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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81)


495. 옅은 물안개가 깔려 있는 듯한 산봉우리. 아침 이슬 때문이었는지.... 주차장 지면도 촉촉이 젖어 있었다. 부지런한 새들이 벌써부터 일어나 먹이를 구하는 것인지.... 간간히 들리는 울음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쉬면서 왔다곤 하지만.... 그래도 밤새 달려온 여독으로 저절로 몸이 움직여서 기지개를 펴는데... 깊은 산 속이라 그런지 상쾌한 공기에 한 번 더 깊게 숨을 들이켰다. 가슴 속 탁한 기운이 사라지는 듯한 청량함. 하긴.... 서울 시내에서 맡는 공기도.... 아침이면 상쾌하기 짝이 없는데.... 한적한 산자락의 아침 공기가 그보다 못할 리 없었다. 아니, 그 맛이 비교될 수 없었다. 민희도 그의 옆에서 천천히 몸과 팔을 휘저으며 스트레칭 하는 듯 싶더니.... 언제 왔는지 우태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팔짱을 꼈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몽실 거리는 젖무덤. 그리고.... 따듯한 손의 온기. 우태는 그대로 안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슬쩍 팔을 내려서는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민희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교차되고.... 깍지를 끼게 되자 민희의 손가락도 자연스럽게 얽히고.... 부드럽게 마주 잡았다. 이심전심..... 서로의 시선이 상대방을 향하고.... 서로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면서.... 멀리 등산로로 보이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산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목.... 입구 쪽에는 매표소 같은 건물이 서있었다. 그때 들리는 민희의 목소리. " 어머.... 여기.... 입장료가 있나 봐? " 우태 또한 생각지 못한 매표소의 존재에 눈을 꿈뻑거리는데..... 생각해보면 어떤 산이든 입장료가 있긴 했던 듯 싶었다. 남산도 아니고.... 나름 100대 명산이라는데..... 해발 580미터 밖에 안되는 산이라고.... 무슨 뒷동산처럼 생각했던 것이... 절로 쓴웃음을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점차 가까워지자.... 정면 유리에 적혀진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대인 얼마.... 소인 얼마... 단체 등등..... 그리고 매표소 옆.... 등산로 가운데 우뚝 서있는 쇠말뚝 사이에 늘어진 쇠사슬이.... 이른 시간 다가온 침입자들을 경계하며.... 때마침 구름에서 나온 햇살에.... 그림자를 길게 늘이는 중이었다. 난감한 기분. 가까이 다가가서 매표소 안을 슬쩍 들여다봐도.... 당연히 아무도 있지 않았다. 시계를 봐도... 아직 새벽 6시 10분도 안된 시간. 민희와 우태를 서로를 바라보았다. " 어쩌지? 기다려야 하나? "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거의 동시에 똑같은 말을 내뱉은 둘은.... 잠시 멈칫하더니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얼마를 웃었을까. 민희가 눈가를 손가락으로 훔치며 먼저 말을 건넸다. " 정말... 우린 하는 생각도 왜 이리 똑같은지.... 정말 웃겨. " " 훗.... 그러게. 하하.... " 우태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아직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힘을 주었다. 바로 사이사이 끼어 있던 가느다란 손가락이.... 금세 마주 잡고는 꼼지락거렸다.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처럼.... 사실 둘 다.... 똑같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을 수도 있었다. 빈 매표소를 보면서... 달리 무슨 생각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작은 것 하나도.... 둘의 마음이 서로 이어져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 싶어.... 잔잔히 따듯한 온기를 불러왔다. 그렇게 잠시 둘이서 마주보며 손을 잡은 채 서있던 중.... 우태가 침묵을 깼다. " 우리.... 그냥 들어갈까? " " 응? " " 어차피 아무도 없잖아.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그냥....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 그의 말에 민희의 눈꺼풀이 느리게 깜빡거렸다. 그리곤.... 쇠사슬 너머 등산로를 살펴보았다. 사실 매표소나 길에 가로지른 쇠사슬만 없으면.... 그냥 평범한 산책로와 다를 바 없었다. 줄지어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 가운데.... 길게 뻗어 있는 길. 그리고.... 아무리 주변을 살펴봐도..... 여전히 우태와 민희 외엔.... 느껴지지 않는 인기척.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 외엔 적막 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 그럼... 그럴....까? " 말의 끝부분이 살짝 늘어지는 것이.... 아직도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민희의 마음이 묻어나는 듯 싶었다. 둘 다 비슷한 성격이었다. 아무도 없는 도로. 차들조차 거의 없는 도로에서도.... 무단횡단 하는 것에 부담스러워하는 그들이었다. 차라리 멀리 보이는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것이 마음 편한 둘. 그러니... 뻔히 유료 관람료를 내야 하는 곳을.... 무작정 불쑥 들어가는 것이 고민될 수 밖에 없었다. 우태는 이곳에선 자신이 앞장서야 된다 생각하고는.... 민희의 손에 힘을 주며 발을 옮겼다. " 가자. 시간이 아깝다.... 괜히 이런 식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아. " 아까운 시간.... 그건 우태의 진심이기도 했다. 민희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만큼 귀중하기도 했고.... 또 식품의 유효기간처럼.... 지금 이 시간이 언젠가 끝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은연 중 담겨 있었다. 민희도 그의 말에 바로 마음을 정한 듯 따라 움직였다. " 그래! 그러자, 오빠! " 쌩긋 웃는데.... 