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2부 6화 - 균열 구조사.
내게 손을 건넨 미지의 이종족은 아주 작았다.
구체적으로 몇 cm 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내 키 반 보다 작은 건 확실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결코 만만해 보인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눈 앞의 남자는 키와 상반되는 아주 무겁고 중후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계속 보다 보니 마치 인간세상 속 판타지 세계관에서나 볼 법한 드워프와 비슷한 모습인 것 같기도 했다.
수염이 온 몸을 뒤덮고 있다는 점에서도, 지금 내 손을 잡고 흔드는 그의 팔과 손이 아주 투박하고 굵다는 점에서도 말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허허. 그래 그래... 남자답게 잘 생겼네 이 친구.”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
“나? 아… 그러고 보니까 이름을 안 말 했네… 내 이름은 미도우사이드야. 만나서 반가워.”
“…”
미도우사이드라… 되게 특이한 이름이네.
어찌됐거나 잘 부탁한다고 하니 나 역시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그에게 건넨다.
그리고는 지금 눈 앞의 남자는 과연 무슨 종족인 것인지. 더 나아가 종족을 물어봐도 실례는 아닐지 잠깐 고민하는 것이었지만, 그 순간 익숙한 소리가 나의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지금 눈 앞의 있는 종족은 이세계의 말로 ‘알레타’라고 일컫는 종족이며, 그리 흔한 종족은 아니라는 크레아의 목소리가 말이다.
(알레타…?)
- 그래, 겉 보기에는 저래도 상당히 예민한 종족이지.
“…”
예민하다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예민하다는 걸까?
나는 크레아의 말에 의아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짙은 눈썹에 파묻혀 있던 그의 시선이 내가 아닌 부장님과 엘피에게로 향하고, 동시에 그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난다.
마치 뭔가를 꿰뚫어 보는 것처럼 말이다.
“... 그나저나 저 뒤에 모자를 푹 뒤집어쓴 처자는 엘피씨… 인가?”
“예? 아니... 그걸 어떻게...”
“이 친구야. 내가 너네 둘 위조 신분증을 주문받았으니까 척하면 척이지.”
“…”
아 그렇군... 그러면 그냥 한 번 찍어본 건가?
어차피 의뢰인은 둘이고, 그 중 한 명인 나를 제외하면 다른 한 명은 엘피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런 식으로 찍어서 맞춘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방금 내가 느낀 그 날카로운 시선이 그냥 기분 탓은 아니라는 거지.
“그나저나 좀 특이하네.”
“네? 뭐가... 말입니까?”
“벨라랑 거래하는 녀석들 중에서는 마족도 많거든. 그래서 나는 마족들을 많이 만나 봤다는 말이야. 그런데 그 특유의 묘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엘피씨는 뭔가 좀 더 날카로운 느낌인 것 같다니… 설마 크레아가 예민하다고 말 한 건 이런 거였나?
어찌됐거나 적의는 없어 보이니 다행이긴 한데 한 편으로는 경각심이 든다.
만약 그의 말대로라면 그냥 찍어 맞춘 게 아니라, 마족이라는 것을 확인한 다음 엘피를 특정한 것이니까 말이다.
“…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나는 마족 싫어하고 그런 사람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어.”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조금 더 조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조심?”
“네,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엘피의 정체가 들통나기라도 하면…”
“허허 이 친구 완전 사랑꾼이네. 너무 걱정 말어. 나도 거리가 가까우니까 겨우 느끼는 거야.”
그러니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절대로 알아 차릴 수 없을 거라고.
미도우사이드씨는 그렇게 말하며 마치 등을 두드리듯 오른손으로 내 종아리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가자고. 물건 받아야 할 거 아니야.”
***
내부는 내가 생각 했던 것 보다 좁았고, 인테리어를 하면서 함께 공간까지 손을 본 듯했다.
그래서 그런가 211호는 일반적인 오피스 빌딩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띄고 있었는데, 마치 편의점처럼 카운터 같은 공간이 있고 나머지 공간에 이런저런 물건들이 진열된 형태였다.
덕분에 누가 봐도 일반적인 가정집이나 오피스가 아닌 뭔가를 파는 공간 같았는데, 그 독특한 구조처럼 내부 인테리어 역시도 독특했다.
짙은 원목으로 된 나무 가구들과 따뜻한 색깔의 벽돌 벽지. 그리고 온 사방에서 풍겨오는 묘한 약내음과 이세계 특유의 따뜻한 조명까지... 그야말로 이세계를 쏙 빼다 놓은 듯한 211호의 내부는 작은 이세계 그 자체였고, 이곳의 주인장은 문을 닫으며 손님들에게 말했다.
“가게가 많이 좁지만 다들 편하게들 앉아. 차라도 한잔 줄까?”
“…”
뜻하지 않은 호의에 나와 엘피의 시선이 자동으로 부장님쪽으로 향하고.
부장님은 피식 웃으며 수염이 덥수룩한 아재에게 말한다.
“그래, 거피로 해도.”
