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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화 393화


페레니케 393화 그 순간 머리채가 잡혀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그러나 파이라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당겨진 머리가 아니라 페레니케가 틀어쥔 제 손이었다. “내게도 똑같이 해보겠느냐? 응? 이 너절한 손으로.” “안 해. 안 할게. 제발, 제발 내 손을 놓아 줘…….” “파이라. 나도 네게 이리하고 싶지 않아.” “아아아악!” 파이라는 그대로 손이 꿰뚫렸다고 생각했다. 꼬챙이 같은 것에 관통된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차마 확인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흐느끼는 시야로 그녀의 손이 툭 떨어졌다. 날카로운 것에 꿰뚫렸다고 여긴 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그러나 손아귀 힘에 무른 살이 움푹 패어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도무지 인간 같지가 않았다. 파이라가 다른 팔로 그 손을 껴안고 엉덩이로, 무릎으로 기어 허겁지겁 뒤로 도망쳤다. 페레니케는 오로지 손끝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실었던 알테아를 거두며 고개를 갸웃했다. “치유의 빛을 몰라보다니. 라브렌티오스가 맞기는 해?” “제발, 제발 오지 마. 부탁이야…….” “이제 와 바실리오스 계집에게 부탁이나 할 것 같으면, 왜 진작 겸허하게 굴지 않았어.” “제발, 내가 잘못했어.” “네가 이렇게 되면서 이룬 것이 뭐야? 파이라.” 파이라가 울며 웃었다. “……소중한 것을, 내 원수에게 아주 소중한 것을, 내 손으로 망가뜨렸잖아.” “…….” “메티온 타소스가, 그 계집종을 생각보다도 더 아꼈어. 그것이 낭패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좋은 일이야. 금방, 다른 계집종 따위로 대체될 것이 아니잖아. 그렇지?” “…….” “노예는 주인을 잘못 만나 영영 어여쁜 얼굴을 잃었고, 메티온 타소스는 제 어여쁜 계집종을 영영 잃고…….” 페레니케는 가만히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파이라가 실성한 사람처럼 연신 중얼거렸다. “분명 그 인간 같지도 않은 사내가, 심장이 갈기갈기 찢긴 낯짝이었어. 언젠가는 그 계집종을 잊고 다른 어여쁜 계집과 뒹굴지라도, 그때까지는 마음을 쓰겠지…….” “…….” “그것이 내가 이룬 거야. 페레니케. 메티온 타소스를, 타소스의 퀴리오스가 될 자를, 그 영혼을 내가 잠깐은 무너뜨렸다고! 그토록 아끼던 계집이, 괴물처럼 흉측해졌잖아.” “…….” “어여쁜 것만이 그 계집종의 유일한 재주인데, 소 타소스 공께서 설마 그 흉물을 가까운 곳에 두고 보실까? 사랑은 그것으로 끝이야. 좋은 날들도, 끝이야. 전부 다…….” “그들이 무엇을 잃었다고?” 파이라의 턱이 들려 올라갔다. 아까 파이라의 손을 짓이겼던 손이었다. 파이라가 본능적으로 질색하며 고개를 비틀었지만, 금세 작은 손아귀가 그녀의 턱을 틀어쥐었다. “이런, 파이라. 왕자의 둥지에 칩거하느라 귀가 어두워졌구나. 여종의 얼굴은 전과 같이 깨끗하단다.” “……뭐?” “메티온 타소스의 영혼은 견고하지.” 메티온의 영혼은 파이라의 말처럼 잠시 무너졌다. 그러나 그것은 여종의 외형보다 고통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알키오네의 화상은 메티온에게 앞으로 어여쁜 여종을 품에 안을 수 없기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화상처럼 인간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형상화한 증거는 없었다. 그리고 메티온을 괴롭힌 것은 알키오네의 증거가 가장 참혹하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파이라 라브렌티오스가 무엇을 알랴. 고통은 이제 알키오네를 떠났다. 페레니케는 파이라를 무엇으로 괴롭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설마 한낱 여종을 칼리케의 시빌레들에게 데려다 놓기라도 했다는 말이야? 소 타소스 공이 아무리 계집에게 미쳤다 해도,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성소에서 노예에게 그만큼 공을 들일 리가…….” “그러지 않아도 되었지. 내가 알키오네를 씻은 듯이 돌려놓았어.” 거짓말.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어. 파이라는 망연하게 중얼거렸지만 제 부러진 손가락을 순식간에 이어 붙이던 소녀의 알테아를 떠올리고, 알키오네의 말간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알키오네는, 엊그제 타소스 가에서 해방되었지.” “…….” “그녀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야. 