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season2. 64. 재난(2)
season 2
64. 재난(2)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대한민국 재난사에, 아니, 근현대사에 깊게 새겨지는 큰 사고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17시 55분 경,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풍 백화점이 무너진다.
붕괴로 인한 피해로 인명피해는 사망 502명, 부상 937명, 실종 6명이 발생하게 된다.
재산 피해도 상당하다.
먼저 부동산으로, 백화점 건물 전체 붕괴 900억 원, 시설물 500억 원, 동산 상품 300억 원, 양도세 1,000억 원이 발생한다.
피해보상액은 인적 피해보상비 2,971억 원, 보상비 1억 4천 5백 만원, 물적 피해보상비 820억 8천 5백 만원, 주변 아파트 피해 등의 보상액이 더해져 단일 재난 피해액 최고치를 세운다.
전생에 기찬은 그 사고를 뉴스 속보로 봤다.
그런데 지금, 그 끔찍한 참사 현장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막아야 해.’
기찬은 수소문 끝에 방송실을 찾아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관계자 외 출입 금지였다.
“외부인 출입 안 됩니다. 왜 이러세요?!”
“잠깐이면 됩니다! 제 말좀 들어봐 주세요! 여기 다 죽어요!”
아무리 절박해 봐야 다른 이들에게는 기찬이 미친놈인 거다.
그럴 수밖에.
너무 멀쩡한 건물이 곧 무너진다는데, 누가 귀담아듣겠는가.
“학생! 계속 억지 부리면서 소란 피우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결국 기찬은 직원들에 막혀 방송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상황은 아니었다.
‘500명이 죽는다. 무려 500명!’
급하게 공중전화를 찾아가 119에 전화했다.
“여기, 서초동 삼풍백화점입니다. 건물 붕괴 조짐이 있어서 신고하려고요! 급합니다! 전부 대피시켜야 합니다!”
이번에도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놀라는 대신 화를 삯이듯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러고는 장난 전화를 확신하듯 심드렁하게 응대했다.
“거짓 신고의 경우 즉결심판으로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그 말만 반복했다.
그럼에도 기찬이 계속 강조하고 거의 애원하듯 들러붙자 수화기 너머로 누군가의 지시가 들렸다.
- 백화점 안전관리팀에 확인해 봐.
그나마 확인 과정을 거쳐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지만, 확인 해 봐야 아무 일 없는데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뻔했다.
절망스러웠다.
나만이라도 나가야 하는 걸까?
그럴 거면 애초에 이 지랄 떨지도 않았다.
‘그래. 나라도 그랬을 거다. 멀쩡한 백화점이 무너진다고 해 봐야 누가 믿겠냐고.’
부실시공으로 하중을 못 견뎌 무너질 거라고 사실을 말해도, 지금은 그저 미친놈 취급뿐이다.
상황을 받아들인 기찬은 전화를 끊었다.
달칵.
‘5층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하니까, 일단 거기 사람들부터 아래로 대피시키자.’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상층부로 뛰어 올라갔다.
“혹시 죄송한데, 여기 휴지통이 어디있죠?”
“네? 어떤 휴지통을 말씀하시는 건지…?”
“아무거나요. 공용으로 비치해놓는 큰 휴지통이든, 여기서 직원분들이 쓰는 작은 거든, 빨리요!”
“아, 큰 건 비상계단 출입문 앞에 있고….”
기찬은 직원의 말을 마저 듣지도 않고 다시 달렸다.
달리면서 천장을 빠르게 살폈고, 몇 군데 소방 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시대에 스프링클러를 갖추고 있다니, 고급 백화점이 맞긴 맞았네.’
그럼 뭐하나.
몇 분 후면 폭삭 무너지는 부실건물인걸.
사람이나 물건이나 건물이나,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이 빈 건 못 쓰는 쓰레기다.
급박한 중에도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비상계단에 도착했다.
직원 말대로 커다란 은색 철제 쓰레기통이 놓여있었다.
기찬은 머뭇거림 없이 그걸 끌고 가장 가까운 화재경보기 아래에 가져다 놨다. 그리고 쓰레기통 안에 불을 놓았다.
금방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어찌된 건지, 기대했던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씨발, 경보기가 있으면 뭐해! 작동하질 않는걸!”
이러니 건물이 무너지지. 썅.
한바탕 욕지거리를 질겅인 기찬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불이야! 불이야!”
“전부 1층으로 대피하세요!”
“불이야!”
“계단! 비상계단!”
그 소리에 놀란 주변 사람들이 돌아보니 정말로 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비록 쓰레기통 안에서의 불이지만, 놀라 도망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꺄악!”
“불이야!”
비명과 외침이 뒤섞이며 점차 번져나갔다.
기찬은 그걸 두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고, 그곳에서도 같은 짓을 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소동으로 백화점은 아수라장이 됐다.
더 이상 불 지를 필요가 없게 됐고, 목청껏 소리치며 기찬도 아래로 내려갔다.
“왜 안 피하고 계세요?”
위층과 달리 2층에서는 아직 여유로웠다.