“믹스?”
“어, 설탕 잔뜩 넣어가지고... 알제?”
“그래그래~ 우리 전직 부 길드장의 취향은 내가 잘 알지. 두 사람은 어떻게 해줘?”
“저도 설탕 많이 넣어서 믹스로 해 주세요.”
“오케이. 그러면 엘피씨는 됐고. 찬혁씨는 뭘로 해줘?”
“저도 그냥 똑 같은 걸로…”
“…”
사실은 블랙이 먹고 싶지만… 다들 메뉴 통일하는데 그러면 안 되겠지.
어찌됐거나 부장님은 가게 주인이 커피를 타러 간 사이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나와 엘피에게 어떤 서류를 하나 내밀었는데, 그 서류에는 [균열 구조사] 모집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균열 구조사? 이게… 뭡니까?”
“인자 니도 일자리를 슬슬 알아봐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
일자리라니… 하… 시발 부장님 존나 감사하다고.
나는 드디어 지난 방탕했던 생활을 청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감동의 눈물… 까지는 아니지만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다.
“뭐고. 그래 좋나.”
“예… 부장님이 제 삶의 은인이십니다…”
“크흠… 아니 근데, 이게 무조건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어디까지나 제안인데…”
그런식으로 무작정 좋아하면 곤란하다고.
부장님은 그렇게 말하며 어디까지나 추천장을 써 줄 수 있을 뿐이라고 말 했다.
특정 조건을 달성하면 말이다.
“특정 조건?”
“그래, 여 보이제? 균열 구조사가 뭐겠노?”
“어… 균열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는… 뭐 그런 건가요?”
“그렇제. 이세계에서는 마 정 안된다 싶으면 길드에 연락을 하면 되는데… 인간세상은 길드나 회사 만으로는 힘든 모양이더라고.”
부장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세상은 아직 균열에 대한 면역이 부족한 것이었다.
이세계는 오랜 세월 균열과 함께 하며 균열처리에 도가 텄지만, 인간 세상은 이세계에 비해 아직까지 미숙한 부분이 많다는 거지.
특히나 요즘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균열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때문에 비숙련 인원들이 균열에 갇히는 사고들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균열 구조사라는 것을 모집한다고 하는데… 그 조건이 꽤나 까다롭다.
“D 급 이하의 던전을 혼자서 최소 50개 이상 닫고… B 급 이상의 상위 던전을 파티, 혹은 혼자서 최소 20회 이상 닫은 사람…”
“그래. 쪼매 어려워 보이는 거 같아도 내가 볼 때 니 정도면 충분히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면 균열 구조사는 소속이 어떻게 되는 건가요? 회사? 아니면…”
“어… 좀 애매한데, 아마 자기가 소속된 회사와 협업 관계인 국가직 정도가 될 거야.”
그러니 일단 되기만 하면 사회적으로 꽤나 힘이 있을 거라고 한다.
단순히 국가적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부장님의 말에 따르자면 균열 구조사라는 직업은 원소 신들이 인간의 정치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일종의 초석이었으니까 말이다.
“일종의 초석?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뭐...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추측이긴 한데, 여러모로 알아보니까 인자 균열 관해서 만큼은 이세계쪽 의견이 주류인 것 같더라고.”
이전까지는 인간세상의 실질적인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리는 식의 여론이 주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균열이 점점 늘어나며 이런 저런 문제가 터지니, 적어도 균열에 관한 요직 만큼은 이세계 출신들로 채워야 한다는 여론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이세계 출신들이라 함은 당연하게도 원소 신을 섬기는 명망 높은 모험가들.
말 그대로 원소 신 라인의 인물들이 요직으로 꽂히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균열 구조사 제도는 인간 측에서 제안한 게 아니라…”
“그래, 그러니까 아마 여러모로 엄청나게 챙겨 줄끼다.”
초석이 제대로 자리 잡아야 앞으로의 지배 계획에 차질이 없다.
지금은 단순히 균열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 만이지만,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균열에 시달리게 되면 이 세상 그 어느 분야든 균열에 관한 지침과 해결 방안이 있어야 할 터.
그러면 자연스레 이세계 쪽 인물들이, 정확히 말하면 원소신들 쪽 인물들이 정치적으로 득세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부장님은 말했다.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인간들의 수명은 유한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인간세상의 이세계화는 기정사실이라고 봐야겠지.
“인간세상이… 이세계에게 잠식당하는 거네요.”
“마 너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고. 어찌됐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직업이 되게 괜찮을 거라 이 말이라.”
“하지만 그러면 인간이 아니라 이세계인들을 뽑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니는 인자 더 이상 인간이 아아다이가.”
“…?”
인간 아니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나는 의아함에 부장님을 쳐다보는 것도 잠시, 때 마침 도착한 커피와 함께 물건이 도착하자 부장님은 불투명 봉투에 들어 있던 자그마한 카드 같은 것을 내게 건네었다.
“이건…”
“니 이름은 인자부터 김찬혁이 아니라 트레페 피그디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