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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화 182화 - 그 병원의 이면 (1).


글라사씨가 전한 안 좋은 소식에는 파라리스 내적인 요소와 외적인 요소가 혼재되어 있었는데. 우선 파라리스 외적인 이야기부터 해 보자면 클라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조사 중이라고 하는데… 일단 이건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니 그렇다 치고. 남은 건 파라리스 내적인 요소였는데, 이게 좀 문제가 크다. “정보 노출? 그렇다는 말은 설마… 다른 조직원이 파라리스로 쪽으로 넘어오다 걸렸다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애초에 저희는 직접 몸이 가는 방식이 아닌 특수한 방법으로 이제껏 계속 정보 교환해 왔거든요.” “특수한 방식이라면… 마법 같은 건가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저희 측에서는 마법으로 어찌 할 도리가 없더군요.” 그러니 아주 클래식 하다 못해 무식한 방법을 사용해야만 했다고 글라사씨는 말했고. 도대체 무슨 방법이냐는 나의 질문에, 마르티는 주섬주섬 품에서 젓가락 비슷하게 생긴 뾰족하고 긴 날붙이 하나를 꺼내어 올린다. “… 뭐죠? 이 젓가락처럼 생긴 건?” “손으로 던지는 살상용 무기입니다. 저희 쪽에서는 이걸 마킴이라고 하는데… 저희는 이때까지 이걸로 의사소통을 해 왔습니다.” “… 예? 아니… 어떻게요?” “마력이 차단되는 천에 할 말을 적은 뒤, 그 천을 여기다가 칭칭 감는 겁니다. 그런 다음 마차가 지나갈 때 이걸 있는 힘껏 던지면…” 마킴이 마차에 박히고, 마차는 박힌 마킴과 함께 파라리스로 돌아온다.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파라리스와 다르게, 파라리스와 외부를 연결하는 미지의 통로는 양방향으로 서로 통하고. 동시에 미크와 시슬씨는 마력으로만 세상을 감지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문제라면 그 과정 중에서 마킴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글라사씨가 말한 정보 누출이라는 거지. “살짝 불안정한 방식이라 주요 사안들만 확인하고 빠르게 마치려고 했는데… 결국 일이 터졌군요.” “설마 아들레어… 그 사람이 가져간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고, 마차에서 가다가 떨어진 걸지도 모릅니다만… 일단 앞으로는 아들레어에게 들켰다는 것을 가정하에 움직일 겁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지금 보다 더 빨리 템포를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아들레어가 꼭두각시이긴 하지만, 이곳의 배후와 꾸준히 내통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어쩌면 클라닥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도 이번 일과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일단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그 소실된 내용이 뭔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 준비는 언제 끝나는 건가. 구체적인 소요시간을 말 해달라…” “…” 젠장…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문장이구만 그래. 어쩌면 지금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안 좋은 상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구체적으로 뭘 준비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일반적인 이세계어가 아닌 듀로나크 내에서만 쓰는 암호로 내용이 적혀 있어, 만약 해독하려 한다면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 정도였다. 어느정도 시간벌이는 될 거라는 거지. “하아… 죄송합니다. 좀 더 안전한 방법을 생각 했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십쇼. 그나저나 바깥 상황은 어떻습니까?” “일단 늦어도 이틀 안에는 모든 준비를 마치라고 말은 해 놨는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마르티가 나가든 제가 나가든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하고 돌아올 겁니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균열에 뚫고, 사람들을 이곳에서 밖으로 빼 낼 것이다. 