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41화
41.
쾅—!
철판이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어졌다. 그 안에는 웬 아이 하나가 몸을 웅크린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일곱, 많아야 여덟쯤. 무릎을 끌어안은 채 숨을 삼키고 있던 아이는 갑작스러운 빛과 소음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미간을 좁힌 남자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예상과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무기나 성인 남자의 그림자는커녕, 겁에 질린 어린애 하나라니.
아이는 눈을 크게 뜬 채 남자를 올려다보다가, 덜컥 겁을 먹은 듯 눈가에 물기를 매달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
그러나 남자는 한 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울든 말든 관심 밖이라는 듯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렸다. 그는 곧장 맞은편 화장실로 향했다.
이번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가장 안쪽 칸 앞에 선 그는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대신 그대로 문을 밀어붙였다.
쾅—!
칸막이가 덜컹거리며 열리자, 안쪽에서 또 다른 아이가 튀어 오르듯 고개를 들었다. 방금 교실에서 본 아이와 닮은 얼굴. 형제라는 걸 알아보는 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이 애새끼들은 대체 뭘까.’
남자의 표정에 처음으로 짧은 균열이 스쳤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는 찰나였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아래층 어딘가에서 경쾌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자, 이제 찾는다아―”
지나치게 태평한 음성 뒤로, 둔탁한 발소리가 1층부터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방해를 받은 남자는 안색을 차갑게 굳힌 채 신랄한 욕을 중얼거렸다.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인 아이를 내버려두고 나오는데, 곰 같은 덩치의 삼동이를 맞닥트렸다.
“어? 아까 본 그 형아다.”
“…….”
“안녕, 형아. 여기서 뭐 해? 같이 숨바꼭질하고 싶어서 왔어?”
남자는 저를 보며 해맑게 웃는 삼동이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날렸다. 묻지 않아도 마을에 관해 이것저것 떠들어 대던 이장의 말이 떠올랐다.
[좀 모자라긴 해도 애는 착해요.]
“심심하면 삼동이랑 같이 놀래, 형아?”
초면에 반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언행이 하도 기가 차서 화도 나지 않았다. 남자는 상대할 가치도 없는 걸레짝 보듯 하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뒷산으로 보낸 부하들의 보고를 기다리는 동안, 삼동이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더니 2층을 부산스럽게 뒤지기 시작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남자는 휘날리는 먼지와 선연하게 남는 발자국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좀 전까지 느꼈던 무언의 쾌감이 웬 멍청한 애새끼들 때문에 더럽혀진 기분이었다.
“동민이 땡!”
“…….”
“보민이도 땡!”
“…….”
삼동이는 신나게 오가며 두 형제를 찾는 데 성공했다. 남자를 벽 취급하며 깡그리 무시하자 눈치를 살피던 형제도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되찾았다.
“삼동이 형아! 너무 빨리 찾았잖아!”
“그러게 누가 문 열고 있으래. 꼭꼭 숨어야지.”
어린 형제가 놀이를 방해한 남자를 탓하듯 흘끔 훔쳐보고는 입을 삐죽였다.
“이제 둘 중에 가위바위보 진 사람이 술래야.”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내가 이겼다아! 이번엔 보민이가 술래야!”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세 사람은 건물 분위기와 지극히 이질적이었다. 남자는 짜증이 서린 얼굴로 수화기 너머의 음성을 듣다가 낮게 명했다. 미처 살펴보지 못한 철문에 스치듯 눈길이 닿았으나, 아이가 숨을 곳을 찾기 위해 수산을 떨어 대는 통에 흥미가 식었다.
“장기덕이랑 채무 관계였다던 여자부터 찾아.”
“그럼 보민이는 지금부터 숫자 세. 삼동이 이번에도 안 봐 줄 거야.”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밝게 외친 삼동이는 어느새 멀어지기 시작한 남자의 뒷모습을 몰래 응시했다.
“괜한 소란 일어나는 일 없게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 여자한테서 알아낼 수 있을 만한 게 있으면 알아내고.”
얼핏 들리는 목소리에 삼동이의 웃음기가 옅어졌다. 무혁의 아지트나 다름없는 창고 방을 들키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이번엔 위험이 다른 대상으로 옮겨 간 듯했다.
“삼동이 형아! 안 숨을 거야?!”
동민의 외침에 남자가 이쪽을 돌아보는 게 느껴졌다. 잠시 얼어 있던 삼동이는 날쌔게 움직여 적당한 곳을 찾아 숨었다.
이내 다시 한번 하임에게 연락했지만 여전히 부재중이었다. 아까 보낸 메시지도 아직 읽지 않은 모양이었다. 큰일이었다.
