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66화
66.
울음기 섞인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오자 보민이 아리송한 눈으로 형을 올려다봤다.
“나쁜 사람들이 삼동이 형아를 잡아가고 있어…….”
동민은 지난날 폐분교에서 마주쳤던 무시무시한 아저씨를 떠올리며 훌쩍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 쫓아가서 형을 구해 주고 싶지만 공포심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보민은 아직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눈치껏 자리를 지켰다.
“형아, 우리…….”
“쉿!”
동민이 다시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남자 둘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담벼락에 등을 바짝 붙인 채 숨소리마저 죽였다. 동민의 훌쩍임이 점점 더 커지자 보민도 따라서 눈물을 글썽였다.
“가서 엄마한테 말하자.”
동민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쫓아갈 용기는 없지만 대신 어른 누구에게라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마을 어르신들은 여행을 가셔서 집이 대부분 비어 있을 테니 어서 엄마가 있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보민아, 빨리 가자.”
삼동이 형아가 위험해.
두 형제는 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채 골목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 * *
멀리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집은 이미 불길에 완전히 잠식된 상태였다. 지붕 위로 솟은 연기가 바람을 타고 번지며 마을 위 하늘을 흐릿하게 덮고 있었다.
“우선 영감님은 치료부터 하십시오.”
“사지 멀쩡한데 어디를 치료하라는 거여.”
“가벼운 찰과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방, 멀쩡하다니께.”
“영감님 연세에는 조금만 스쳐도 멍드는 법입니다.”
“내 나이 경험이라도 해 본 겨? 니놈은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나 벼?”
“계속 여기 계시면 저희한테도 방해가 되니 안전한 곳으로 가 계십시오.”
“이 쓰벌놈이.”
봉주의 눈 흘김을 무시한 무혁은 어느새 제자리에 복귀한 B조에게 그를 데려가라는 눈빛을 보냈다.
“경호 똑바로 한다. 한 번만 더 자리 비우기만 해.”
“죄송합니다, 캡틴.”
B조가 봉주를 데리고 멀어지는 사이, 무혁의 단말기가 짧게 진동했다.
-A조, 산에 잠복해 있던 인원 셋 처리 완료했습니다. 현재 출입 금지 구역 근방 순찰 중입니다.
“너희 중에 오늘 삼동이 본 사람 있나?”
-삼동이요? 오늘은 산에 안 왔습니다. 마을에 있는 거 아닙니까?
“우선 삼동이 행방부터…….”
그때, 무혁의 시야 끝에 작은 움직임이 잡혔다. 반대쪽 길목에서 아이 하나가 울음을 터트린 채 누군가의 손을 잡아끌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뒤따라오는 여자는 아이의 어머니로 보였다.
무혁은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삼동이와 자주 어울리던 꼬마 형제였다. 이름이 동민이라 했던가.
불타는 집을 보며 식겁하던 여자가 물었다.
“저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무혁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대꾸했다.
“소방차가 오고 있습니다. 화재는 곧 진압될 겁니다.”
여자는 다분히 놀란 듯 잠시 말이 없다가 아이가 엉엉 울며 보채자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 삼동이 말이에요. 자꾸 우리 애가…….”
무혁이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애들이 헛소리하는 건 줄 알았는데…… 자꾸 누가 삼동이를 잡아갔다고 울고불고해서요.”
“…….”
“아니죠? 애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죠?”
멈칫한 무혁의 건조한 시선이 동민에게로 향했다. 눈물에 젖은 얼굴로 숨을 제대로 고르지도 못한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아이가 떨리는 입술로 더듬더듬 말했다.
“어떤, 어떤 나쁜 아저씨들이…… 삼동이 형아 잡아갔…… 히끅.”
“어디로.”
짧게 묻자 동민이 대답 대신 산 초입을 가리켰다.
“나쁜 아저씨들은 몇 명이었지?”
아이가 검지와 중지를 펴 보이자 무혁이 가볍게 고개를 주억였다.
“별일 없을 테니 어머니랑 집에 가 있어. 삼동이는 안전할 거니까.”
무혁이 아이 어머니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녀가 동민을 끌어안고 뒤로 물러났다. 아이는 훌쩍이며 몇 번이나 산 쪽을 돌아봤지만, 결국 엄마 손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다.
무혁은 그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단말기를 들어 올렸다.
“A조, 위치 유지. 추가 잠복 가능성 있으니 경계 강화해. 나도 합류한다.”