글라사씨는 그렇게 말하며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해야 할 일이라면… 스코티아 그 사람의 뒤를 캐는 겁니까?” “네, 아무리 저 쪽에서 준비를 빨리 끝낸다고 해도 최소 하루 정도는 걸릴테니까요.” “그렇다는 말은…” “조금 급한 감이 있지만 일정 상 내일 바로 시작해야 할 것 같군요.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저희가 지금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서 말이죠.” *** 꽤나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작전은 사전에 숙지한 상태였기에 속행하는데 있어 문제는 없었다. 다만 조금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는데, 어떻게 겨우겨우 선잠이라도 잔 나와는 달리 엘피는 사실상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모양이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가 마르티와 함께 병원 근처에서 숨 죽이고 있는 지금도, 아까 아침에 보았던 엘피의 불안한 표정이 계속해서 눈 앞에 아른거리는 듯한데. 이미 주사위는 던졌기에 더 이상 내가 어찌 할 도리는 없었다. 그저, 엘피가 잘 해내리라 믿는 수 밖에. “… 병원으로 들어간지 좀 된 것 같은데. 엘피 언니 생각보다 좀 걸린다 그죠?” “그러게… 별일 없어야 할 텐데…” “… 떨려요 아저씨?” “떨리지… 너는 안 떨려?” “떨려요. 그래서 말인데 아저씨가 손을 잡아주면 조금 덜 떨릴 것 같아요.” “…” 하… 돌겠네. 이걸 어쩌면 좋니? 불과 몇 분 전에 헐레벌떡 병원으로 뛰어들어가던 엘피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 한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걸 거절했다가, 괜히 토라져서 작전에 문제라도 생기면 곤란하겠지? “하… 알겠어. 그 대신 이상한 짓 하면 안 된다?” “알겠어요~” “…” 미안해 엘피.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고, 아마 너도 이해… 는 못 하겠지만 정상참작 정도는 해 주리는 믿는다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마르티의 왼손을 꽉 쥐어 잡는다. “와… 아저씨 손 엄청 크네요?” “조용히 해… 소리라도 들리면 어쩌려고?” “뭐 어때요? 병원에서도 제법 멀고… 이렇게 납작 엎드려서 이야기하는데 들리겠어요?” “모르지… 혹시나 엄청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면 어떡할래?” 라고, 그렇게 말하긴 하지만. 병원까지의 거리는 대략 20M~30M는 되어 보이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긴 하다. 게다가 그냥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무성한 풀숲에 바짝 엎드려 있으니 우리가 있다는 걸 알아 차리는 건 거의 불가능. 그러니 어디까지나 방금 나의 발언은 선을 지키라는 뜻에 가까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마르티는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저기… 좀 떨어져 주지 않을래? 응?” “그치만 너무 떨리는 걸요?” 긴장해서 작전을 실패하기라도 하면 존나 곤란하지 않겠냐는 마르티의 협박 비슷한 한 마디. 사실상 가불기나 다름없는 그 한 마디에 나는 어쩔 수가 없었고, 그렇게 마르티의 온기가 내 옆구리 바로 옆에서 느껴지던 그때였다. “… 왔어요.” “…” 방금 전 과는 달리 한껏 차분해진 마르티의 목소리. 처음에는 도대체 뭐가 왔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은 분명 엘피가 맞았고. 그 익숙한 실루엣 뒤로는 백색의 가운을 입은 남자 한 명이 분주히 엘피를 향해 따라가고 있었다. “… 엘피 언니가 성공한 것 같죠?” “어…” *** 처음 왔을 때도 느낀 거지만, 병원의 내부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겉으로 보이는 크기에 비해 내부가 너무나도 협소했거든. 그러니 분명 이 어딘가에 공간이 있어야 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 한 것이었지만, 아무리 확인해 봐도 이렇다할 이상한 점은 없었고. 나는 탁자에 올려져 있던 별 볼일 없는 서류를 모두 확인하고는 수상한 벽으로 향한다. (분명 구조상으로는 여기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 겉으로 보기에는 이렇다할 특이점이 없는 흰 색의 벽.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른손으로 벽을 두드려 보지만, 벽 뒤는 꽉 채워져 있는 것인지 그 어떤 공명음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마르티. 