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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5화


5화 창틀에 기댄 채 정원을 바라보던 그의 입에서 툭, 내뱉어졌다. “수아.” 혀에서 굴려지는 이름이 무척이나 달았다. 이토록 부르고 싶은 이름이 또 있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이 정도면 정말로 개새끼가 된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종소리에 침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가 수아를 떠올릴 때면 잠잠했던 페니스가 빳빳하게 고개를 세웠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제 몸속에 흐르는 동양인의 피가 드디어 짝을 찾아냈나 싶었다. 그녀의 이름을 입속에서 굴리던 테즈만의 눈빛이 순식간에 매서워졌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정원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귀찮게 됐네.” 때마침 노크 소리와 함께 문밖으로 칵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테오 님이 오셨습니다.” 마테오 폰 파바드. 미켈레의 장남이자 테즈만의 이복형이기도 했다. 돈, 명예가 뒤섞인 집안에서 이복형제 사이가 좋을 리가. 언제 서로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각자 서로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기에, 두 사람은 철저하게 비즈니스 파트너로 남기로 했다. 테즈만 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능숙한 마테오는 파바드 가의 굵직한 사업들을 도맡았다. 장남에다가 경영에도 소질이 있는 탓에 다들 암묵적으로 마테오가 미켈레의 뒤를 이으리라 생각했다. 오히려 테즈만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마테오처럼 가식으로 뒤덮인 가면을 쓴 채 사람들을 상대할 정도로 그는 비위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경영을 할 리가. 지금처럼 유럽과 중국의 금융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둔탁한 노크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육중한 나무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틈 사이로 여유롭게 걸어오는 남자는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마테오.” 채도가 옅은 금안에서 냉기가 흘렀다. 미켈레의 금안을 물려받았음에도 두 남자의 눈동자는 미묘하게 달랐다. 테즈만의 눈동자는 호박색에 가까운 금색이었고 마테오는 투명하고 옅은 금색이었다. 흐트러짐 없이 바짝 올린 금발과 목까지 꽉 옥죈 넥타이. 답답할 정도로 단정한 슈트를 훑는 테즈만의 눈가에 작게 실금이 갔다. “매번 궁금했는데.” 테즈만이 웃으며 목가를 툭툭 쳤다. “목 조르는 패티시라도 있나 봐?” 벌어진 블랙 셔츠 사이로 그의 단단한 흉부가 보였다. 마테오도 오랜 운동으로 몸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편이었지만 현장에서 구르고 개처럼 싸워댄 전적이 있는 테즈만에게 비교가 되질 못했다. “너야말로 옷이나 좀 제대로 입는 건 어때.” “다음엔 벗고 기다려야겠네.” 더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아는 듯 마테오는 화제를 돌렸다. “루마니아 쪽은 왜 들쑤셔놨지?” 마테오의 물음에 테즈만이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화가 난다고? 이해되질 않는다는 듯 마테오가 눈가를 구겼다. 루마니아 놈들이 돈세탁 한 것을 빼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음지에서 으레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동안 잘해온 점을 쳐서 가볍게 본보기만 보여주고 넘기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테즈만이 직접 움직였다. 귀찮은 일이라면 질색을 하는 그가 카포 급들을 싹 잡아서 포도밭 거름으로 만들어버린 것도 모자라서 루마니아에 있는 본부까지 쓸어버렸다. “고작 한 번 실수한 거로 너무 과한 처분이야.” 마테오의 말에 그가 무섭게 눈을 올려 떴다. “고작 한 번 한 실수가 죽음으로 갚아야 할 때도 있지.” 싸늘해진 눈동자가 허공을 갈랐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두려움에 떨던 수아. 말려 올라간 수녀복 아래로 드러난 새하얀 다리 밑으로 보이는 사내새끼의 좆이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었다. 어디서 감히. “패티시는 네가 있는 거 같은데.” 마테오가 불룩 튀어나온 그의 바지 앞섬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죽일 생각에 좆도 세우고 말이야.” 테즈만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쩐지 피가 몰린다더니. 잠깐 수아를 떠올렸음에도 바지를 뚫고 나올 듯 단단해진 제 것에 테즈만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랬으면 다행인데.” 수녀에게 욕정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마테오의 표정은 볼 만할 것이었다. 미친놈이라며 욕을 했을 테고. “금단의 것이 더 끌린다고 하던가.” 뜻 모를 이야기를 해대는 테즈만을 보며 마테오가 짧게 혀를 찼다. “루마니아 쪽 보스를 아버지께서 꽤 믿었던 모양이야. 근데 고작 아랫것들 실수 하나에 네가 들쑤셔 놨으니.” “마테오.” “아버지를 찾아뵙고 오도록 해.” “나, 신을 믿어볼까 하는데.” “그러든... 뭐?” 듣지 못할 것을 들었다는 얼굴로 되묻는 마테오를 무시한 채 테즈만이 말을 이었다. “독실한 신자인 척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겁에 잔뜩 질린 표정도 좋긴 하지만 수아의 다른 표정도 궁금했다. 