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외전 2.
외전 2.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오랜 정적을 깨는 비서의 목소리에 권해수가 고개를 들었다. 높은 빌딩들로 가득했던 창밖 풍경이 어느새 작은 학교로 바뀌어 있었다.
그에 그는 방금까지 자신이 보고 있던 핸드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정말 괜찮겠어? 걱정스러우면서도 조심스럽게 묻는 글자가 방금 막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답장을 하는 대신 화면을 껐다. 그와 동시에 차가 느릿하게 움직임을 멈췄다. 차에서 내린 그가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학교와 맞지 않게 넓은 운동장. 알록달록한 놀이 시설. 기껏해야 자신의 명치에나 닿을까 싶을 정도로 낮은 철봉들 아래엔 흙이 엉망으로 파헤쳐져 있었다. 늦봄의 햇빛을 받으며 마구잡이로 땅을 짓밟았을 아이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었다.
“1학년 2반입니다.”
다가온 비서가 지팡이를 건네며 말했다.
“그, 어려우시면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며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지팡이를 건네받으려 손을 내밀며 해수는 힐끗 비서를 바라보았다. 제 자식도 아니고, 상사의 자식이 다니는 학교였다. 아이의 반을 알고 있는 건 비서로서 훌륭한 태도였지만, 그곳을 자신이 가겠다고 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었다.
그러나 그게 걱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그는 지팡이를 건네받으며 무감하게 대답했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연락은 내가 할 테니 아내에게 연락은 따로 하지 마세요.”
“……예.”
무어라 덧붙이려는 듯한 비서는 곧 자신의 처지를 깨닫곤 입을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작은 교실 뒤편은 이미 도착한 학부모들로 빼곡했다. 그가 들어가자 몇몇 학부모들이 그를 알아보곤 놀란 듯 입을 열었다. 하기야 같은 반에 권성의 후계자가 있는 것은 알아도 권해수가 직접 나타날 것까진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그는 그들에게 시선을 주는 대신 내부를 훑었다. 칠판 한쪽엔 누가 썼는지, ‘엄마, 아빠가 보러오는 날!’이라는 글자가 삐뚤삐뚤하게 쓰여 있었다.
그는 다시 시선을 움직였다. 이미 집에서 실컷 봤으면서도 새삼스럽게 반가운지, 혹은 학교라는 공간에 부모가 있다는 것이 신기한지 작달막한 아이들이 제 부모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딱 한 아이만 빼고.
해수는 아빠가 온 줄도 모르고 앞만 응시하는, 까맣고 동그란 아들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제 부모 옆에 선 그를 발견했다.
“희성아, 너희 부모님 왔어!”
“정말?”
친구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아이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유월은 아이에게 부드러운 이름을 주길 원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을 만큼 예쁜 이름을. 이름이야 편히 부르는 호칭에 불과하다 생각했으나, 유월이 며칠 밤새 옥편을 쥐고 끙끙거리는 것을 보니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희성은 그렇게 지어진 이름이었다. 밝게 빛나는 별이 되라는, 유월의 희망이 듬뿍 담긴 이름.
그 때문인지 희성이 웃을 때마다 사람들은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이 오밀조밀 예쁜 외모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
그런 얼굴이 저를 본 순간, 순식간에 실망으로 물들었다. 의아하다는 듯 옆자리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희성이 너희 아빠 아니야?”
그러며 해수와 희성을 번갈아 보았다.
“이상하다……. 똑같이 생겼는데?”
익숙한 반응이었다. 웃음과 다정한 성정은 엄마를 닮았으나 이목구비만큼은 저를 쏙 빼닮았다. 아이가 길을 잃어도 “네 아빠 저기 있다.” 하고 데려다줄 만큼.
“응……. 우리 아빠 맞아…….”
희성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아니라 모르는 사람을 보아도 이런 반응은 아닐 것 같았다.
유월이 괜찮겠냐는 연락을 연거푸 보낸 것은, 아마 이런 상황이 생길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아이가 아버지를 반가워하지 않는.
불우한 어린 시절 때문이었을까. 유월은 부모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아들에게 해 주려고 했다. 아이를 향한 애착이 깊어질수록 정유월의 세계는 좁아진다. 그렇기에 그는 유월의 과보호를 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유월이 둘째를 임신하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정유월은 체질과 성정이 타고나길 유약했다. 희성을 임신했을 때도 간간이 유산기가 보여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러니 둘째를 임신한 지금, 더욱 몸 상태를 신경 써야 했으나.
“가, 가야 돼.”
“뭐?”
“첫 참관일이잖아. 희성이가 엄마 온다고 얼마나 기대했는데…… 혼자 아무도 안 오면 얼마나 슬퍼하겠어.”
그런 이유로 병원 진료까지 뒤로한 채 참관 수업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에 해수는 결정을 내렸다. 정유월은 병원으로, 권해수는 학교로. 아빠도 엄연히 보호자였으니. 그러나 여전히 유월은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제 아들에게 별다른 애착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모든 스케줄을 뒤로 미루자 얌전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뭐,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한들 이어진 키스 때문에 내뱉을 수 없었을 테지만.
“다들 안녕하세요~”
타이밍 좋게 선생이 안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오셨다, 희성아.”
“응…….”