혹시 이 벽… 전초기지에 있던 것과 비슷한 걸까?” “네?” “전초 기지에서도 이런 벽으로 비밀 공간을 감추고 있었잖아. 혹시 이곳도 그런 식으로 되어 있는 게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구조상 이곳에 뭔가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벽을 두드리지만, 나로서는 그 어떤 이상한 점도 찾을 수 없었고. 마르티는 확인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아무것도 없는 흰 벽을 양 손으로 더듬기 시작한다. “… 어때? 뭔가 있는 것 같아?” “네… 아저씨 말 대로 잠금 마법이 걸려있는 것 같아요.” “잠금 마법이라는 건… 그 전초기지의 비밀 공간처럼 이 벽이 어떤 공간을 막고 있다는 거지?” “…” 마르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마르티에게 이 벽을 열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자 마르티의 아스타가 한 층 더 빛나기 시작하고,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마르티는 마치 주문을 외우듯 짧은 한 마디를 속삭인다. “아브레로…” “…!” 마치 흰 종이에 물감을 뿌린 것처럼 번져 나가는 글자들. 그 글자들은 마치 시계처럼 원을 그리며 흰 벽 위를 수 놓기 시작하고. 시뻘건 붉은 빛의 글자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뭐라 형용 못 할 불길함이 느껴진다. “마르티… 이거 이상한 마법은 아니지? “아… 아뇨. 엄청 오래된 것만 빼면 전초기지에 있는 거랑 비슷한 마법이예요.” “그래?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해제하는지도 알고 있는 거야?” “아마 저 글자들을 순서에 맞게 연결하면 문이 열릴 거예요. 그런데 저게 도대체 무슨 글자인지…” “…” 알 수가 없으니 함부로 건들일 수가 없고. 12개나 되는 경우의 수를 찍어서 성공하는 건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금 벽 앞으로 다가간다.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글자,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이 벽의 붉은 글자들 말이야… 문장 하나를 12개로 끊어 놓은 것 같은데?” “예?” “필기체처럼 토이세치 문자를 날려 쓴 것 같아.” “토이세치 문자? 아저씨… 이 글자 알아요?” “…” 아니… 몰라. 하지만 이상하게도 옆에서 누군가가 알려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고.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벽에 생겨난 글자들을 시계 방향으로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한다. 마치 부장님과 전화통화를 하며, 부적에 적혀 있던 토이세치 문자를 바라보던 그 순간처럼 말이다. “글러오, 나흐마, 프하르브, 에어이스, 밀레드, 엔 세오, 어스, 타 아온, 디하이산, 데나 피오르, 토이트." “… 예?” “마르티… 지금부터 내가 가리키는 순서대로 선을 이어줘.” “하… 하지만 이거 세번 정도 틀리면 완전히 마법이 틀어져서 무조건 들킬 거라고요?” “걱정 하지마. 확실 해.”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 순서가 맞을 거라고. 나는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12개의 단어와 어절들의 순서를 말 하기 시작한다. “어스, 글로어, 나흐마, 프하르브, 토이트, 에어이스, 타 아온, 데나 피오르, 디하이산, 밀레드, 엔 세오.” “어스… 글로어… 나흐마… 가 여기 맞죠?” “응.” “…” 내가 시키는 대로 마르티가 선을 긋자. 글자는 점이 되고, 점이 점을 이으며 선이 된다. 하지만 점점 선을 이으면 이을수록, 벽들의 선들은 마치 오답처럼 되다가 만 찌그러진 육망성 같은 모양을 그리고 있었고. 마지막 한 단어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마르티는 다시금 되 묻는다. “모양이 영 이상한데… 확실한 거죠 아저씨?” “그래…” “…” 확실하다는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듯한 마르티의 표정. 하지만 마지막 단어를 잇는 순간, 꿈쩍 하지도 않던 벽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이 벽에 적혀 있는 단어를 곱씹듯이 중얼거린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진정한 신 중 한 명인 밀레드가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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