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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71)


485. 나래의 저 눈빛... 저 눈빛이 진짜일까? 정말.... 나를 위한 걱정일까? 차라리... 나를 경멸하는 시선을 보는... 소미의 눈빛이.... 더 진솔하고.... 솔직하게 느껴졌다. 소미... 냉랭한 눈빛... 미간에 주름이 잡힌 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그 아이의 시선이.... 차라리.... 받아드리기 쉽고 가벼웠다. " 3차 갈 꺼지? 민희 너도! " 성현 선배의 팔이... 내 팔을 잡아끄는 가운데.... 나래가 또 끼어들었다. " 야아~! 너무 늦었잖아! 민희 너 집에 안가도 돼? " 다른 쪽 팔을 잡고는... 아니... 거의 팔짱을 낀 상태에서 나래가 소리쳤다. 하지만... 난 청개구리처럼 히쭉거렸다. " 괜찮아! 아까 통화했는데 뭐! 나래 너도 갈래? 가자아~! 3차~! " 흥이 겨운 듯...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 휘청 이는 몸놀림을 보여주며... 살짝... 성현 선배가 잡아끄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러자.... 나래의 팔이 풀리고.... 거리가 멀어졌다. 그리고... 곧... 기다렸다는 듯 소미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 야! 차 곧 끊길 거야! 안 갈 거야? " " 소미 너.... " " 막차 끊긴다니까! 야! ..... " 소미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뭐라 하는데... 점점 멀어지면서 둘 다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나래의 얼굴... 나를 보는 그녀의 얼굴이 작아지는 가운데... 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색색으로 빛나는 밤거리를... 허우적.... 허우적... 걸었다. 옆에서 성현 선배가 뭐라고 계속 했는데... 귓가를 맴돌고 그냥 길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하곤... 전혀 상관없는 것들... 귀담아 들을 가치 따위... 하나도 없는.... 이야기들.... ************** 역시나.... 이러려고..... 몇 명 남지 않은 자리... 성현 선배는 끝끝내 내 옆에 있었다. 그리고... 자리가 파하고 일어나는 시간... 새벽.... 1시 넘은 시간이었을까? 쌀쌀한 기온.... 하지만 그것보다 더 차가운 것은... 내 마음이었다. " 아.... 너무 마셔버렸다.... 민희 너도 많이 마시지 않았어? 취한다..... " " ....... " 단둘이 남은 이상... 웃으면서 그의 말에 맞춰주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 보이는 건.... 순 모텔 간판들 뿐. 은근슬쩍... 옆으로 와서는... 2차에 왔던 것처럼.... 내 팔을 잡아끌고 싶어 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속마음이 훤히 보였다. 하.... 그때도 저랬을까? 순간.... 박성태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다시 쓰디쓴 위액을 토해낼 것 같은... 느낌에 입을 다물고... 목에 힘을 줬다. 그렇게 잠시 진정하는 사이... 성현 선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어떻게 할래? 민희 너.... 저기.... " 능글거리는 그의 목소리. 욕망이 이글거리는... 탐욕 가득한... 눈빛. 난 얼굴에 성에가 끼는 듯한 느낌 속에서...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 오빤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 오빠... 오빠란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올 줄은... 성현 선배 또한... 오빠란 말에 금방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천천히 벌어지는... 입에서 침 때문인지 번들거리는... 무언가가 보일 정도였다. " 하하... 글쎄... 우리... 저기 들어가서 잠깐 쉬고 갈래? " 그의 눈이 가리키는 곳... 모텔 건물이었다. 첨부터.... 부축하는 척하면서... 요란한 네온사인이 가득한... 이곳을 향해 걸어올 때부터.... 짐작은 했었다. 하하... 어른스럽고.... 동기 애들 보다.... 무언가 좀 더 믿음직한.... 한참 윗 학번 선배였던 그가.... 박성태와 별 다른 바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니.... 하하... 정말..... 정말 난.... 바보였어. " 성.현.선.배.... 