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37화
37.
“내 말 잘 들어. 누가 어떤 이유로 널 이곳에 처박았든 간에, 지금부터 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는 거야.”
“…….”
“기억이 돌아오면 가장 먼저 내게 고하는 게 좋을 거다. 어디 가서 입이라도 잘못 놀렸다간, 그땐 네 대가리를 완전히 아작 내 줄 테니까.”
“히끅……!”
“그러니 살고 싶으면 모든 순간에 나부터 떠올려. 기억을 다 찾기도 전에 뒤지면 네 뇌를 통째로 열어서라도 남은 것까지 전부 긁어낼 테니까 그런 줄 알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나?”
“하, 하이! 하이!”
하루타가 파리해진 안색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무혁은 머저리 같기만 한 그의 얼굴을 던지듯 놓아주고는 곧장 성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하루타의 기억을 강제로 끌어올릴 수단이 필요해 보였다. 자연 회복을 기다리기엔 너무 더디고, 그사이에 변수가 생길 가능성도 컸다.
-예, 형.
“기억 끌어내는 데 쓸 약 필요해. 깨끗한 거 말고, 좀 거친 쪽으로.”
무혁의 머릿속에 몇 가지 약물이 스쳤다. 진정과 각성을 오가는 기억 유도제, 공포 반응을 증폭시키는 약물, 통증을 흐리게 하면서도 의식만 또렷하게 붙잡아 두는 종류들. 치료용과 고문용의 경계에 걸려 합법과 불법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들이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 와.”
하루타를 힐끗 내려다본 그의 눈매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 * *
똑똑―
“천종 씨이―”
깃털 같은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막 잠에서 깬 새가 지저귀는 듯한 맑은 소리에 무혁이 서늘한 눈을 들었다.
“저 들어가도 되나요?”
조심스럽게 높이를 낮춘 물음에 수줍음이 살짝 묻어 있었다. 날 선 긴장까지 무장해제 시키는 기묘한 힘이었다.
“들어와요.”
그가 자리를 정리하기 무섭게 하임이 말간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쟁반에는 껍질을 깐 군밤과 약초 뿌리를 우린 물이 올려져 있었다.
“천종 씨, 출출하지 않아요? 이것 좀 드세요.”
“영감님은요.”
“외출하셨어요. 오늘 늦으실 거라던데요?”
“그렇군요.”
무혁이 길쭉한 다리를 슬쩍 벌리자, 그 틈을 파고든 하임이 무릎을 모은 채로 웅크리고 앉았다. 본인의 자리라는 듯 당연하게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는 것이, 꼭 추운 날 어미 품속에 파고든 새끼 고양이 같았다.
안전한 곳을 정확히 알고 들어왔다는 듯한 얼굴은 여전히 무혁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이것 좀 얼른 드셔 보세요.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어요.”
“같이 먹어.”
무혁은 밤 하나를 하임의 입에 물려 주고는 약수를 꿀꺽 넘겼다. 처음엔 쓰디쓴 맛이 너무 강해서 좆 같다고 생각했는데 하도 먹으니 적응이 된 터였다.
“이러다 무쇠 몸이 되겠군요.”
“그러라고 챙겨 드리는 건데요?”
하임이 눈을 반달로 접으며 ‘헤에―’ 웃었다. 빚이 해결되고 부쩍 마음의 여유가 생긴 그녀는 며칠 새 볼살이 조금 오른 상태였다. 식사 때마다 무혁이 봉주의 눈초리를 뻔뻔하게 무시하며 이것저것 먹인 결과였다.
“오늘도 바쁘세요?”
“조금.”
“아, 바쁘시구나.”
하임의 눈이 불현듯 노트북이 있는 옷장에 닿았다. 무혁은 본인도 모르게 시선을 흘리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전원이 켜져 있을 때면, 그녀는 미세하게 새는 전류 소리만으로도 기기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 내곤 했다.
“왜. 나한테 할 말 있어요?”
“아, 그게. 삼동이가 요새 천종 씨랑 자주 못 논다고 울적해하는 거 같아서요.”
“그랬군요. 알다시피 내가 요새 좀 바빠서.”
“안 그래도 제가 잘 타일렀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삼동이도 옆 마을까지 일 도우러 다니느라 바쁘거든요.”
“아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무혁이 하임의 머리칼을 느릿하게 쓸었다. 정수리부터 타고 내려온 손이 작은 귀를 슬쩍 쥐자 그녀가 얼음처럼 굳었다.
“귀가 예쁘네.”
“저, 저요……?”