‘이상하다. 하임이가 이렇게 전화를 안 받을 리가 없는데.’
혹시나 이미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하임이나 천종이 형아가 다치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내가 지금 하임이네로 달려가면 의심을 살 수도 있어.
밀물처럼 몰려오는 걱정에 울적해진 삼동이는 머리를 박박 긁으며 신음했다.
“……괜찮을 거야. 천종이 형아는 강하니까.”
그는 부디 두 사람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외부인이 마을을 떠날 때까지 아지트를 지키리라 다짐했다.
* * *
하임은 무릎을 꿇은 채 흙을 파고 있었다. 오늘 목표는 단단한 땅에 깊이 박힌 삽주였다. 속을 덥히고 기혈을 보강하는 데 좋다고 알려진 약초라, 더덕보다 이것을 먼저 찾는 어르신들이 종종 있었다.
뿌리가 상하지 않게 캐려면 호흡과 힘 조절이 필수였다. 한 번 자리를 잡고 파기 시작하면 몸을 쉽게 뗄 수 없어 조금 성가신 약초이기도 했다.
“저번에 캔 거보다 더 실한 것 같은데.”
기분이 좋아진 하임이 콧노래를 조그맣게 흥얼거렸다. 원래 이 시간에는 산에 잘 오지 않지만 집에 약초가 다 떨어져서 즉흥적으로 온 것이었다.
줄기를 따라 조심스레 파내자 흙 속에서 특유의 쌉싸래한 향이 올라왔다. 손끝에 전해지는 감촉으로 뿌리의 크기를 가늠하여 삽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꽤 좋은 가격에 팔 수 있겠으나 이 삽주는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넉넉히 캐서 천종 씨도 먹여야겠다.’
그는 중요한 일이 있다며 꼭두새벽부터 집을 비운 참이었다. 부쩍 외출이 잦아진 그를 걱정하는 마음에 말리고도 싶었으나, 할아버지 앞에서 대놓고 티를 낼 순 없었다.
그녀는 무겁게 하산할 생각으로 고개를 묻다시피 한 채 손놀림에만 집중했다. 그때였다.
“……?”
어디선가 낯선 소리가 스쳤다. 무심코 고개를 든 하임은 귀마개를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리와 높이가 분명하지 않던 소리가 점점 또렷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뚝뚝하게 이어지는 낮은 음성, 억양이 거의 없고, 감정의 기복이랄 것도 느껴지지 않는 딱딱한 말투였다. 지나치게 정제된 톤은 마치 군인들 같았다.
‘군인들인가? 갑자기 여긴 왜 왔지?’
하임은 손을 멈춘 채 그대로 굳었다. 흙 묻은 손을 어정쩡하게 멈추고는 두 눈을 감았다. 시각을 닫자 청각이 한층 더 예민하게 살아났다.
그녀는 숨을 얕게 고르며 나무를 헤치는 소리, 낙엽을 밟는 발소리, 그리고 다시 말소리에 집중했다. 두 명의 남자 목소리가 고막에 걸려들었다.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말을 주고받는 간격이 짧고 효율적이었다. 언뜻 무언가를 찾는 듯한 기류가 산을 긁듯 지나갔다. 조심스럽기보단, 산을 통째로 뒤집어도 된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하임은 뭔가 심상치 않은 듯한 분위기에 두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가 내뱉는 ‘울프독’이라는 단어가 또렷하게 걸렸다.
“……!”
하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발밑이 꺼진 것처럼 숨이 막힌 그녀가 사색이 되었다. 왜 또 그 이름이 나오는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마주치면 안 돼.’
하임이 서둘러 자루에 도구를 담고는 몸을 일으켰다. 지금 있는 곳은 통제 구역과 뒷산의 경계쯤. 집으로 내려가는 길은 저들의 이동 경로와 겹쳐 있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정면으로 맞닥트릴 게 분명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망설일 틈 없이 몸을 낮췄다. 그다지 크지 않은 바위 뒤로 파고들듯 숨어들어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자루를 끌어안고 숨소리가 새지 않도록 입을 막았다.
머지않아 발소리가 이쪽으로 이어지는 게 느껴졌다. 저들이 지나치기만 하면 그 즉시 집으로 뛰어갈 생각이었다.
‘천종 씨한테 알려야 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연락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으나 신호가 잘 잡히지 않았다. 하임은 통신이 먹통인 것을 확인하고 탄식을 흘렸다.
이내 인기척이 50m 정도로 가까워지자 공기가 갑자기 더 무거워졌다. 바위에 등을 붙인 채 숨죽인 그녀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나가라. 제발, 그냥 지나가라.’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바위 뒤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더 깊이 접어 넣을 때였다.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