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2부 9화 - 훈련 준비.
‘티르 아 닉 오르그 네이씨오.’
뭔가 발음부터 굉장히 이상한 마법은 아까 크레아가 밖에서 언급한 그 마법. 무려 꿈에서 현실과 같은 체험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아주 복잡하고 효과적인 마법이었다.
얼마나 효과적이면 단순히 체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체험한 것들이 실제 현실의 경험치가 되어 누적까지 된다고 하는데.
문제라면 현재 크레아의 상태가 영 시원치 않다는 것이었다. 약해진 지금 상태로는 온전히 마법을 발동 시킬 수가 없다는 뜻이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 방법이 나로서는 굉장히 찝찝할 뿐이지만 말이다.
“… 그래서, 그런 이상한 약이 있어야 된다는 거지?”
“그래, 왜 그런 약 있지 않느냐? 뭔가 꿈에서 특수한 성행위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런 약.”
“다른 방법은 없어?”
“글쎄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구나.”
뭐가 어찌 됐든 ‘티르 아 닉 오르그 네이씨오.’ 라는 마법은 꿈에서 벌어지는 마법.
그러니 잠에 들어 꿈을 꿈과 동시에 감각까지 생생하게 느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것을 모두 만족하는 방법은 그런 약을 먹는 것 말고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이 크레아의 주장이었고, 나 역시도 그녀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것 말고는 앞선 조건들을 만족하는 게 없어 보이긴 하거든.
다만 그냥 내가 싫다. 당장 그런 약을 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가랑이 사이가 쓰린 기분이라서 말이지.
그러니까 이럴 때는 대충 아쉬운 척 거절 하는 걸로 하자.
“... 그러면 어쩔 수 없네. 아쉽지만 포기하자. 애초에 대한민국에서 그딴 약을 구할 방법은 없잖아? 그렇지?”
“크흠… 그거 말이다. 그… 약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구나.”
“…”
시발… 그게 무슨 말이야?
예상치 못한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심히 당황스러운데, 지금 저 눈 앞의 망할 노예 놈이 내 시선을 피하는 걸 보아하니 분명 저 년이 범인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
“왜… 나를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데 주인님?”
“몰라서 물어? 설마 너, 나 한테 그렇게 혼나고 또 그런 이상한 약을 집에 가져다 놓은 건 아니지?”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 필요 할 거 같아서…”’
“…”
필요 할 것 같아서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봐도 눈깔 돌아가는 각도가 죄를 마구마구 저지른 듯한 뉘앙스인데, 먼저 입을 연 건 엘피가 아닌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크레아였다.
“크흠…! 요즘은 인간 세상에서도 그런 약을 파는 것 같더구나.”
“뭐?”
“그래서 내가 사라고 했다. 어차피 훈련할 때 필요 할 것 아니냐.”
“아니… 잠깐만. 그러면 지금 그 약이 오고 있다는 거야?”
“그래, 엘피 말로는 슬슬 올 때가 됐다고 하더구나… 그렇지?”
“네. 퀵으로 시켰으니까 아마 조금 있으면 오지 않을까요?”
“…”
퀵이라니… 시발 이제 한국에서도 그딴 약을 퀵으로 받아 볼 수 있는 거냐?
진짜 살다 살다 이세계의 약을 퀵으로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순간 평화로운 일상을 깨는 날카로운 종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지금 이것이 현실이라고, 그러니까 받아들이라는 듯이 말이다.
“어. 왔다! 왔나 봐!!”
“…”
“뭐 해? 그렇게 멍 하니 서 있지 말고 어서 받으러 가. 아저씨 기다리시잖아.”
***
배달원이 나에게 건네어 준 건 ‘메디세 데모니지움’ 이라는 단어가 인쇄된 스티커가 붙어 있는 작은 상자였다.
번역하자면 약 박물관… 정도였는데,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애초에 다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이 상자가 우리 집에 온 것 까지는 합의된 거라고.
그런데 막상 까보니 약이 너무 많다. 시발 이걸 한 번에 다 복용 할 리는 없잖아? 그렇지 엘피?
“…”
“대답.”
“아니…! 그… 그게… 좀 이상하네? 하하;;”
“…”
이상해? 나는 네가 더 이상한데?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궁금한 점이 많은 것 같으니까 주문 내역 한번 까 볼까? 라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서야 이 망할 노예 놈이 바른 대로 불기 시작한다.
“아니 그게… 사실은 따로따로 배송을 시켰거든? 그런데 왜 이게 한 번에…”
“뭐? 따로따로 배송을 시켜?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어?!”
“아… 아니…! 그러니까 그… 오늘 내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 그 소원 분이랑 오늘 쓸 거랑 같이 왔나 봐. 분명히 다른 날짜로 배달 시켰는데… 하하;;”
“소원 분이라니… 설마 너의 그 소원이 꿈에서 나를 겁탈하는 건 아니지?”
“…”
하… 맞구나.
도대체 날 몇 번이나 따먹으려고 이렇게나 많이 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 먹을 것 빼고 전부 다 버리겠다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눈치를 살피고 있던 엘피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 안돼! 이게 얼마 짜린데…”
“얼마인데?”
