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프롤로그
“사람! 사람 좀 불러와요!”
“119에 신고도……! 빨리요!”
웅웅거리는 소리가 멍한 귓가를 울렸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경악한 어른들의 얼굴과 바쁘게 움직이는 발들이 보였다.
뜨거운 무언가가 얼굴을 가로지르며 내려오는 게 느껴졌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 앞에 누워 있는 누군가 때문이었다.
세차게 내리는 눈이 단정한 머리카락 위에 쌓이기 시작한다. 인형처럼 하얀 피부는 검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유일하게 그가 살아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던 눈동자마저 굳게 감겨 있다. 두 번 다시 뜨지 않을 것처럼.
“도련, 님…….”
나는 엉금엉금 그를 향해 기어갔다. 다리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아, 팔에 힘을 주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검은 아스팔트에 거칠게 쓸렸다. 통증을 이겨 내며 힘겹게 팔을 뻗었다. 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
그러나 아무리 손을 뻗어 봐도, 몇 번을 기어가도 도련님에게 닿지 않았다. 아직 어린아이라서, 다 자라지 않은 작은 몸이라 그런 걸까.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점점 내 시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그를 삼키고, 점점 작은 점이 된다.
“아, 안 돼. 안 돼…….”
입김과 함께 떨리는 숨을 토해 내며, 나는 몇 번이고 엉금엉금 기어간다. 계속, 계속…….
“헉……!”
꿈에서 깬 건 그때였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깜빡였다. 황급히 손을 들어 올리자, 이미 다 자란 성인의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꿈속에서 보았던 검붉은 피 또한 더 이상 묻어 있지 않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또…….”
또 그 꿈이었다.
하얗게 내리는 눈. 어린아이의 존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속도를 낮추지 않은 트럭. 내 시야를 가득 메운 환한 빛. 그리고…….
“유월아.”
들리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황급히 상체를 일으키자 문 앞에 서 있는 인영이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왜 일어났어? 어디 불편한 거 있어? 통증이 또 도진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날 부르지, 왜 혼자서 위험하게…… 다리 한번 봐 봐.”
“유월아.”
강박적으로 그의 몸을 살피던 나는 그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단정한 까만 머리카락. 끝이 살짝 올라간 눈매 속 묘하게 회색빛이 도는 눈동자. 동기들이 매번 모델로 참고해도 되겠다며 너스레를 떨 만큼 높고 곧은 콧날. 그리고 붉은 입술까지.
꿈속에서 엉망인 채로 누워 있던 권해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 확인했어?”
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던 것인지, 해수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전보다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미안해. 좀 놀라서…….”
“그런 것 같더라. 또 악몽을 꾼 거지?”
해수가 다정히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말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불안을 느낄 때마다 서로를 안아 주던 게 습관이 되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불안해하는 나를 달래 주려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가 나를 안아 주어야만, 그래서 직접 그의 심장 소리를 귀로 직접 들어야만 나는 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눈이 많이 내리네.”
얼마간 나를 토닥이던 해수가 불쑥 내뱉었다. 나는 품속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옆으로 미끄러뜨렸다. 이따금씩 덜컹거리는 창문 너머로 굵은 눈발이 날리는 게 보였다.
고요한 어둠으로 가득 찬 풍경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차츰 원래의 속도를 되찾는 듯했다.
“응, 그렇네.”
나는 느리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쿵쿵. 느릿한 심장 박동 소리에 맞춰 악몽 속 장면들이 천천히 지워져 간다. 저 멀리서 들리는 앰뷸런스 소리와 비명들, 붉은 핏자국. 그리고…….
“그날도 이랬는데.”
그러나 이어진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나는 번뜩 눈을 떴다. 물끄러미 창밖을 응시하던 해수가 나른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세차게 눈이 내렸어. 그렇지?”
“……해수야.”
“난 정말 기뻤어. 그해 첫눈이었거든. 처음 보는 눈도 아닌데, 어찌나 그게 좋던지.”
“…….”
“친구랑 처음으로 맞는 눈이라 더 들떴나 봐. 정말 예뻤는데…….”
과거를 회상하는 음성은 듣는 사람도 설레게 할 만큼 부드러웠으나,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덜덜 떨리는 시야를 천천히 내렸다. 나를 안아 주기 위해 기꺼이 내려놓은 지팡이가 한쪽에 기대어 있었다. 그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재벌가의 유일한 후계자가 불의의 사고로 말을 잃었다. 유일한 개선 방법은 또래 친구와의 유대감이었고, 나는 그를 위해 고용되었다.
그러나 나의 부주의가 그를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언어는 되찾았으나 그는 평생 두 다리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다.
나 때문에.
고작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해수야. 난, 나는…… 미안해. 내가, 나 때문에…….”
“쉬이. 유월아. 너 너무 놀랐어.”
나는 주춤거리며 그의 곁에서 멀어졌다. 그 간극을 너무도 쉽게 좁힌 해수가 부드럽게 내 뺨을 감쌌다.
“나 봐 봐, 착하지?”
아이라도 어르는 듯한 음성에 저절로 고개가 들렸다. 혼몽한 시선 속에 차츰 그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는, 권해수는.
“죄책감 갖지 마. 난 지금도 충분히 행복해.”
웃고 있었다. 진실로 행복하다는 듯이.
“다리 같은 건 상관없어.”
네가 내 곁에 있으니까.
나는 목이 메어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미소 짓는 얼굴에 천천히 그날의 기억이 덧씌워진다.
시체처럼 누워 있던 나의 도련님. 나의 죄악. 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