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81화
81화
어스름한 새벽녘, 자신의 품에서 잠든 수아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자는 모습까지 이렇게 사랑스러울 줄이야. 침대 위로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까지 사랑스러웠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깨워서는 다시금 입을 맞추고 배를 맞대고 싶었지만, 저를 받아주다 실신하듯 잠이든 수아를 또다시 깨울 수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던 그의 시선에 수아의 손이 보였다. 새하얗고 얇은, 깍지 낀 손에 힘을 잘못 주었다가는 그대로 바스러질 것 같았다. 가만히 수아의 손가락을 응시하던 그가 손을 뻗었다. 포개져 있는 손가락을 벌려서는 약지를 매만졌다. 가늠하는 듯한 손길이 계속해서 그녀의 약지를 매만졌다.
한참 수아의 약지를 만지작거리던 그가 손을 뗐다. 고작 상상만 했을 뿐인데 알 수 없는 충족감이 들끓었다.
“하.”
참을 수 없었다. 그가 수아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는 입을 벌려 매끄러운 살갗을 베어 물었다.
“으응....”
“샷츠.”
음험한 손이 그녀의 살갗 위를 쓸다가 이내 정액이 가득 찬 그녀의 질구로 손가락을 쑥 넣었다.
“하으응....”
수아가 잠결에 신음을 내자 그의 페니스가 그녀의 다리 사이를 쿡, 찔렀다. 빨리 넣어달라는 것처럼.
그가 수아의 귓바퀴를 물었다. 그러고는 달래듯 속삭였다.
“다리 벌려 봐요.”
또 다른 긴 밤의 시작이었다.
***
기분이 좋은 건지 수아는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게 된 것에 설레서 그런 것일까, 수아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드레스룸에서 옷을 고르고 있었다.
지난밤, 한계까지 몰아붙인 그 때문에 결국 실신하듯 잠이 들었다. 그런데 테즈만은 또다시 새벽녘에 수아를 깨워서는 그의 것을 그녀의 안에 밀어 넣었다. 동이 틀 때까지 테즈만은 멈추질 않았고 결국 그녀의 원망 섞인 눈빛을 받아야 했다.
화를 풀어줄 생각으로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테즈만은 그런 그녀를 향해 데이트 신청을 했다.
“흐으음~”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집어 들던 그녀의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샷츠.”
무심결에 뒤돌아본 수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평소 검은색 셔츠만 고집하던 그가 하얀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평소보다 더 신경 쓴 듯한 머리 손질과 짙어진 향수 향에 수아가 미소를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혹시…. 데이트한다고 꾸민 거예요?”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나, 정말 타락했나 봐요.”
수아의 입에서 웃음이 실금처럼 새어 나왔다.
“너무 멋있어서 내 옆에만 두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당연한 건데.”
태연하게 그녀를 향해 다가온 테즈만이 말을 이었다.
“난 항상 생각해요. 수아를 숨겨두고 나만 보고 싶다고.”
굳이 숨기지 않았다. 제 지독한 독점욕을 이미 수아도 알고 있으니까.
“위험한데요?”
“그 위험한 걸 수아가 쥐고 있잖아요.”
그의 목줄은 수아가 쥐고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차마 대답은 하지 못한 채 얼굴을 붉히는 수아를 향해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럼, 가볼까요.”
“좋아요.”
저택을 나서자마자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로마 도심지였다. 워낙 조심성이 많기도 했을뿐더러 유명인인 미켈레는 사람이 많은 곳이나 공개적인 장소에 다니는 것을 꺼렸다. 자기 자식인 마테오나 테즈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말은 즉, 테즈만은 로마 도심지를 걷는 것이 처음이라는 이야기였다. 매번 차 안에서만 보던 유적지들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보니 새로웠다.
“이렇게 클 줄은 몰랐는데.”
주위를 훑는 테즈만을 보며 수아가 작게 웃었다.
“앞으로 자주 나와야겠어요. 테즈만이 신기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무언가 발견한 듯 수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트레비 분수예요.”
웅장한 조각상들 밑으로 흘러내리는 에메랄드빛 물이 너무나도 예뻤다. 눈을 떼지 못하는 수아를 바라보던 그가 재킷에서 동전 두 개를 꺼냈다.
“트레비 분수 전설, 알고 있어요?”
“아, 그 동전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는?”
“동전 하나는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그가 수아의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했다.
“동전 두 개는.”
