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43화
43.
“오늘도 안 죽였죠, 형?”
“오늘은 이거로 됐으니까 데려다 놔. 감시 잘하고.”
“알았어요. 근데, 형. 임하임 씨 지금 산에 있는 것 같은데, 너무 오래 있는 거 아니에요? 곧 해 질 텐데.”
무혁은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하루타를 취조하기 전까지 습관처럼 몇 번이나 확인하던 화면이었다. 잠금을 풀자 지도 위에 표시된 점 하나가 떠올랐다.
“…….”
가만히 점을 응시하던 그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표식은 산 중턱을 훌쩍 넘은 지점에 박혀 있었다. 하임의 평소 작업 반경보다 한참 바깥, 그녀의 동선을 생각하면 의구심이 드는 좌표였다. 더군다나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시간대에 있을 곳은 아니었다.
무혁은 화면을 한 번 더 확대했다. 시간대별로 갱신된 이동 경로를 훑어보니 이상하리만치 현 위치에서 오래 머물러 있었다. 어딘가 안 좋은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씨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낮게 갈렸다. 차갑게 욕을 뇌까린 그가 핸드폰을 움켜쥔 채 방향을 틀었다.
* * *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느껴진 건 냄새였다. 눅눅한 흙내와 차가운 돌 냄새, 그 위에 덧씌워진 담배 연기 특유의 쓴 기운.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숨을 들이마실수록 폐 안쪽이 차갑게 식어 갔다.
“…….”
하임은 한동안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천장 대신 불규칙하게 패인 바위 면이 시야에 걸렸고, 그 사이사이에 검은 그림자가 들러붙어 있었다.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찬기에 몸을 떤 그녀는 이곳이 동굴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누군가 손질해 둔 흔적이 없는, 날것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산속 어디쯤인 듯하나 이곳은 하임도 처음 와 본 곳이었다. 귀를 바짝 열어 봤지만 들리는 건 싸늘한 겨울바람 소리와 숨 막히게 소름 끼치는 고요함이었다.
몸을 조금 움직이자 울퉁불퉁한 돌바닥의 표면이 등뼈를 타고 느껴졌다. 손목과 발목은 묶여 있지 않았지만 그 사실이 안도감을 주지는 못했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오히려 아무 제약 없이 이곳에 던져졌다는 현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도망칠 수 없다는 판단이 너무 빨리 들었기 때문이다.
하임은 동굴 입구 쪽에서 들어오는 불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직 흐린 시야 너머로 두 개의 그림자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온 남자들이었다.
한 명이 담배를 문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담뱃불이 붉게 밝아졌다가 꺼질 때마다, 그들의 얼굴 윤곽이 잠깐씩 드러났다. 표정은 읽히지 않았고 자세는 지나치게 느긋했다. 누군가를 감시한다기보다는 이미 상황이 끝났다는 듯한 여유마저 느껴졌다.
하임은 자신이 아무 위협도 되지 못하는 약자임을 깨닫고 낙담했다. 목구멍이 바짝 말라 신음이 샐 듯했으나 소리를 내면 알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먼저 들었다.
숨 쉬는 것조차 들킬까 봐 호흡을 최대한 눌러 죽이며 차오르는 눈물을 삼켰다. 그 어느 때보다 무혁이 보고 싶은 한편, 절대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이중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재를 털며 고개를 살짝 틀었다. 그 시선이 정확히 동굴 안쪽, 하임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눈이 마주친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깨어난 걸 들켰다는 걸.
하임은 그대로 몸을 굳힌 채 땅에 시선을 박았다. 공포가 소리 없이 쌓이는 동안, 남자가 담배를 입에 문 채 그녀에게 터벅터벅 다가왔다.
“임하임 씨. 잘 잤어요?”
“…….”
“아직은 어떻게 하려는 거 아니니까 너무 겁먹지는 말고. 우리가 묻는 질문에 대답만 잘해 주면 상처 하나 없이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하임은 입을 꾹 다문 채 어떠한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절대 말할 수 없거니와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행여나 무사하지 못하더라도 그 다짐만큼은 확고했다.
