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넷 단편야설

한 편 완결 소설

성인소설 목록

최신 단편

야설 읽기
밍키넷 소설
토스트 메세지 나오는곳
텔레그램 공식채널

밍키넷 공식보증업체

31화 31화


31화 그날 아나는 품 안에서 훌쩍훌쩍 울다 잠들었다. 나는 아나가 잠들 때까지 아나의 머리칼을 쓸어 주고 이마에 입맞춰 주었다. 그런데 사실은 나도 울고 싶었다. '나도 보고 싶어.' 그냥, 나도 아나와 같이 울고 싶었다. 아나가 스르륵 잠이 든 것은 늦은 밤이었다. 아나의 따끈따끈한 체온에 하마터면 나까지 잠들 뻔했다. 눈물에 젖은 얼굴을 닦아 주고 나오니 복도는 캄캄했다. 당연했다. 사용인들도 모두 잠들 시간이었으니. 나는 등잔을 들고 살금살금 아무도 모르게 방으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 했다. “흐어억⋯⋯!” 아무도 없어야 할 복도에 어른거리는 인영을 보고 나는 등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너무 놀라 떨리는 손으로 등잔을 들어 보니 유령은 아니었지만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었다. “이⋯⋯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공작 각하셨다. “그대야말로 어딜 다녀오는 거요? 이 야심한 밤에.” 그가 물었다. “그게, 저⋯⋯ 아나 아가씨의 방에 있다 왔습니다.” “아나의 방에? 왜?” “잠을 자기 어려워 책을 읽어 달라 하셔서⋯⋯.” “아나도 이제 책 정도는 읽을 수 있지 않소? 그대가 해석을 해 줘야 할 만큼 어려운 책이었소?” “책이 아니라 제 온기가 필요했던 것이겠지요. 아직 어린 나이니까요.” 등잔 불빛의 아른거림에 따라 그의 얼굴이 달리 비쳐 보여 속내를 알 수 없었다. 하기야 환한 대낮에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가 물었다. “혹시,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다정했소?” “다른 아이라면?” “예를 들면 마엘 공자 말이오. 밤에 책을 읽어 달라면 책을 읽어 줬소?” '아이'란 가르쳤던 학생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 뵈었을 땐 지금 아가씨와 같은 나이셨지만 마엘 도련님은 훨씬 성숙하셨지요. 그분 곁엔 아버지도 어머니도 계셨고요. 그래서 마엘 도련님께선 제게 그런 부탁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전에 자작가의 아가씨도 가르쳤지만 그녀는 차갑고 거만해서 곁을 잘 내어 주지 않았다. 오직 아나만이 내가 친언니라도 되는 듯이 어리광을 부렸다. “하지만 아가씨는 다르지 않습니까. 여기에는⋯⋯.” 그다음 나는 무어라 돌려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어 줬단 거군, 이 시각까지. 그런데 귀찮지는 않소?” “예?” “그대 말이오. 계속 시간 외 업무를 하고 있지 않소. 얼마 전엔 아나를 멋모르고 따라갔다 죽을 뻔하기도 했지. 아 이란 오냐오냐하면 자신이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고 기대는 법이오.” “⋯⋯.” “그대가 해야 하는 건 아나의 보모 노릇이 아니라 선생 노릇이오. 그리고 나는 당신의 역할에 이미 만족하고 있소. 자신의 처지 때문에 아나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거라면, 내가 제대로 거절해 주겠소.” 예상보다 더 단호한 목소리가 나왔다. “괜찮습니다. 제가 좋아서 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소?” 그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다정함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많겠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집에 보낼 서신은 다 써 가시오?” 서신 얘기를 먼저 꺼낸 건 그였다. 그 말에 갑자기 턱, 하고 막혀 있던 숨이 풀렸다. '보내 주려는 거구나!' 나는 고개부터 끄덕였다. “예, 예, 다 썼습니다.” “그럼 내일 시간이 될 때 가져오시오. 나는 늘 집무실에 있으니.” 그리고 공작은 발걸음을 옮겨 복도에서 사라지려 했다.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난 듯했지만 나는 의아했다. 이 야심한 밤, 대체 이곳까지 공작이 온 이유가 무엇인지. 이 복도에 내 방이 있기 때문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통은 누구라도 잠들 시각인 데다 그가 우연이 아니라면 나를 찾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여긴 왜 오셨습니까?” “산책하고 있었소.” 그런 말만 남긴 채, 그는 사라졌다. '산책? 이 밤에? 복도를? 등잔 하나 없이?' 방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야심한 밤이고 밖은 추우니까⋯⋯ 저택 안을 돌아다닐 수도 있겠지, 산책 삼아. 등잔은⋯⋯ 밤눈이 밝은가 보지. 자기 집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애써 그의 기행을 이해해 보려 하며 잠들었지만, 다음 날 일어났을 때 나는 어디부터 현실이고 어디부터 꿈인지 분간할 수 없어 서신 뭉치를 들고 집무실로 향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신을 보낼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게 가족에게 보낼 마지막 편지가 될 수도 있는데. 