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12화
12화
이쯤이야 할 수 있다. 나는 나를 다독이며 연병장으로 나갔다.
내가 연병장에 나타나자 저 멀리서 이미 먼저 뛰고 있던 사병들, 내 예상보다 수가 어마어마한 사병들이 내 존재를 보고 놀라 수군거렸다.
“조용! 누가 사담을 하나!”
곧 가장 앞서 뛰고 있던 공작 각하의 고함에 놀라 입을 다물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일이 일어나게 만든 장본인, 공작 각하는 나를 본체만체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정말로 뛰어야 하는구나.'
이건 내 말에 여기까지 나오나 보자 하는 시험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뛰어야 한다는 것을.
연병장은⋯⋯ 넓었다. 어림잡아도 몇백은 넘어 보이는 개인 사병들을 수용해야 했으니 당연하긴 했으나, 졸지에 이 연병장을 세 바퀴나 뛰게 된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뛰어야 했다. 곧 아침 식사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뛰는 거지? 무슨 방법이 있나?'
뛰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한 마리 망아지 같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뛰어 본 적 없단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금방 호흡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입에선 피 맛이 났다. 연병장의 절반의 절반도 돌지 못했을 때의 일이었다. 나는 헐떡거리며 달렸다. 온몸에서 땀이 나고 도저히 숨이 가다듬어지지가 않았다.
사병 무리가 금방 나를 추월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또 추월했는지 나는 세지 못했다. 내 몸 하나 가누기 힘들어서였다. 나는 몇 번이나 멈춰서 다리를 끌었다. 그래도 나는 다시 조금이나마 힘이 차오르면 달렸다. 세 바퀴가 끝나자 하늘이 빙빙 돌고 노래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쓰러지지 않은 게 천운이었다.
'이 짓을 내일 또 해야 한다고?'
터덜터덜 걸어 저택으로 돌아가는데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로⋯⋯ 미치신 거 아냐?'
앞서가는 사병들의 가죽 신발이 내는 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쓴 데다 땀에 절어 있으니 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공작 각하께서 저택에 돌아온 뒤부터, 나는 매일 아침 뛰고 목욕을 한 뒤 수업을 했다.
처음 며칠간엔 나는 아침뿐만 아니라 점심에도 식욕이 없었다.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 내 수업을 마친 뒤엔 그저 침대에 누워 시름시름 앓기만 했다.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걸까?'
나는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매일 밤 그를 생각했다. 그러나 연모는 아니었다.
단지 공작의 행동이 내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기행을 곱씹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사고방식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 이러는 거지? 혹시 나 모르게 우리 가문에 무슨 원수라도 졌나?'
몇 주간은 차가운 아침 공기에 적응하지 못해 감기에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그 몇 주가 지나고 나자 뜀걸음을 하는데 점점 숨을 쉬기 편해졌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부서질 것 같던 몸도 어느 날부터인가 가뿐했고 사병 무리가 점차 추월하는 횟수도 차근차근 줄어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어느 날 나는 세 바퀴 전부를 내내 사병들과 같은 속도로 뛰는 데 성공했다.
'으아아아아!'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정작 이 명령을 내린 공작 각하께서는 신경도 안 쓸 테지만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나의 성장이.
그렇게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덧 가을의 한복판에 와 있었다.
봄의 끝자락에 스카디령으로 왔을 때 나는 죽을 줄로만 알았다. 죽거나, 죽는 게 차라리 더 나을 정도로 고통받으리라고.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나는 생각보다 잘 이 삶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불행 중에도 다행이 있어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땅에서도 괜찮은 직업을 구할 수 있었다. 고용주는 이해하기 어려운 남자였지만 매일 아침 뜀걸음을 하라는 이상한 요구 때문에 잠시 마주치는 걸 제외하고는 이야기 한 번 나눌 일이 없었다. 실제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수업을 하는 학생은 똑똑하고 사랑스러우며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깨쳤다.