우는 것, 웃는 것도 좋지만 제가 주는 쾌락에 젖은 얼굴도 보고 싶었다. “또 꼴리네.” 초조함이 들끓었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얼굴을 봐야 했다. 미친 게 틀림없었다. 아니면 정신이 어디 고장이 났던가. 테즈만이 서재 옷걸이에 걸어둔 블랙 슈트 재킷을 거칠게 집어 들었다. 성큼성큼 긴 다리를 뻗어서는 서재를 나가려는 테즈만을 마테오가 불러 세웠다. “어디가.” 돌아서지도 않은 채, 그가 갈 길을 가며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성당에.” 훌쩍 방을 나가버리는 테즈만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마테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성당에 간다고?” 테즈만이 성당에 간다는 소리에 마테오는 경악했다. 그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약에 손을 댄 건 아닌가 할 정도로. 마테오가 실소했다. 설마. 테즈만의 생모를 죽인 것은 마테오의 어머니였지만 죽게 된 이유는 약 때문이었다. 테즈만의 생모는 엄청난 중독자였다. 술, 마약, 담배, 도박. 결국에는 갓난아기였던 테즈만을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해대며 미켈레에게 돈을 요구했다. 그걸 참다못한 마테오의 어머니가 아랫사람을 시켜서 죽였고. 물론, 테즈만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약을 할 리가 없는데.” 의심스러운 얼굴로 한참을 서 있던 마테오가 발걸음을 뗐다. 저택을 나온 마테오의 옆으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두 명이 붙었다. “조반니.” 둘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남자가 조용히 발걸음을 멈췄다. “네. 마테오 님.” “테즈만, 요즘 뭐 하고 다니는지 알아봐.” “알겠습니다.” 성당이라니. 다시금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하며 마테오가 저택 앞에서 대기하던 검은색 차에 올라탔다. 마테오가 테즈만의 저택에서 빠져나갈 무렵, 테즈만은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말없이 차창을 응시하던 테즈만이 운전석에 앉아있는 칵트를 향해 말했다. “칵트. 신을 믿어?” 그의 입에서 신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도 놀랄 일이었지만 그 말을 꺼낸 이유를 알 것 같기에 칵트는 차분하게 목소리를 냈다. “저는 파바드를 믿습니다.” 맹목적인 충성이 담긴, 칵트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었다. “나는 오늘부터 믿어볼까 하는데.” 수아의 경계를 가장 쉽게 무너트리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신자가 되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스며드는 것. “정말 그 수녀분이 마음에 드십니까?” “글쎄.” 좆이 빳빳하게 서는데 마음에 들고 말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난번에 부탁하신 대로 알아봤는데…. 그게.” 칵트가 뜸을 들이자 차창 밖으로 고정되어있던 그의 시선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한국...에서 온 수녀라고 합니다.” 한국이라니. 테즈만의 입에서 실소가 터졌다.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니까.” 동양인에 한국인.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인 미켈레, 그리고 마테오가 듣는다면 치를 떨 것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말의 저의가 뭔지 가늠하듯 그의 시선이 룸미러로 보이는 칵트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괜찮지 않을 건 뭐지.” “그게...” “내 생모라는 여자가 한국인이라서?” 칵트가 입을 꾹 다물었다. 테즈만의 생모는 한국과 이탈리아의 혼혈이었다. 동양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받는 차별을 견디지 못한 생모는 처음에는 술, 그러다가 마약에 손을 댔고 결국 매춘까지 하게 됐다. 그러다 미켈레를 만나서 아이를 낳은 것이 테즈만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테즈만에게는 생모의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의 어머니가 생모를 죽였다고 고백했을 때도 무덤덤했던 그였다. 아직 태지도 다 없어지지 않은 신생아를 볼모로 돈을 요구한 생모에게 일말의 감정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살아있었다면 제 손으로 죽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국인이건, 일본인이건 중요하지 않아.” 인종에 상관없이 얼마나 많은 여자가 그를 유혹하기 위해 다가왔던가. 속옷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천 쪼가리를 입고 제 좆을 빨고 싶다던 여자도 동양인이었다. 그때 어떻게 했더라. 그대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드한한테 넘겼었나. 단지 동양인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녀라서 그랬다. 한수아라서. 토끼같이 붉은 눈가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게 미칠 것 같아서. 그의 입에서 탁한 숨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인 미켈레가 여자에게 환장한 이유를 어쩌면 알 것도 같았다. “칵트.” “네.”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애타는 갈증에 그가 손을 올려 손가락을 아득 깨물었다. “속도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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