나는 수업을 마치고 집무실을 찾아갔다. 두 손 가득 매일 저녁 써 내려간 편지 뭉치를 들고. “왔군.” 다행히 어젯밤 일은 꿈이 아니었다. 집무실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그는 내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언제 오나 했소. 보낼 건 그게 다요?” “예, 그렇습니다.” “분량이 꽤 많군.” “그게, 이것저것 적다 보니⋯⋯ 좀 줄일까요?” “그럴 필요까진 없소. 그런데⋯⋯ 읽어 봐도 되겠소?” “예?” “그대는 공작저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오.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도 모르게 서신에 중요한 정보를 적었을 수도 있지 않겠소?” 그렇군, 그가 할 만한 생각이었고 나도 서신을 쓰며 염두에 둔 점이었다. 맞지만, 나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럼 빨리 좀 알려 주지.' 이 편지에는 내 새 고용주이자 보수 주인인 공작 각하와 이 영지에 대한 칭찬이 심할 정도로 가득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 공작 각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지독한 사람인 데다 이 영지는 혹한의 대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곳에 나를 유배 보내게 되었으니 어머니와 동생의 걱정이 얼마나 심할까. 나는 그들의 걱정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는 이곳에서 원래 하던 일을 얻어 잘 적응하고 있고, 사람들은 모두 좋으며, 이곳은 생각보다 아름답고 즐거운 곳이라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공작 각하의 은혜 덕분이라고. 결과적으로 나는 편지에서 그에 대해 좀 과하게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또 내가 무슨 내용을 썼더라.' 그런데 그가 서신을 읽게 될 줄이야. 나는 서신을 건네면서도 편지의 내용을 되새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공작은 그 자리에 서서 서신 뭉치를 읽어 나갔다. 다행히 제대로 읽고는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쓰인 내용 중 혹여나 밖으로 새어 나가면 안 될 만한 것이 있는지만 찾고 있는 듯했다. 하긴 그가 내가 쓴 편지의 내용에 관심을 가질 리는 없었다. “⋯⋯.” 그렇다 해도 서신의 양이 길어 시간이 꽤 걸렸다. 그가 읽은 서신을 팔락거리며 뒤로 넘길 때마다 나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자꾸만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특별한 내용은 없군. 이대로 보내도록 하겠소. 그리고 이 서신을 받는 사람들이 답장을 쓰길 원한다면 받아 오게하지. 답장을 쓰는 데 오래 기다릴 순 없겠지만 말이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에 너무 기뻐 나는 소리 지르듯 말했다. 만약 그가 좀 더 편한 존재였다면 두 손을 붙잡거나 끌어안아 주었을 것이다. 나는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연신 고개만 숙였다. 동생과 어머니의 소식을 받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소식에 나는 그날 밤 설레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보름, 아니 한 달이면 답장을 받을 수 있겠지?' 가슴이 두근거렸고, 어쩌면 또다시 서신을 보낼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떴다. 서신 왕래의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캄캄했던 유배 생활 속 한 줄기 희망의 햇살이 비치는 느낌이었다. ❖ ❖ ❖ 그 시각, 발드르는 역시나 또 잠을 설치고 있었다. 머릿속에 계속해서 서신의 내용이 아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신을 읽기 전까지 잔느가 자신을 이렇게 좋게 보고 있었는지 몰랐다. '가족을 안심시키고 싶어서겠지.' 물론 발드르도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그녀가 가족들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좋은 이야기만 서신에 썼음을 알고 는 있었다. 하지만 서신에 쓴 내용이 아주 거짓말인 것만 같지는 않았다. 서신에는 그도 아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 아주 귀여운 말을 갖게 된 것, 승마 실력이 향상된 것, 가정 교사로서 맡게 된 학생이 무척 사랑스럽다는 것, 이곳의 겨울이 아주 춥고 어두운 건 사실이지만 여름과 가을은 따스하고 아름다웠다는 것, 얼마 전 곰 모피를 선물받아 외투와 목도리, 신발을 만들었다는 것. 신기한 옷이라 그걸 입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것 등등⋯⋯. 그렇다면 서신에 적은 자신에 대한 칭찬도 일부는 사실이 아닐까?

고객센터 Sup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