이를 뚫고 자신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다가가지마자....
아들과 딸이 제일 먼저....
달려와 언니를 맞이했다.
왠지...
그 공간만....
따듯한 공기와 따듯한 조명이....
둥글게 휘감는 듯 보였다.
그러는 사이...
식은 끝나고....
사진을 찍는 순서가 되었다.
사실...
결혼식장에서 하객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이 사진을 찍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당사자로서도.....
사진을 찍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누가 왔는지...
그래서...
나 또한 이것만 찍고 갈 생각이었다.
축의금 봉투.
그리고....
사진.
하지만...
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내 결혼식....
그 정신없었던 시간에.....
기억 깊숙한 곳에 남아 있던....
한 장면.
구석에 있었던 그를.....
본 시간.
그 뒤....
시간이 지난 뒤....
혹시나 사진을 찍었을까....
혼자 몰래 봤지만 역시나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혼식 비디오에서...
마침내 찾아낸.....
짧게 지나가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입을 가리고 말았다.
결국...
왔었다.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결국....
그는 내 결혼식에....
오고야 말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결혼식에 여러 번 참석하면서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비디오 속의 그를 보면서....
바보 같이....
울기도 많이....
울었다.
정말...
난....
바보였다.
바보...
바보....
바보 멍청이.....
**************
#17. 가을의 문턱에서 둘.
나는 가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손발이 차서....
추워지는 계절을....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길거리에 뒹구는 낙엽을 보면...
왠지 마음이 슬퍼져서....
우울해져서 싫었다.
남들은 붉고...
노랗고 색색으로 변하는....
나뭇잎의 모습을 보면서....
예쁘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서서히 생명력을 잃고...
말라 죽어가는 안쓰러움으로 보여서.....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없었다.
물론...
어렸을 때 감성이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다음 해를 기약하며....
잠시 사그라드는 생명의 신비를 알았음에도...
그 마음...
그 감성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비슷한 온도...
쌀쌀한 기온의 계절인....
봄을 좋아했다.
점점 따듯해지는 햇살과...
아름답게 피는 봄꽃.
그리고....
너무도 예쁜....
어린 연둣빛 새순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는...
그런 생명력 넘치는 계절....
봄이 좋았다.
그를 만났던 그 봄도....
유달리 벚꽃이 예쁘게 폈던....
계절이었다.
차가운 내 손을....
크고 따듯한 자신의 손으로....
조심스레 포근하게....
잡아주며 온기를 전해주던....
그를 만났던....
봄이 정말 좋았다.
**************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우태 오빠가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였을 것이다.
" 하아.... "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벌써 몇 년 전 일인데도....
생각이 날 때마다....
언제나 마음이 무거워지고 옥죄어 오는 감각 속에....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다가....
결국 길게 공기를 토하고서야....
조금 나아지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거짓말은 하면...
언젠가 그것이 돌아와서....
나의 몸을 옥조일 것이라고 했었다.
.....죄가 거짓말을 통해 시작되니....
하지 말라....
말씀하셨다.
거짓말은 단순히 속이는 말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마귀가 있으니....
그것을 행한 자.....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할지니.....
단순히 아버지가 무서워서...
또한 쉽고 가볍게 넘어가기 위해....
나는 양심을 속이고....
뱀의 혀처럼 달콤한 말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대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날 밤 일은....
내 잘못이었다.
아니...
우태 오빠 잘못이었다.
오빠를 만나서....
아니다.
괜히 그에게.....
엉뚱한 굴레를 씌우지 말자.
그냥....
내가 잘못한 일이었다.
너무 바보 같이....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
주말.
특히나 요즈음....
토요일에는....
양복을 꺼내 입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봄만큼은 아니었지만....
주5일 근무가 되면서....
토요일 오후에 결혼식 날짜가....
자주 잡혔다.
지금도...
간만에 양복을 입고....
화려한 건물 안에 들어와 있었다.
처음 양복을 입고 결혼식에 갔었을 때는
정말 어색하기만 했던 옷차림이었는데.....
확실히 많이 입고 입어 버릇하다 보니.....
이젠 편하고 익숙해져 버렸다.
몸이 옷에 맞춰지는 건지....
아니면....
옷이 몸에 맞춰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느긋한 모습으로 천천히.....
식장 안을 구경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많이 지켜보았는데도....
신부 대기실에 있는 그녀는 익숙하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었으리라.
사실....
결혼식장에서....
신부는 언제나 아름다운 존재였다.
그날의 주인공이자....
여자로서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아름다워야 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5월의 신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아름답고 빛나보였다.
" 지영씨 축하해. "
여자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그녀.
이지영.
신입으로 회사에서 얼굴 본 것이....
벌써 두해를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결혼 소식을 듣게 될 줄이야.
나름 그녀를 좋아하던 직원들도 꽤 있었는데....
남친이 있다는 말도 믿지 않고....
막무가내 대쉬하던 사람들이....
모두 내심 슬퍼하는 날이 되었으리라.
어찌 됐든...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그냥....
담담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같이 커피 한잔하며....
상사 욕도 함께 하고....
직장인의 고통을 분담했던 의리로....
참석했을 뿐이었다.
전우애 같은 마음이랄까.
그래도 결혼이라는 것을 하며....
진정한 어른의 길로 가는 그녀에게....
축하는 해주고 싶었다.
인생의 제 2막은....
결혼에서부터 시작이라던데.....
용감하게 또 행복을 찾아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동료의 소감 또한....
듣고 싶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