하임이 어색하게 웃으며 목을 움츠렸다. 청각이 그리 예민하니, 손을 귀 근처에만 갖다 대도 흠칫 떨며 얼굴을 붉히곤 했다. 무혁이 여린 귓불을 살살 매만지다가 낮게 가라앉은 음성을 내뱉었다.
“키스할게요.”
그대로 고개를 숙인 무혁이 도톰한 연분홍빛 입술에 제 것을 맞물렸다. 품에 착 감기는 체구를 당겨 안자, 고개가 뒤로 꺾인 하임의 입술이 자연스레 벌어졌다.
그는 말랑한 입술을 깨물고 그 위로 뜨거운 숨결을 쏟아부었다. 두툼하고 긴 혀가 여린 점막을 쓸고 헤집는 움직임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했다.
물러날 곳 없는 입맞춤을 받아 내는 하임은 벅찬 황홀함에 두 눈을 감았다. 이제 적응이 될 법한데도 도무지 태연해질 수가 없었다. 남신 같은 미모, 조각상 같은 몸,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늘 그녀를 무장 해제 시키곤 했다.
“하아, 하아…….”
하임은 입술이 살짝 떼어진 틈을 타 숨을 몰아쉬었다. 호흡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고개를 반대로 꺾은 무혁이 더 깊이 침범해 왔다. 이내 옷을 풀어 헤친 그의 손이 가슴을 움켜쥐고는 멋대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읏.”
봉긋한 살덩이가 그의 손에서 마구 뭉개지고 찌그러졌다. 무혁은 말랑한 가슴에 손바닥을 철썩 붙인 채 진득한 키스를 퍼부었다. 아무리 그녀의 혀를 빨고 타액을 받아 마셔도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
하임의 밑에서 흐르는 샘물 맛을 알아 버려서인지 더 조갈만 날 뿐이었다. 그는 혀뿌리를 뽑기라도 할 것처럼 거칠게 입안을 쑤시며 젖꼭지를 꼬집었다.
저릿한 흥분감에 달뜬 하임의 뺨이 발긋하게 달아올랐다. 아랫배에서 무언가 잔잔하게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면서 다리 사이가 뜨거워졌다. 저도 모르게 하체를 움찔거리며 신음을 흘리자 그의 눈빛이 한층 더 짙어졌다.
“하임 씨.”
“흣, 네에…….”
“어디 불편합니까?”
무혁은 느릿하게 가슴을 굴리며 물었다. 점점 제 손길에 익숙해져 가는 하임을 보니 이성이 휘발되는 느낌이었다. 슬슬 성기에게 콘돔 심부름을 시켜야 하나 고민될 정도로 인내심이 빠르게 바닥나고 있었다.
“음? 어디가 불편한지 말해 봐요.”
“아니, 그냥…… 흐, 아, 아래가…….”
“아래가 왜.”
하임이 두 다리를 꼼질거리며 무혁의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는 제 전유물인 귀여운 발을 손에 쥐었다. 보들보들한 발바닥과 복숭아뼈를 탐구하듯 어루만지다가 발목부터 종아리까지 쓸었다.
“우리 내기할까요.”
“……내기요?”
“물 흘리는 사람과 닦아 주는 사람 중에 누가 먼저 항복하는지.”
“……?”
잔뜩 굳은 하임을 달래 주는가 싶던 무혁의 손가락이 바지춤에 걸렸다. 이내 속옷까지 단번에 끌어 내리자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처, 천종 씨……!”
“밖에 누구 오나 안 오나 잘 살피고.”
“저, 저기! 흐앗!”
하임이 다급하게 외쳤으나 일은 이미 벌어진 뒤였다. 그녀는 지금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기함하며,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제가 그의 얼굴 위에 앉아 있는 자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로.
이럴 수가.
하임이 퍼뜩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무혁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골반을 꽉 붙들었다. 그는 빈틈없이 비부를 제 하관에 밀착하고선, 벌어진 꽃잎 사이를 무자비하게 핥기 시작했다.
헉, 소리가 날 정도의 극한 쾌감에 하임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느새 다 벌어진 윗도리는 팔에 간신히 걸쳐져 있었기에, 무혁은 그녀의 몸을 낱낱이 훑어 볼 수 있었다.
“아, 안 돼…… 하으응.”
물컹하면서도 단단한 혀가 소음순을 짓누르고 날개 사이를 비벼 왔다. 수치심이 동반된 흥분감에 호흡이 한층 밭아졌다. 지난번 폐분교에서의 일탈보다 더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행위였다.
츄릅, 쭙, 츕.
게걸스럽고 민망한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무혁은 빳빳하게 세운 혀로 질구 주위를 둥글게 문지르다가, 위아래로 핥으며 하임이 흘리는 샘물을 받아마셨다. 이제야 비로소 갈증이 조금씩 채워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