“……저, 저는 말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동굴 안은 지나치게 조용한 데다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마치 소리가 닿지 않는 공간처럼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느낌이었다.
남자는 표정 변화 없이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무혁의 사진을 들이밀었다.
“혹시 이 사람이 협박해서 그런 거면, 보복당할 일 없게 해 주겠습니다. 약속하죠.”
“…….”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정 협의가 안 된다면, 우리도 임하임 씨가 무서워할 방법을 쓸 수밖에 없어요.”
덤덤한 낯으로 낡은 자루를 툭툭 치는 남자는 마치 지옥으로 데려갈 희생양을 찾으러 온 악마 같았다.
“집에도 못 가고, 이런 곳에서 들짐승 먹이가 되고 싶어요?”
“……!”
“우리는 임하임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지금 굉장히 인내하고 있다는 거 알아 둬요.”
하임은 갑자기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했는지 오히려 화가 났다. 같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타인을 잔인하게 죽이려 할 수 있냐고 따지고도 싶었다.
“……그래서요?”
설령 자신이 이곳에서 죽게 되더라도 입도 뻥끗 못 해 보는 건 싫었다. 하여 두려움을 무릅쓰고 받아쳤다.
“나, 나쁘고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거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겠어요. 아무리 범죄자들이라도 적어도 인간이라면 최소한 양심의 가책은 느끼셔야죠.”
“서운하게 범죄자라니.”
“아니면 뭔데요? 저를 납치해서 이렇게 협박하고 있으면서 범죄자가 아니라고요?”
남자가 짜증을 삼키듯 고개를 좌우로 느긋하게 꺾으며 실소했다. 이내 대화를 포기한 듯 입구 쪽에서 기다리던 다른 남자에게 말했다.
“‘L’에게 전화해서 이 여자 데려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처리가 불가피할 거 같다고도 전하고.”
“그게 무슨…… 윽.”
떨리는 눈으로 묻던 하임은 숨통을 조여 오는 압박에 인상을 찡그렸다. 목을 지그시 누르는 힘에 숨구멍이 차단되며 머리가 핑글핑글 돌기 시작했다.
“대화가 안 통하니 어쩔 수 없군요, 임하임 씨. 어차피 곧 주사 한 방이면 전부 불게 될 겁니다.”
“…….”
“유감스럽게도 집에는 돌아오지 못할 거 같으니 속으로 가족들에게 인사나 해 두고.”
하임은 시커먼 장갑 위에 드러난 손목을 마구 할퀴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호흡이 절박해질수록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시려는 본능이 헛되게 반복됐다. 폐가 쪼그라드는 감각이 점점 또렷해지자 시야 가장자리가 서서히 어두워졌다.
‘아파…….’
무의식적으로 입을 벌려도 혀가 굳고 턱이 떨렸다. 손끝이 식어 가며 의식이 빠르게 멀어졌다. 고통에 허덕이는 그녀를 내려다보는 표정은 지극히 덤덤하고 평온했다.
생리적으로 맺힌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던 순간, 별안간 목을 누르던 압력이 느슨해졌다.
콜록, 콜록―!
하임이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공기가 폐 깊숙이 밀려들자 뜨거운 통증이 가슴을 긁고 지나갔다. 연신 기침을 터트리며 따끔거리는 목을 매만지느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탁했던 시야가 어느 정도 돌아오고 나서야 하임이 눈을 들었다. 그녀의 목을 조르던 남자는 웬일인지 동상이 된 것처럼 굳어 있었다. 이내 그의 몸이 그대로 앞으로 기울며 돌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
하임은 남자의 뒤통수에 박혀 있는 칼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철철 흘러나오는 피가 미동 없는 그를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차마 소리도 내지를 수 없는 잔혹한 광경에 그녀의 낯빛이 허옇게 질렸다. 다른 누군가의 고통 어린 신음에 눈을 들자 연달아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