발타카 지방의 귀족 부모를 얻고, 소 타소스 공의 아내가 될 예정이지.” “말도 안 돼.” “네 덕분에.” “말도 안 돼!” 비명처럼 내지른 파이라가 페레니케의 손을 뿌리치며 망가진 손으로 벽을 짚고 일어났다. 이미 창백하던 낯빛에 분노가 더해지며 푸르스름한 빛을 띠었다. 페레니케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가여운 파이라. 그들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어.” “…….” “괜한 고생을 했구나.” 파이라가 엉망이 된 제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저는 이 꼴이 되었는데, 메티온 타소스의 여종이 다 나았다고? 아무런 흠집도 없이? 심지어 이제는 노예도 아니라고 했다. 파이라가 실소했다. 계집질에 미쳐 천박하게 노예를 처로 들이다니! 그리하여 알키오네는 단지 해방 노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 타소스 공의 아내가, 원로원 의원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었다. 메티온 타소스는 여전히 그 아름다운 계집을 품에 안고 있고, 저는…… 들끓는 분노,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한 허무감, 그 사이로 비집고 고개를 쳐든 것은 작은 깨우침이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녀가 해친 것이 한낱 노예가 아니었다. 더 이상은. 왕은 저를 버릴 것이다. 벼랑 끝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파이라의 표정이 변했다. 페레니케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조금 웃었다. “바실리오스, 살려줘. 제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제발, 내가 잘못 생각하였어. 내가, 그 여종에게……. 아니, 전부 잘못했어. 처음부터. 왕비께서 내게 잘해 주셨는데, 내가 그것을 다 알지 못했어.” “왜 사람들이 널 죽일 것처럼 말을 해?” “죽일 거잖아! 메티온 타소스가 날 죽일 거야. 왕께서 날, 지켜 주지 않으실 거라고…….” “여기에 널 두게 하신 것만 하여도 보호가 아닌가?” 그렇지. 이곳을 나가는 순간 메티온 타소스가 그녀를 죽일지도 몰랐다. 파이라가 숨을 헐떡였다. 라브렌티오스 가는 그녀를 위해 무엇도 하지 않으리라. 라브렌티오스 공도, 그 아내도 저를 이미 화근이라 불렀다. “어디로든 악시오테아 전하께서 시집 보내는 곳으로 가서 살게. 일생을 조용히 살게.” “그 말을 어찌 믿어? 양손이 썩어가는 지금도 이리 시끄럽잖아.” 페레니케의 이마 위로 파이라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잘못했어.” “잘못 짚었어. 숙부는 오히려 네게 고마워하고 있는걸.” “잘못했어. 잘못했어…….” “어찌 보면 네가 숙부의 중매를 선 셈이잖아.” “…….” “아……! 알키오네에게도 은인이지. 네가 아니었다면 그 겸허한 아이는 감히 소 타소스 공 부인 소리를 듣느니 까무러쳐 죽었을 테고, 숙부는 여인을 강제하는 남자가 아니거든.” “…….” “그러니 메티온 타소스가 네게 중매를 서도 좋을 일이지.” 파리하게 질린 낯이 무너졌다. 파이라가 페레니케 앞에 주저앉으며 속삭였다. “그는 중매 따위 서지 않아. 날 죽일 거야. 사지로 보낼 거라고.” “오해라니까. 파이라. 숙부가 널 죽일 것이라면, 날 왜 여기로 보냈겠어?” 페레니케가 그녀의 손목을 다시 그러쥐었다. 파이라가 각인된 공포로 몸을 흠칫 떨었다. “나는 네 두 손이 모두 썩고, 잘려도 네 혼사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어. 알키오네와 달리, 네가 다친 것은 얼굴이 아니잖아. 아직도 이리 예쁘장한걸.” “…….” “하지만 숙부의 생각은 달랐지. 너와 혼인할 사내에게도 멀쩡한 신부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거야.” “…….” “네 생각은 어때?” 파이라가 더듬더듬 말을 꺼내기 위해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둘 중 하나야, 파이라. 이 자리에서 내게 이 두 손을 치유 받고 메티온 타소스가 고른 사내에게 시집 가든지, 여기서 왕께 ‘보호’ 받으며 두 손이 썩어 잘릴 때까지 내버려 두든지.” “…….” “언제나, 모든 것은 네 선택의 결과야. 파이라 라브렌티오스.” “아, 아…….” “네가 청동 솥을 들어 올리기로 작정했던 그 어리석은 날이 오늘을 너에게 선물했듯이.” 페레니케가 파이라의 팔꿈치를 잡아 제게로 세게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자. 선택했으면, 이제 내 손을 잡아. 파이라.” “…….” “내가 널 구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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