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2부 46화 - 오마카세 (1).
엘피는 크게 싫어하는 음식이 없다.
육류는 물론이요, 유제품, 채소류, 과일류, 등등… 먹는 거라면 없어서 못 먹지 싫어해서 안 먹지는 않는 녀석인데, 그런 수많은 먹거리들 중에서도 유독 좋아하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해산물이었다.
바다와는 연이 없는 애라 이런 거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좋아하더라고.
다만, 바다에서 나는 것들은 비싸고. 나와 엘피는 함께 보낸 대부분의 시간이 빈곤의 나날이었으니 자주 사 먹지는 못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런 특별한 날은 아무래도 육류보다는 해물이 더 구미가 당기는 것 같다. 나는 말 할 것도 없고 엘피 역시도 말이지.
“와… 이게 얼마만의 생선이야?”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날 생선이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야.”
“바보야? 아무리 오래 됐어도 그 정도는 아니거든?”
“…”
거의 다 풀린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는 좀 까칠하네.
물론, 이전과 달리 계속해서 대화가 이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꽤나 고무적이긴 하다.
어찌 됐거나 나는 남녀 간의 분쟁에 있어 제일 안 좋은 게 침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그러니 어떻게든 대화만 이어 나갈 수 있다면, 거기에 유머까지 곁들인다면 더더욱 좋겠지. 그런데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 … 제안합니다. 너 밖에 모르는 바보… 어떻습니까?
“…”
너 밖에 모르는 바보라… 정말로 바보 같은 대답이구만 그래.
애초에 알트 너는 왜 중요할 때 입 꾹 다물고 있다가 이제 와서 이러는 건데?
진작 도와줬으면 이런 일도 없지 않았냐고, 나는 화 내듯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 보지만 그 뿐.
이 망할 마법 뭉치는 팩트로 나를 두들겨 팰 뿐이었다.
- 애초에 당신 잘못이지 않습니까?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니 달게 받아야죠.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 그리고 뭘 어떤 식으로 거짓말 탐지기에 안 걸리게 합니까? 심 정지라도 시켜드려요? 게다가 그런 식으로 계속 거짓말하면 언젠가 들통나기 마련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청산해야…
“…”
미안해 시발… 내가 잘 못 했어.
그러니까 제발 그만 하라고, 나는 또 다시 처절하게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고.
녀석은 그제서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던 잔소리를 멈춘다.
- … 확인. 그러면 제가 제안한 ‘너 밖에 모르는 바보…’를 실시하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 임마.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건데?)
- 저의 제안을 거절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시발… 너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니?)
당장 대사 부터 존나 구린 건 물론이요. 이미 너랑 티격태격 하느라 말 할 타이밍도 놓쳤는데 이제 와서 무슨 그게 무슨 바보 짓이냐고.
나는 아주 그냥 얼탱이가 없는 것이었지만, 도대체 이 망할 마법 뭉치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 제 말을 들으면 자다 가도 떡이 떨어지는 법입니다. 어서 실시.
“…?!”
마치 누군가 가 나를 조종하는 듯한 느낌에 아등바등 저항해 보지만 그 뿐.
녀석의 마법에 걸린 나는 결국 그 말을. ‘너… 너 밖에 모르는 바보…!!’ 라는 말을 해 버렸고, 그 뜬금없는 한 마디에 나와 엘피 사이에는 일 순간 무거운 정적이 흐른다.
“… 뭐? 뭐라고?”
“아니… 엘피 네가 방금 전에 한 말 있잖아… 나보고 바보라며, 그래서 너 밖에 모르는…”
“… 이제 와서?”
“…”
그러게 시발. 왜 이제 와서 이 지랄을 하라고 한 걸까?
나는 이 좆 같은 마법 깡통련을 원망 해보지만 녀석은 묵묵부답이었고, 동시에 엘피는 어이가 없는 듯한 뉘앙스의 실소를 터뜨린다.
“허 참…”
“아니… 그… 이건 말이야. 그러니까…”
“씨끄러! 으휴…! 하여 간에 말이라도 못 하면…”
“…”
미안해. 내가 그냥 무조건 미안해 시발.
비록 운전 때문에 엘피의 표정을 볼 수는 없지만, 아마 나를 쓰레기 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금 그 망할 마법 뭉치가 원망스러워지는데… 그 순간 허벅지 위로 익숙한 손길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아… 제발. 말 만 그러지 말고 앞으로는 잘해… 알겠지?”
“!!!”
아니 시발… 이게 되네?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알트님의 선견지명 내 평생 잊지 않으리라고.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애써 벅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르기 시작한다.
지금 운전 중인데, 여기서 더 신나면 사고 날 것 같았거든.
“고맙다. 그리고 미안해 진짜로…”
“하여간에 말은… 그나저나 무슨 초밥 집이 이런 주택가에 있어?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지?”
“당연하지. 네비게이션은 거짓말 안 해.”
“그래? 누구랑은 다르네?”
“…”
살짝 느슨해졌던 우리 사이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한 마디.
비록 이전 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엘피는 말로, 그리고 내 허벅지를 꽉 쥐어 잡는 행동으로 표출하고 있었고.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살기에, 나는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필사의 힘을 다해 말 돌리기를 시전 한다.
“크흠…! 어찌 됐거나 길은 맞으니까 걱정하지마.”
“… 그래? 그런데 식당이 이런데 있다는 건 별로 장사하고 싶지 않다는 거 아닌가?”
“아니지. 당장 우리만 봐도 알아서 찾아가고 있잖아. 그 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 아니겠어?”