위에서 몰려 내려오는 인파와 검게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를 보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었다.
“누가 휴지통에 불 지른 거라는데요? 금방 꺼진다고, 괜찮다고 방송 나왔어요.”
워낙 급박하게 움직이느라 방송을 듣지 못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저만치에서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들이 무전기를 들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 새끼들, 나 잡으러 다니는구나.’
지금 잡히면 자신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보안실 같은 곳으로 끌려가 갇히게 된다.
그래서 얼른 자리를 떴다.
비상계단은 오히려 통제되고 있을 것 같아 에스컬레이터의 인파에 섞여 들었다.
그대로 백화점 정문 밖으로 나가면 된다.
시간을 확인했다.
17시 45분.
‘벌써?!’
기찬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붕괴 10분 전.
주변 사람들을 둘러봤다.
곧 죽게 될 사람들이다.
기분이 묘했다.
마치 자신이 저승사자가 되어 망자들의 영혼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젠장. 이 사람들이 무슨 죄야.’
빠득.
이가 갈렸다.
그렇다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난 영웅 놀이는 관심 없어.’
하지만 생각과 달리 마음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최선을 다했어?
500명이 넘게 죽게 될 텐데?
미래를 아는 것이 꼭 축복만은 아니란 걸,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 씨발, 어쩌라고!”
기찬은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 기찬을 돌아봤다.
“다들 빨리 백화점 밖으로 피신해요! 건물 무너진다고!”
빽 소리를 지른 기찬은 사람들을 밀치고 자신을 찾아다니던 보안요원들 쪽으로 다시 달렸다.
그 소란을 본 그들도 기찬을 향해 달려왔다.
그렇게 서로 가까워졌을 때, 남자들 몇이 기찬을 감싸기도 전에 기찬이 먼저 책임자로 보이는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뭐, 뭐야?!”
순식간에 여자를 잡아채 번쩍 들어 올리고는 아래층이 보이는 유리 난간으로 갔다.
모두 너무 놀라고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신 뭐야?! 뭐 하는 거야?!”
“팀장님!”
“그 여자분 내려놔!”
보안요원들이 뒤늦게 소리를 질러댔다.
기찬은 당장이라도 여자를 난간 아래로 집어 던질 것처럼 자세를 만들었다.
“방송실! 방송실에 무전 해! 당장 여기 사람들 다 대피시켜!”
기찬의 목소리가 쩌렁 울렸다.
사람이 위기에 처하니 없던 초능력이 생기는 것처럼, 정말 말 그대로 사자후였다.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마, 말좀 해요 우리!”
기찬에 의해 강제로 3층 난간에 매달리게 된 보안팀장이 울상을 지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기찬은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경계하며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게 말했다.
“미안해요. 하지만 정말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고는 다시 소리쳤다.
“빨리 방송해! 안 그러면 이 여자 죽어!”
기찬이 잡고 있던 여자의 한쪽 손을 놨다.
그러자 여자의 몸이 훅 기울며 아래로 살짝 미끄러져 내려갔다.
꺅!
이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당사자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눈만 꼭 감고 있었다.
기찬은 마지막 경고처럼 포효했다.
“시간 없어! 방송!”
그제야 보안요원 중 하나가 무전을 했고, 한 시간 같은 1분이 지날 무렵 드디어 방송이 나왔다.
“고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립니다. 지금 저희 백화점에는….”
설명이 구구절절 길었다.
기찬은 화가 치밀었다.
“씨발, 그냥 빨리 다 대피하라고 하면 될 걸…….”
하긴. 백화점 입장에선 아무 일도 없는 상황에서 미친 인질범 하나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 상황이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 기찬의 머릿속에 그런 이해가 자리할 틈은 없었다.
“당신들도 사람들 대피 도우라고!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그렇게 악에 받치듯 소리를 지를 때였따.
구우우우.
옅은 진동이 느껴졌다.
기찬만 느낀게 아닌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기찬과 자신들의 팀장을 지켜보던 사내들도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기찬은 여자의 손을 놓았던 왼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17시 53분.
붕괴 2분 전.
씨발. 내가 죽게 생겼네.
기찬은 여자를 힘껏 끌어올렸다.
바닥에 안전하게 내려놓고 여자에게 말했다.
“죽기 싫으면 당장 건물 밖으로 나가. 저 사람들 데리고, 가능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내보내. 그게 당신이 천국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거야.”
빠르게 말을 쏟아낸 기찬이 마구 달렸다.
뒤늦게 보안요원들이 기찬을 쫓았다.
“거기 서!”
“저 새끼 잡아!”
“인질범 잡아!”
하지만 기찬의 속도를 따라잡을 사람은 없었다.
별 위기 없이 사람들을 밀치며 1층에 다다른 기찬은 헛숨을 삼켜야 했다.
콰아아앙!
붕괴가 시작됐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천장에서 돌무더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
비명은 건물 무너지는 소리에 묻혔고, 이미 그 잔해에 여러 사람이 깔렸다.
건물 입구가 천장이 무너져 떨어진 잔해에 막혔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런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