살며시 드러난 그녀의 이가 하얗게 빛났다. ************** 가로 막고 있는 사슬을 넘어 조금 걸어가자마자.... 강천산 등산코스를 보여주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민희와 우태는 그 앞에 멈춰 서서는.... 안내판 그림을 살펴보았다. " 에.....? 한 시간 정도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었는데..... " 민희는 크게 눈을 뜨고는 깜빡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보아도 한 시간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등산로로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멀리 도는 코스는.... 주요 봉우리간 이어진 거리들이 2.5킬로미터라든지.... 혹은 2.73 킬로미터라는.... 흉악한 숫자들이 써져 있었다. 군대 시절.... 행군의 경험을 되살려보면.... 절대 산길의 저 숫자는....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산책이 시작되기도 전에 소금을 뿌릴 수는 없는 일. 우태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조금 밝은 목소리를 내며 입술을 움직였다. " 그럼 가볍게 돌면 되지. 흠.... 이왕 왔는데 현수교를 건너보고... 신선봉 전망대까지 갔다 오는 건 어때? " 전체 등산로에 비하면 정말 비교도 안 될.... 짧은 거리였지만.... 역시나 밤을 샌 민희를 생각하면 그것도 무리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민희의 성격상.... 절대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리 없었고.... 자신이 스스로 약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한.... 즐거운 여행의 기분을 내고 싶어 할 것이 뻔했기에.... 제일 무난한 제안을 말해보는 그였다. 그래서 였는지.... 민희 또한 바로 웃으며 박수쳤다. " 히히... 오빠 귀신이다. 나... 저 현수교... 꼭 가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어? 아침부터 넘 무리하지 말고 그렇게 가보자. 우리가 무슨 히말라야 등반대도 아니고.... 산책하려고 온 거잖아. 훗.... " 갈 경로를 정하자.... 다시 손을 잡고 걷기 시작한 둘. 생각보다 잘 만들어놓은 등산로는.... 도시 속 공원길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아.... 깨지게 되었으니.... 길게 뻗어 있는 나무 사이로 기분 좋게 걷는 가운데.... 문득 이상한 기척에 뒤를 보는 우태였다. 그리고.... 그건 우태만이 아니었다. 민희도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똑같이 뒤돌아보곤 바로 우태를 쳐다봤다. " 오빠도 들었어? " 우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곤.... 때마침 나타난 현수교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빠르게 그녀를 이끌었다. 나무들 사이.... 계단을 후다닥 올라가자마자.... 어느새 웬 사람이 빠르게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등산복인지... 관리인 복장인지... 구별이 안 되는 그 남자는.... 인상도 잔뜩 찌푸린 채.... 투덜거리는 입모양을 보이며 교차로 아래로.... 빠르게 지나쳤다. 그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단에 쪼그려 앉아있던 둘은.... 그의 발자국 소리조차 멀리 사라지고도 한참 뒤에서야... 소리죽여 킥킥댔다. " 풋.. 오빠 뭐야....? 우리.... 왜 숨은 거야? " " 푸하하.... 몰라.... 하하하.... " 웃고 있는 둘의 목소리에 비해.... 여전히 작고 숨 죽여 말하는 중이었다. 역시.... 개장 전.... 몰래 들어왔다는 것이.... 찔리는 상황. 다시 새소리만 들리는 상황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서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위아래 쪽을 살피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현수교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무들 사이.... 모습을 드러낸 현수교. 우태는 현수교라고 해서.... 무슨 낡은 밧줄로 엮여서 만든.... 나무다리를 생각했는데 웬 걸... 빨간 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강철(?) 다리가 놓여 있었다. 출렁다리라고 해서.... 건널 때 무서울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 당당한 위엄에 절로 한시름 놓는 우태였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민희가 쿡.... 그의 옆구리를 찔러왔다. " 풋... 오빠 아직도 높은 곳 가면 무서워해? " " 하하.. 아니야. 무섭긴 무슨. " 금세 발뺌하는 그였지만... 민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도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맨날 듬직한 오빠의 모습을 보여주던 우태였지만... 그 옛날 함께 놀러갔던 통영 전망대에서.... 투명한 유리(?)판으로 되어 있는 곳에 차마 가지 못하고... 극구 사양했던 순간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 그게 뭐라고.... 그렇게 무서웠을까.... 하...하.... 우태는 얼굴에 홍조가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또 그 와중에.... 씩씩하게 거기에 보란 듯 서서는.... 사진 찍어달라던 민희의 모습이 함께 떠올라서.... 절로 옆에 있는 그녀를 홀낏 엿보았다. 소심하고.... 겁 많은 듯 보이면서도... 어느 때는 상상 이상으로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는... 민희의 모습. 그럴 때마다 놀라움 보단.... 더욱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하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순간 우태는 고개를 휙휙 저으며.... 방금 떠올린 생각을 털어버렸다. " 응? 뭐해, 오빠? " 말똥말똥... 자신을 쳐다보는 민희의 목소리에 우태는 바로 대꾸했다. " 아니야, 아무 것도. 어서 가자. 현수교.... 건너봐야지. "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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