훗.... " " 엉? " 기대 가득한 눈빛... 비웃음이 가득 담긴... 늑대의 눈빛. " 선배 저랑 자고 싶어요? " " 어? " " 저랑 자고 싶어서... 그렇게 술을 권한 거예요? 취하게 해서... 그래서 선배랑... 저기 가리킨 곳에 들어가고 싶어서? " " 응? 아니.. 민희야... "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성현 선배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피어올랐다. " 아니면 술에 취하면... 제가 쉽게 자준다고... 누가 그랬어요? 누.군.가.... 저는 쉽게 남자하고 자는.. 그런 년이라고 하던가요? " " 미..민희 너..... " " 아하하하하~~~~~~~~~! "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 그간 참았던... 무언가가 터져 올라오며... 웃음소리가 절로 높게 하이 톤을 이루었다. " 정말.. 하하하하~!!! 정말 바보 같아.... 하하하하~~~~~~ " " 야... 민희...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 " 하... 미안한데요... 제가 아무리 막 남자와 자는 년이라고 해도... 하하.. 오빠하고는 못 자겠어요. 오빤 하하하... 정말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 " " 뭐???? " "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술이나 먹여서.... 새까만 후배나 어떻게 안아보려고 하는... 그런 쓰레기하곤... 못자겠다고요. " " 뭐? 쓰..쓰레기? " " 그래요. 술이나 먹여서 후배를 어떻게 하려는 게 쓰레기 아니겠어요? 충분히 알았으니까 성현 선배! 전 이만 가볼께요. 나중에 학교에서 보더라도 아는 체 하지 말아주세요. 그럼. " " 야! 서민희! 너.....!? " " 왜요? 어디.... 강제로 끌고 가려고요? 한번 해보세요. 바로 경찰에 신고해 버릴 테니까! " " ......!!!! "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 난 일부러 크게 흥 소리를 내며 뒤로 돌았다. 그리고.... 그대로... 큰길을 향해 걸었다. 뛰지 않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심장이 쿵쿵 뛰면서... 등 뒤가 한없이 간지러웠다. 금방이라도 달려와서 나를 잡을 거 같은 느낌에.... 온몸이 오싹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차들이 휙휙...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쏜살같이 달려가는 도로가 나올 때까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바로 눈에 보이는 택시를 타고는... 문을 닫을 때까지... 심장은 미친 듯 뛰었다만.... 그가 날 잡으러 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난... 빠르게 목적지를 말하곤... 그래도 좌석 뒤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바로... 어깨를 흔들며.... 소리죽여 흐느꼈다. 정말.... 바보였다. 바보... 멍청이. ************** 선택의 기로.... 내 앞에 나누어진 갈림길이었다. 피할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나를 향한 그 더러운 오물덩어리를... 마주할 것인가. 난 이를 악물고.... 술자리가 있으면 찾아다녔다. 성현 선배 같은 인간들은.... 정말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널려 있었다. 소문이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 학과 술자리..... 같은 과 애들 속에서... 얘기를 나눴던 그런 애들이.... 내 곁에 다가와 어떻게 해보려고.... 수작질 하는 모습을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훤히 느껴졌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숨겨진 모습들. 그래... 양아치들.... 쓰레기들의 향연..... 그들을..... 웃으면서.... 하나하나 직접.... 확인했다. 나 몰래 얼마나... 뒤에서 온갖 말들을 해왔을까? 그 뻔뻔한 면상을.... 직접 보고 싶었다. 뒤에서... 나와 오빠를.... 헐뜯는 그 얼굴들. 그러면서... 틈만 나면.... 날 어떻게 해보고 싶어 하는... 그런 쓰레기들.... 같이 웃고... 같이 잔을 부딪치면서... 거를 애들을 하나하나 골라냈다. 흥... 너도.... 역시나.... 쓰레기였구나....? 술자리가 끝나고 비틀거리면... 달라붙는 날파리들. 단둘이 있게 되면.... 꺼지라고..... 욕을 퍼붓고.... 