수아의 손바닥 위로 동전 두 개가 놓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대요.”
“아....”
수아가 시선을 내려 동전을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
“뭐 해요, 샷츠.”
그가 수아의 몸을 분수 쪽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던져야죠. 두 개 모두.”
홀린 듯 수아의 손이 움직였다. 휙, 하나를 던지고 연이어 또 하나를 던졌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동전을 바라보던 수아가 휙, 고개를 돌렸다.
“테즈만, 나 잘했... 읍.”
수아의 입술 위로 그가 도장을 찍듯 입술을 내려찍었다.
“잘했어요.”
수아가 맑게 웃었다. 두 사람의 손이 다시금 맞물렸다. 정신없이 로마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즐겼다. 수아와 테즈만의 얼굴에는 연신 미소가 피어올랐다.
머리 위에 떠 있던 해가 기우는 줄도 모르고 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하늘이 어둑해진 뒤였다.
“저녁 먹을 시간이네요.”
손목에 찬 시계를 흘끗 확인한 그가 수아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테즈만의 발길이 멈춘 곳은 언덕 위에 위치한 화려하고도 웅장한 느낌의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 주위로 정장을 입은 카포들을 보자 수아는 눈치를 챘다. 테즈만이 예약해둔 레스토랑이라는 것을.
수아에게 낯이 익은 카포 하나가 그녀를 보고는 꾸벅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테즈만이 미간을 좁혔다.
“감히 누구한테 인사를 하는 건지.”
당장이라도 총을 꺼내 들 기세로 말하는 테즈만을 서둘러 수아가 저지했다.
“왜 그래요. 절 많이 도와주는 카포란 말이에요.”
“그게 문제예요. 나 말고는 그 누구도 수아를 도와주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그에게 수아가 구원이듯이 온 세상에 홀로 남은 수아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길 바랐다. 지독한 소유욕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적응이 된 것인지 수아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꾸 그럴 거예요? 어서 들어가요. 나 배고파요.”
어쩔 수 없다는 듯 테즈만이 수아를 에스코트하며 물었다.
“오늘 어땠나요.”
“너무 좋았어요.”
“다행이네요.”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수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뻥 뚫린 통창으로 아름다운 로마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보랏빛이 번지는 하늘 아래 은은한 조명들이 건물들을 밝히는 모습이 낭만적이었다. 아름다운 로마의 모습을 배경으로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는 레스토랑은 로맨틱, 그 자체였다.
“아....”
테이블은 하나였다. 의자는 딱 두 개였고. 오직 수아와 테즈만, 두 사람을 위한 공간이었다.
“수아는 범죄를 싫어하고.”
수아가 자리에 앉을 수 있게끔 의자를 뺀 그가 그녀를 향해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합법적으로 평생 내 옆에 감금하고 싶은데.”
그의 손짓에 자리에 앉은 수아가 고개를 들어 올려 테즈만을 바라보았다.
“그러려면 방법은 단 하나예요, 수아.”
혀끝에서 굴려지는 이름이 달았다.
“나의 샷츠.”
그가 재킷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네모반듯한 순백의 상자. 영화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내밀던 반지 케이스와 똑같았다.
“나와 결혼해줘요.”
상자를 열자 영롱한 빛을 내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촘촘하게 박힌 새하얀 다이아몬드 위로 검은색 띠가 보였다.
검은색 띠를 보자마자 수아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테즈만은 유독 검은색이 어울렸다. 그녀는 새하얀 순백색이 어울렸고.
반지는 마치 두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수아의 눈가가 젖어 들었다. 반지를 고르며 고심하고 또 고심했을 그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이거…. 우리 둘 닮은 거 같은데.”
“나도 그 생각했는데.”
그가 다정하게 수아의 볼을 쓸었다.
“그래서 대답은? 물론, 당신은 거부권이 없어요.”
“거부할 생각, 없어요.”
테즈만의 손에 들린 상자 안에서 수아가 반지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끼워줄래요?”
동요하듯 그의 눈동자가 진동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수아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잘 기억해야 할 거예요.”
“기억할 거예요. 평생.”
테즈만이 수아를 향해 입을 맞췄다. 그를 받아들이는 수아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녹아내릴 만큼.
달콤한 선악과, 타락의 시작은 선악과가 아니었다. 위험하고도 매력적인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일 뿐.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타락이자 구원이며 신이었다.
Redemption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