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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화 season2. 66. 재난(4)


season 2 66. 재난(4) 방보연은 있는 힘을 다해 벽에 붙어서 한 계단씩 내려갔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이 밀고 올라오는 걸 거슬러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매장 안도 이미 생지옥이었다. ‘어쩌지? 미친놈은?’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미친놈을 찾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식품 매장의 계산대 위로 올라섰다. “저기 있다!” 보기 드문 장신이었기에 쉽게 눈에 띄였다. 그는 미친놈답게 텅 빈 식품 매장을 쇼핑하고 있었다. 서두르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그건 누가 봐도 쇼핑이었다. 카트를 밀며 이것저것을 담고 있는 모습이 괴이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정말 미친 거야? 나 그럼 여기까지 괜히 따라온 거야?” 진동이 강해지고 굉음이 가까워지면서 공포는 극에 달했다. 그런데 그때, 미친놈이 쇼핑을 끝냈다. 그는 갑자기 철제 진열대를 끌어다가 움푹 들어간 독특한 공간 주변을 빙 둘렀다. 그 위로 이것저것을 덮어씌우더니, 이내 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 방보연은 그제야 그가 뭘 한 건지 깨달았다. 자신도 빨리 그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밀려 나오는 인파를 도저히 뚫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살려면 뚫어야 했다. 뚫고 미친놈에게 가야 산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그래서 이를 악물고 인파를 역행했다. 하지만 밀려 나오는 인파를 뚫는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겨운 일이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니 벌써 기진맥진했다.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 밟혀 죽는 상황이었다. 옷이 찢기고 몸 곳곳에 멍들고 상처가 났다. ‘설마, 여기서 이대로 죽는 거야?’ 그때였다. 만들어놓은 구조물 속에서 미친놈이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빠르게 이쪽으로 달려왔다. ‘날 봤나?’ 화색이 돌았다. 직전까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쿵쾅대던 심장이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두근거림의 의미가 달라졌다. 그건 희망이었다.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였다. 그래서 가까워진 그를 향해 있는 힘껏 손을 뻗었다. “나 여기 있어요!” 그런데, 그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다른 여자를 번쩍 끌어안고 되돌아갔다. 다시 한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어?” 순식간에 저만치 멀어진 사내의 뒷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지금 상황이 수긍 됐다. ‘그렇지. 저 남자가 날 어떻게 알겠어.’ 하지만 수긍은 수긍이고, 당장 죽게 생긴 마당에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 살려주세요! 저기요! 야, 이 새끼야!” 그녀의 발악은 사람들의 비명과 건물이 무너져 돌덩이가 떨어지는 굉음마저도 뚫어냈다. 드디어 미친놈이 돌아 본 것이다. “살려주세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륵 흘렀다. * * * 기찬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 나간 것은, 자신을 똑바로 보면서 인파에 휩쓸려 떠밀려 올라가는 여자 때문이었다. 그녀는 조금 전 자신이 난간 밖으로 늘어뜨려 놓고 방송을 협박했던 보안팀 팀장이었다. 왜 그녀가 지금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건, 그냥 두면 죽는다는 것이다. 죽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최소한 이 여자는 자신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기찬이 아무리 대피하라고 떠들었어도 귓등으로 들었던 사람들이다. 이제와서 어떻게 구할 방법도 없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팀장을 인파쏙에서 끄집어 내 오는 도중, 누군가 마구 기찬을 향해 욕설을 내질렀다. 돌아보니 옷은 다 찢어져서 넝마가 된 채로 눈물 콧물 범벅인 여자가 기찬을 향해 손을 뻗어 허우적대고 있었다. “미치겠네. 왜 이제 와서…….” 기찬은 팀장을 내려놓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공간을 가리켰다. “들어가있어요!” 기진맥진한 여자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비틀거리며 나름의 쉘터로 달렸다. 그사이 기찬은 천정의 붕괴 상황을 빠르게 살피고 다시 인파 쏙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쭉 뻗은 여자의 손을 낚아채 번쩍 안아 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완력으로는 당겨지지 않을 정도로 뒤엉킨 무리는 그야말로 늪 같았다. “뛸 수 있어요?” “네.” “곧 완전히 무너질 거에요. 뛰세요.” 조금 매정해 보일지라도 여자를 내려놓고 먼저 달렸다. 생판 모르는 남 구하자고 자신이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쩌어어엉. 콰직. 콰콰콰콰쾅! 