헤어져서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했을까.... 그런 술자리의 피날레.... 아마... 마지막은 주섭 선배였을 거다... 한주섭.... 우태 오빠랑... 곧잘 어울리던 선배들 중 하나.... 샌님처럼.... 어쩌면 여성적인 모습까지 보이던 그가... 술자리에서 나한테 다가왔을 땐... 정말 크게 실망했다. 절로 입술이 달싹였다. 오빠하고... 친구 아니었...어요? 그랬던... 주섭 선배마저.... 술자리에서....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하긴... 이상할 것 없는 일이었다. 날... 날 처음 더럽혔던 그 새끼도... 오빠하고 친했던 사람(?)이었다. 사람은 정말... 겉으로는 알 수 없구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어... 이젠 모든 사람들에게.... 혐오의 감정만 남아버렸다. 자리를 피해서 다른 자리로 옮겼는데... 술자리가 끝나고.... 또 다시 달라붙는 벌레를 차버린 뒤... 성큼성큼 집으로 향하는데... 어느새 주섭 선배가 차를 끌고 왔다. 내 옆에 서는 차량 안에... 창문이 내려지고..... 그 안에 주섭 선배의 얼굴이 있었다. " 민희야... 타! 태워다 줄께. " " 주섭 선배.... 설마 음주 운전 하는 거에요? " 내 입에서 제일 먼저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분명.... 무언가 마시는 것을 봤는데.... 음주 운전이라니.... 정말 간도 크다 싶었다. 나 태우려고.... 차까지 몰고 온 그의 용기(?)가.... 내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데... " 하하.. 아니야.... 나.... 음료수 밖에 안마셨어. 차 끌고 온 거 다 알아서 애들도 마시라고 안하더라. 그러니까.... 안심하고 타도 돼..... " 상냥한 목소리. 평소 보여줬던... 여성스러운 주섭 선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순간 망설였다. 정말... 저 차를 타도 되는 걸까? 설마... 차에 타면.... 어딘가 엉큼한데.... 날 데리고 가는 것 아닐까? 겉모습만으로는... 이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기에....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주섭 선배의 저 상냥함을... 여리여리한 그의 모습을..... 순순히 받아드릴 수 없었다. 일순... 바뀔 수 있는... 또 다른 모습이... 그의 저 얼굴 뒤에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대답하지 않고 망설이는 동안... 주섭 선배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 지금.... 택시도 잡기 어렵잖아. 폐 끼친다 생각 말고... 편하게 타. 이럴 때 선배 노릇하는 거지, 뭐. 우태.... 부탁도 있으니까. " 순간 생각도 못한 이름. 이 순간.... 튀어나올 것이라 생각 못한 이름. 그래.... 우태 오빠.... 오빠하고 친한 친구였지...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는... 우태 오빠와 관계..... 그간 함께 어울리던 모습들이... 느리게 떠올랐다. 무뚝뚝한..... 영석 오빠보단.... 차라리 주섭 선배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긴 했었다. 술자리에서... 영석 오빠하고도 몇 번 마주쳤지만.... 내 곁에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아니.... 아는 척도 하지 않았던 듯 싶다. 원래 학교에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학과 모임에도 보기 어려웠고.... 와도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시고 사라지는 타입이라.... 내가 다가가지 않는 이상.... 말 한 번 섞기 쉽지 않았다. 우태 오빠가 있을 땐 그래서... 영석 오빠 옆에 붙어서... 이것 저것 챙겨주는 것 같았는데.... 군대 간 뒤...... 더더욱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듯 싶었다. " 그...그럼 부탁드릴께요. " " 하하.. 그래. "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흘러나오는 주섭 선배의 어색한 웃음.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전혀 웃을 마음이 없었다. 무슨 일 생기면.... 가만 있지 말고.... 안되면 신고해버려야지.... -라고 생각하며.... 다가섰는데.... 순간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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