그 외의 생활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폴린느 부인이 준 옷은 손대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던 이브닝드레스 한 벌을 제외하곤 수선했다. 레이스와 부속물을 덜어내자 평상복으로 사용 가능했는데, 내가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나자 아나 아가씨는 마치 공주님 같다며 황홀해했다. 나는 평상복으로 입을 옷과 신발을 샀다. 그리고 그 외에 필요한 생필품과 이따금 쓸 돈을 보관할 서랍장도.
품위 유지비로 받은 돈이 많은 것을 바꾸었다. 방을 정리하는 아이에게 고맙다고 동전을 쥐여 줄 수 있게 되자 아이는 힘써서 아침마다 내 목욕물을 날라 주고 세탁물을 수거했다가 제때 제대로 돌려주었으며, 내가 수업을 가 있는 동안 침대를 깔끔하게 정돈해 주었다.
그래서 가끔은 착각할 때도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공작저의 가정 교사로서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다만, 고향에서 좀 멀리 떠나왔고 서신 왕래를 할 수 없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따금 영혼을 잡아 찢는 고통이 찾아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보통은 잠에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을 때였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불안과 두려움이 내 심장을 사로잡았다.
'평생 가정 교사 생활을 할 순 없겠지. 아나 아가씨는 자라고, 언젠가 이 생활은 끝난다. 아니, 그전에 해고당할 수도 있지. 언제라도. 공작 각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고용주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많은 봉급을 줘 가며 아이를 맡겨 주었지만 언제라도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나를 해고할지 몰랐다. 그 누구라도 죄인보단 깨끗한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을 테니까.
나는 나를 마뜩잖게 보던 그의 표정을 생생히 기억했다. 내가 그에게 남겼던 강렬한 첫인상도. 공작이 만약 아나 아가씨의 성장이 내 덕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의 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가정 교사 일이 끝나면 내겐 무엇이 기다리고 있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겐 미래가 없었다. 그럼, 이전에 지냈던 프랑에선 내게 밝은 미래가 있었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운이 좋게도 연달아 일을 두 번이나 할 수 있었지만, 나처럼 교양과 지식은 풍부하나 불운히 파산한 귀족 가문의 여식은 세상에 많았고 고용인인 귀족 가문의 부인들은 좀 더 어려서 다루기 편한 가정 교사를 선호했다.
그런 내게 하루를 더 견디게 하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이었다. 일하는 동안 이따금 나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긴 편지, 읽으면 웃음이 나는 재치 있는 동생의 편지를 받아 보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나는 군것질도 하지 않고 옷도 사지 않았지만 서신을 부치고 받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일이 힘에 부치고 심신이 고단해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주룩 흐르는 날엔 나는 돌아갈 날을 손꼽아 보기도 했다. 가정 교사에게 한 해가 끝나기 전 마지막 달에 주어지는 2주가량의 휴가를. 그만두어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생각이 역설적으로 나를 버티게 했다.
나는 돈을 구두쇠처럼 아끼고 모으며 은밀한 희망도 품었다. 어쩌면 나 자신은 몰라도 동생은 결혼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만약 동생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나타났을 때를 대비하여 나는 돈을 모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 저축은 동생의 지참금을 위해서였다.
지킬 것이 많은 귀족에게 결혼은 재산과 작위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사랑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데 사랑하지 않는다면. 비록 어머니는 파산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통받긴 했지만 내내 아버지를 사랑하셨다. 끝이 고통스럽다 해서 그 과정까지 퇴색되어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가정에는 사랑이 있었다. 나와 동생은 드물게도 가족의 손길을 듬뿍 받고 컸다. 대부분의 귀족 자제들이 보모와 가정 교사에게 맡겨지는 것과 달리, 나와 동생의 가정 교사는 할아버지였고, 어머니는 직접 파이를 구워 주셨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내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하늘 높이 들어 주셨던 것을 기억했다. 내가 원하면 몇 번이고 계속해서 놀아 주셨던 것을.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아도 본질적으로 우리 가정은 파괴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영락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랑이 있었기에.
그런데 나는 유배당하며 그 가족을 잃었다. 이제 우리는 영영 만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