기찬이 간이 쉘터로 몸을 욱여 넣자마자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간발의 차로 몰골이 엉망인 여자도 몸을 숨기는 데 성공했다. 기찬은 기다렸다는 듯이 두 여자에게 수건을 건네주고 가타부타 설명 없이 챙겨놓은 이불 뭉치로 좁은 통로를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자신도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 먼지와 분진 등으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하며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런 기찬을 보며 두 여자도 따라했다. 그렇게 그들은 본격적인 붕괴가 시작되고 꽤 오랫동안 진동과 소음에 덜덜 떨어야 했다. 기찬 자신도 생존을 확신할 수 없었기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따. 그저 자신이 급하게 마련한 이 쉘터가 제발 버텨주길 바랄 뿐이었다. 콰콰콰콰콰. 쿠우우. 쏴아아아. 건물이 무너진다는 건, 단순히 돌무더기에 짓이겨지는 위험만 있는 게 아니다. 지하 1층이라지만 더 아래 지하가 있기 때문에 바닥이 무너지면서 낙사할 수 있다. 전기며 수도, 가스 등 내부에 매설된 각종 배관이 끊어지면서 크고 작은 폭발과 홍수라도 난 것 같이 물에 잠길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 기찬의 쉘터는 안전했다. 위에서 떨어진 돌무더기는 기찬이 준비한 철제 진열장이 버틸만큼 그 양이 적었다. 아무래도 내력벽 아래 위치한 공간을 잘 찾은 덕이었다. 배관도 마찬가지다. 기찬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은 전기 배관 말고는 전부 천장으로 올라가는 구간이었다. 그래서 가스 냄새나 불꽃이 튀어 폭발을 일으키는 사고로부터도 비껴갈 수 있었다. 다만, 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잠길 만큼의 피해는 아니었고, 흠뻑 젖는 정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상이 멸망한 것 같은 온갖 소란과 생난리가 지나고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한 채로 귀를 쫑긋 세우고, 감각을 전부 외부로 집중해야 했다. 그리고 그제야 세 사람이 서로 꼭 끌어안고 있다는 걸 인식했다. “너무 무거워요.” 기찬의 밑에 깔린 여자가 말했다. 보안팀 팀장인지, 살려내라고 욕을 해대던 여잔지 모른다. “저, 저도 숨 쉬는 게….” 또 하난 벽 쪽에 눌린 모양이었다. 기찬은 좁은 틈바구니에서 몸을 틀어 나름의 공간을 만들었다. “예정에 없던 불청객은 내가 아니라 당신들 같은데….” 누굴 탓할 상황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괜히 역정이 났다. 아무래도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극도의 긴장과 그로 인해 날카롭게 선 신경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엉뚱한 것에 그런 날 선 마음이 녹아내렸다. 흠. 기찬의 아래에서 몸을 빼내려고 움직이던 여자의 콧소리가 뒷골을 시큰하게 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여자의 움직임에 팔꿈치에 닿아있던 물컹한 감각이 오롯이 느껴졌다. 꾸우욱. 물컹. 기찬의 명품 대물은 이런 극한 환경 속에서도 그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 냈다. 불끈. 꼴렸다. 그 단단하고 굵은 게 아래에 깔린 여자의 몸 어딘가를 눌렀다. 아니, 찔렀다. 그런데 또 하필 그게 사타구니 사이인 것 같았다. “……!”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놀라는 기색이 기척으로 전해졌다. 팔꿈치에 닿았던 말캉함도 그 상황을 피하려고 움직인 것이 오히려 더 곤란하게 됐다. 팔을 뻗어 여자의 등 뒤로 손을 놓으면 접촉 위험이 줄 거로 생각했으나, 공간이 협소한 게 문제였다. 팔을 다 뻗지 못하고 오히려 어정쩡하게 굽혀진 팔 각도 때문에 여자의 가슴을 손으로 덮어버렸다. 본의 아니게 난처하게 됐지만, 그 덕에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아래가 팀장이고, 벽에 붙은 게 욕쟁이구나.’ 손에 닿은 가슴이 노출되어 있었기에 안 것이다. 인파에서 구해낼 때, 욕쟁이는 상의가 거의 다 찢기고 벗겨져 속옷만 걸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 판단 중에 잔뜩 흥분한 기둥이 자극받았다. 팀장이 기찬의 발기한 대물을 느끼고 그 좁은 틈에서 꼼지락거리며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자극 덕에 기찬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삼켰다. 흠. 악순환이었다. 단단한 기둥이 여자의 가랑이 사이를 찌르고, 여자는 그걸 피하거나 막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기찬을 자극했다. 그런 와중에 기찬의 손가락 사이에 끼인 욕쟁이의 젖꼭지가 단단해지는 걸 인지해 버렸다. 기찬은 어이가 없었다. ‘미치겠네 썅.’ 생과 사.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데, 색욕이 웬 말인지. 그래서 기찬은 몸을 세로로 만들기 위해 무리해서 엉덩이를 뒤로 빼며 허리를 틀었다. 하지만 그건 악수였다. “으응.” 아래에서 콧소리가 터졌다. 허벅지에 힘을 딱 주고 버티고 있던 팀장은 기찬의 움직임 때문에 그만 다리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틈으로 기찬의 아랫도리가 더 꽉 키워졌다. 마치 블록의 홈이 맞아 조립되듯, 기찬의 아랫도리와 여자의 아랫도리가 정확히 맞닿은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팀장의 다급한 외침이 귓가를 쨍 하고 울렸다. “자, 잠깐, 잠깐만요. 몸을 좀…. 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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