“…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 줄 거야?”
“…”
하… 저 천방지축 같은 노예 놈을 어찌해야 하니?
마음 같아서는 꿀 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 싶은데… 어찌 됐거나 비싸면 그냥 반품하면 된다는 생각에 나는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원 하는 대로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 주겠다’ 라고 말이다.
“진짜지?”
“그래… 그러니까 말해. 얼마야?”
“… 1”
“1…”
“1만원?”
“은… 아니고, 그 뒤에 0이 하나 더 붙어…”
“…”
시발… 아니 그러면 이 박스 하나에 60 만원이라는 거야?
너무 당황스러워서 말도 안 나오는데, 어찌 됐거나 용서해주기로 했으니까 그냥 넘어가는 걸로 하자.
남자는 원래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거 아니잖아? 게다가 마침 필요하기도 하고 말이다.
“하아... 알겠어. 그러면 오늘 쓸 것만 두고 나머지는 반품해.”
“잠깐만 그건 아니지!! 내 소원은?! 어?!!!”
“소원?”
“왜 모른 척이야? 내가 오늘 내기에서 이겼잖아!”
“…”
아, 그래. 그렇지.
그래, 그러면 소원 분 까지만 남겨둬… 라고 말 하려는데, 문득 미쳐 확인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도대체 이 약… 무슨 약이지?
“…”
누가 봐도 인위적으로 색을 낸 듯한 불길한 생김새의 액체.
색깔은 아주 찐한 노란색을 띄는 것이 먹음직스러워 보이긴 한다 만, 고작 50ml 남짓한 유리병의 뚜껑을 열어 코를 맡아보니 냄새가 심상치가 않다.
뭔가 썩은 파인애플이랑 페인트 같은 걸 섞은 냄새가 나는데?
게다가 내 소원 분 까지라면서 왜 약이 6 개나 되는 건데? 나머지 2개는 뭐야? 어?!
“아니… 그… 일단 진정하고… 응? 하나씩 설명해 줄게.”
“하… 좋아. 그러면 일단 이 약부터 설명해봐… 애초에 이거 먹어도 되는 건 맞지?”
“당연히 먹는 거지! 주인님은 그걸 말이라고 해? 그렇죠 크레아님?”
“그래, 독약이나 그런 건 아니다.”
“… 확실해?”
“당연하지 이놈아. 내가 살짝 찍어 먹어보고 하는 말이야.”
“…”
그래? 그러면 이 약의 정체가 도대체 뭔데?
도대체 뭐길래 이게 하나에 10 만원 씩이나 하는 거냐고.
나는 본격적으로 취조하듯이 엘피를 노려보고, 엘피는 날카로운 내 시선을 슬쩍 피하며 말한다.
“아니 그러니까 이게 그… 그때 먹은 그 약이랑 비슷한 약이야.”
“그때 먹은 약이 뭔데 도대체… 네가 나한테 먹인 약이 한 두 개냐?”
“그거 있잖아… 쉽게 절정 하는 약.”
“…”
쉽게 절정 하는 약? 설마 그때 그 민감도 약인가?
아주 그냥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인데, 한편으로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분명 이런 냄새와 색깔이 아니었던 것 같거든.
게다가 민감도 약이라면 딱히 꿈이랑 관계없는 거 아닌가?
“…”
“왜 그래 주인님? 뭔가 내 설명에 이상한 점이라도 있었을까나…?”
“어.”
“뭐… 뭐가 말이야?”
“민감도 약이면 딱히 잠이랑 관계없잖아.”
우리 그때 맨정신으로 하지 않았냐고.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침대가 더러워지는 걸 막으려고 한번 계량한 거라고 한다.
이런 표현 조금 많이 저급하지만... 어찌됐거나 꿈에서는 마음껏 싸도 괜찮으니까 말이다.
침대 더러워지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거지.
“하… 그래 알겠어. 그러면 남은 두 개는 뭐야? 도대체 왜 초과 분이 한 쌍 남는 건데?”
“그… 그건… 말이야… 혹여나 주인님이 이 경험을 되게 즐거워하게 될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혹시나 다음에도 필요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 그래서 미리 사 뒀다고?”
“응…”
“…”
후... 이 년을 어쩌면 좋니?
아주 그냥 얼탱이가 없는데, 어찌 됐거나 똑바로 된 약은 맞는 것 같으니까 안심이긴 하다.
먹고 돌연사 할 일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 남은 건… 남은 초과 분 2개를 반품하고 이 약들 중 하나를 맛있게 먹는 것 뿐인가?
“…”
“뭘 그렇게 보는 것이냐?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게야?”
“아니 그냥... 그나저나 지금부터 이 약 먹고 누우면 되는 거지?”
어찌 됐거나 후딱 해치우고 싶다.
나는 크레아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지만, 어째 돌아오는 대답이 영 시원치가 않다.
“크흠…! 사실 그게 그… 너도 알다시피 내 힘이 약해져서 말이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여 마법이 중간에 끊어지면 곤란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보험을 들어 놓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보험? 무슨 보험?”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다… 전개도를 그리는 게 좋을 것 같아.”
“… 전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