삼동이부터 찾으라는 지시를 덧붙인 뒤 무혁은 단말기를 집어넣었다. 그는 곧장 산 초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길과 소음이 멀어질수록 주변은 빠르게 고요해졌다. 바삭하게 마른 낙엽과 차게 식은 흙냄새가 공기 속에 엷게 섞여 있었다.
한 발짝 더 내딛는 순간, 무언가 스치는 기척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무혁은 생각할 틈도 없이 날렵하게 옆으로 굴렀다.
푸슉―
짧은 압축음이 뒤늦게 귀를 스쳤다.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서 흙이 튀어 올랐다. 그는 곧장 두꺼운 나무 뒤로 몸을 붙였다. 허리에서 권총을 뽑으며 슬라이드를 짧게 당기자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건조하게 울렸다.
그때, 다른 각도에서 또 한 발이 날아왔다.
푸슉―
나무껍질이 거칠게 튀며 파편이 얼굴 옆을 스쳤다. 그의 동공이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날카롭게 돌아갔다.
“씹.”
무혁은 망설이지 않고 몸을 반쯤 내밀며 총구를 겨눴다. 짧게 두 번 방아쇠를 당기자 잠깐의 정적 뒤, 저 멀리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한 번 더 훑은 무혁은 다른 인기척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옆구리를 움켜잡았다. 둔탁한 충격이 뒤늦게 밀려왔다.
“씨발.”
잇새로 까칠한 욕설이 새어 나왔다. 총알이 정통으로 박혔지만 방탄조끼가 대부분의 충격을 받아 냈다. 조끼를 더듬어 확인했으나 다행히 몸에는 구멍이 나지 않았다. 대신 바깥 주머니가 찢겨 있었고, 단말기가 총알에 뚫려 있었다.
무혁은 완전히 망가져 버린 단말기를 보며 입안을 짓씹었다. 액정이 산산이 깨진 데다가 전원도 들어오지 않았다.
“…….”
잠깐 노려보던 그는 결국 부서진 단말기를 주머니에 다시 밀어 넣었다. A조와 합류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 산은 이미 제 손바닥처럼 익힌 지 오래였다. 능선과 사면, 사람 발길이 드문 우회로까지 머릿속에 그려지듯 떠올랐다. 단말기가 없어도 위치를 잡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멀리서 들어오는 연락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무혁의 시선이 잠깐 아래쪽 마을 방향으로 떨어졌다. 소방차가 늦지 않게 도착한 덕에 어느새 불길이 잡히고 있는 듯했다.
이제 소진이 있는 곳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었다. 조용한 걸 보아 아직은 괜찮은 모양이었지만. 만약 그쪽에도 무슨 일이 생겼다면 진작 신호가 들어왔을 터였다.
불과 몇 초 차이로 소진의 연락을 놓쳤다는 걸 모른 채, 그는 능선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 * *
푸슉―
짧게 눌린 소리가 어둠 속에서 터지더니 뒤이어 두어 번 반복되었다. 삼동이는 눈을 꼭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의식은 진작 돌아온 상태였다. 지나치게 건강한 육체라 급소를 맞아도 금방 회복한 것이다. 삼동이를 공격한 놈들은 그가 머리만큼 몸도 둔한 놈일 거라 여겨 이쪽으론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사정은 꿈에도 모른 채 삼동이는 제 완벽한 위장에 만족하며 귀만 바짝 세웠다. 몸을 축 늘어트리고 숨도 최대한 얕게 쉬었다. 조금만 들썩여도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삼동이는 할 수 있다.’
숨은그림찾기만큼 자신 있는 것이 바로 시체 놀이였다. 죽은 척하고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는 것. 누가 옆에서 건드려도 버티는 데에는 꽤 자신이 있었고, 이 놀이로 동민, 보민 형제를 여러 번 울리기도 했더랬다.
푸슉― 푸슉―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가 바로 옆에서 울리자 삼동이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아주 조금, 실눈을 뜬 채로 주변을 살피니 언젠가 본 듯한 산비탈이 있었다. 잠깐 위치를 가늠해 보던 삼동이의 눈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처음에 형아를 발견했던 곳. 땅속에서 무혁을 파냈던 그 초소 근처 같았다.
그를 끌고 온 남자 둘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둘 다 몸을 낮춘 채 숲 쪽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푸슉―
또 한 발이 나갔다. 총알이 어디선가 날아와 그들 발치에 박히자 낙엽과 흙이 이리저리 튀었다. 삼동이는 움찔할 뻔한 몸을 가까스로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