“자신이라… 자신이 아니라 오만함 같은데…”
“…”
그래. 어쩌면 엘피 네 말 대로, 그저 평범한 식당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오늘 갈 곳은 일반적인 식당이 아니라서 말이야.
“글쎄? 가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
“그 정도라고? 나 진짜 잔뜩 기대해도 되는 거지?”
“그럼. 당연하지.”
“... 가게 이름이 뭔데?”
“우미.”
“우미? 뭔가 엄청 비싸 보이는 이름인데?”
“…”
그래, 엄청 비싸지. 디너가 인당 18 정도 되니까 말이야.
물론, 굳이 대놓고 생색을 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주 살짝 티 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한 번 맞춰 봐. 오랜만에 업 다운 한번 할까?”
“오… 뭐야? 진짜 자신 있나 보네? 인당 한 5 만원 정도 줬어?”
“아니, 그것보다 업이야.”
“뭐? 설마 10 만원 넘게 준 건 아니지?”
“…”
방금 전과는 달리 살짝 격양 된 엘피의 목소리.
화를 내는 건지, 아니면 내심 기대하고 있는 건지 구별이 잘 안 되는데… 그건 이제부터 확인해보면 되는 일이니, 나는 존나 멋있게 목소리를 깔며 이렇게 말한다.
“업.”
“업?! 아니… 미쳤나 봐. 어?! 무슨 밥 한끼 먹는데 10 만원 넘게 써?”
라고. 엘피는 그렇게 말하면서 질책하듯 내 허벅지를 때리는 것이었지만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진짜 화 났으면 존나 쌔게 때렸을 텐데 말이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말로는 저러면서도 내심 속으로는 기대하고 있는 거겠지?
“야, 이럴 때 기분 내는 거지… 그리고 나 요즘 돈 잘 벌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돈을… 설마 오마카세야?”
“그건 서프라이즈니까 직접 가서 확인해 봐.”
“서프라이즈?! 맞네 맞어! 오마카세지? 응?!!”
“…”
어쩌면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무색해질 정도로, 잔뜩 기대하고 있는 듯한 엘피의 하이톤 보이스가 나를 찌른다.
만약 내가 여기서 오마카세를 부정하는 순간. 저 녀석의 세상이 무너지는 건 물론이요, 겨우 아물기 시작한 나와 엘피와의 관계가 다시 박살이 날 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하지만 상관없다. 왜냐면 오늘 갈 곳은 엘피의 추측대로 오마카세가 맞거든.
예전부터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언제 한번 데려가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게 오늘이네.
“맞네! 맞아!! 내가 방금 검색해보니까 나오네 우미. 얼마야? 인당 18.4? 아니… 너무 비싼 거 아니야?”
“나 요즘 돈 잘 번 다니까? 게다가 예전부터 한 번 즈음은 데려가고 싶기도 했고…”
“… 그래?”
“그래, 너 이런 거 한 번씩 찾아볼 때 마다 표정이 너무 아련하더라.”
이런 말 하면 꼭 그렇지만, 꼭 먹지도 못하는 간식을 눈 앞에 둔 강아지 같은 표정이었다고.
그래서 그 표정이 계속 눈에 밟혀서 언젠가는 한번 데려가야겠다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했다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부끄러운지, 자기는 그런 적 없다며 내 허벅지를 투닥이는데… 아주 그냥 깜찍한 게 귀여워 죽겠다.
“알겠어 알겠어… 그나저나 이제 거의 다 도착했으니까 내릴 준비나 해. 준비는 됐지?”
“당연하지! 어서 가자. 나, 배고파~”
***
우미는 오마카세라는 칭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낡은 오피스 건물 3층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 끼에 18 만원이 넘는데 뭐 이런 곳에 업장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하지만 우미라는 폰트가 새겨진 나무 문을 여는 순간 의심은 이내 곧 확신이 되고, 낡은 건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함께 깔끔한 복장의 직원이 나와 엘피를 맞이한다.
“어서 오세요. 예약자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김찬혁 입니다.”
“김찬혁… 아 네, 확인했습니다. 두 분 이쪽으로…”
“…”
따라오라는 직원 분의 말에 나와 엘피는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르고, 동시에 외부에서는 보지 못했던 우미의 내부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분위기 있게 살짝 어두운 조명. 그리고 안쪽을 향해 길게 뻗어 있는 복도.
우미의 인테리어는 특이하게도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었는데, 고급스러운 짙은 갈색의 벽은 나무를. 작은 흰색 자갈로 되어있는 바닥은 흙은 연상 캐 하며 한 대 어우러지고 있었다.
마치 해 질 녘의 미묘한 어둠이 내리 앉은 숲처럼 말이다.
“와… 분위기 죽인다… 그치 주인님?”
“그러게… 뭔가 숲에 난 길을 걷는 기분이야.
겉으로 보이는 것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이건 아무리 봐도 숲을 컨셉으로 잡고 인테리어를 한 게 틀림없다고 봐야겠지.
다만 이게 초밥집이랑 어울리냐고 물어보면 그건 잘 모르겠다. 피톤치드랑 생선이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잖아?
그래서 그런지 자리에 가서 앉기 전 까지만 해도,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초밥 집이라는 게 실감이 잘 안 되는 기분이었는데.
눈 앞에서 열심히 요리를 준비하는 쉐프들을 보고 있자니, 정갈하게 놓여있는 아기자기한 수저들을 보고 있자니 비로소 실감이 나는 기분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인터넷으로만 보던 미식의 현장이라는 것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