엄마 대신 아빠가 왔다는 충격 때문인지, 희성은 친구의 재촉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그때까지도 해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고리타분한 수업이었다. 선생이 뻔한 질문을 던지면, 아이들이 뻔한 대답을 하는. 그러나 아이들 특유의 생기 넘치는 대답이 분위기를 활발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수업. 아이들의 적극적인 태도와 학부모들의 반응에 선생의 목소리 또한 커졌다.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학교. 게다가 막 입학한 신입생들의 담임선생님이란 부담 때문인지, 선생의 목소리는 유독 크고 가식적이었다.
“그럼 이제 엄마, 아빠한테 학교 소개하러 가 볼까요? 제일 먼저 손잡는 사람!”
“저요!”
그 때문인지, 선생은 평소와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선 교실을 빠져나갔다.
소개는 핑계고, 자신들의 학교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후원금을 바라는 속내가 있을 수도 있겠고.
그러나 학교의 위상을 생각하면 못 맞춰 줄 장단도 아니었다. 유월이라면 기꺼이 희성의 손을 잡고 학교를 둘러보았을 테니.
그 생각으로 해수는 제게 다가올 희성을 기다렸다. 그러나 희성은 자리에 앉은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희성아?”
의아함을 느낀 선생이 희성의 자리로 다가갔다.
“희성아, 왜 그래. 어디 아파?”
희성이 고개를 젓자, 선생이 회유하듯 웃으며 말했다.
“아빠한테 학교 소개해 주기 싫어?”
“아니요…….”
그건 정말 아니었는지, 희성은 홰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아빠 손잡고 같이 나가 볼까? 친구들 기다리겠다.”
그 말에 머뭇거리던 희성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척에 다가온 희성이 눈치를 보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손잡고 같이 가자는 뜻이다. 때마침 희성이 선 곳은 지팡이를 쥔 쪽이었다. 지팡이를 반대 손으로 바꿔 잡은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내민 순간이었다.
“……흐.”
돌연 아이의 입에서 울음이 새어 나왔다. 울먹울먹한 얼굴을 채 달래기도 전이었다. 기어코 희성이 와앙, 눈물을 터뜨렸다.
“어머, 희성아. 왜 울어! 응?”
“…….”
“이, 이렇게 잘 우는 애가 아닌데, 왜 갑자기…….”
화들짝 놀란 눈으로 저와 희성을 번갈아 쳐다보는 선생. 손을 잡지도, 내리지도 못한 채로 와앙 우는 희성을 보며, 권해수는 생각했다.
아. 유월의 걱정이 괜한 것은 아니었구나.
***
성격 급한 아이들이 빠져나간 교실이었다. 다행히 희성이 우는 것을 본 사람들은 없었으나, 선생이 유일한 목격자인 것이 문제였다. 결국 그날의 일은 전부 유월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게 아니었더라도 훌쩍이며 들어온 희성 때문에 알아차렸겠지만.
“무슨 일이야? 희성이가…… 울었다면서?”
희성이 잠자는 것을 확인한 후, 방으로 돌아온 유월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사실이었다. 지금껏 숱한 거짓을 유월에게 속삭여오긴 했으나, 그는 제 아들이 왜 울음을 터뜨렸는지 진실로 알지 못했다. 그저 울음이 그칠 때까지, 희성이 “이제 갈래요…….” 하고 말하며 스스로 아빠 손을 잡을 때까지 기다려 준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선생님 말로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던데……. 무슨 일 있었어?”
“일은 없었어. 그냥 내가 와서 싫었나 봐.”
“뭐?”
그는 무슨 뜻이냐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유월을 향해 덤덤히 말했다.
“희성이는 널 더 좋아하니까. 나보다는 네가 오는 걸 더 기대했겠지.”
“…….”
“싫어할 거란 예상은 했어. 울 줄은 몰랐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방긋방긋 잘 웃던 희성은 유독 자신의 앞에선 눈치라도 보듯 굴었다. 다른 모진 말을 하거나 눈빛을 보내지도 않았는데도.
그때마다 유월은 이름 때문이 아니냐는 말을 하곤 했다. 희성이 ‘권희성’이 아니라 ‘정희성’이어서, 아빠를 가족이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하지만 해수의 생각은 달랐다. 해수는 희성이 유월의 성을 따르길 바랐다. ‘권희성’이 아니라 ‘정희성’이어야만, 유월이 자신의 자식임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허튼 생각은 못 하겠지.
오로지 그 생각으로 밀어붙인 성씨였다. 권씨를 잇는 건 둘째 혹은 그다음 아이면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반대가 있었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계획하에 희성은 ‘정희성’이 되었다. 성이 달라도 외형만큼은 권해수를 빼닮은 덕에, 다른 놈의 씨가 아니냐는 말은 쏙 들어갔다.
“……해수야.”
그럼에도 유월은 그 사실이 매번 신경 쓰이는 듯했다. 부모와의 애착보다 배신이 더 깊은 유월이었으니, 자신의 기억을 겹쳐 보는 것이리라.
그때마다 그는 유월의 얼굴 곳곳에 입 맞추며 그녀의 불안을 잠재워 주었다. 너만 내 옆에 있어 준다면 나는 네가 사랑하는 것들을 놔 버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그것뿐이야?”
그런데 오늘의 반응은 평소와 달랐다.
“다른 건 없었어? 희성이가 울어서 슬펐다거나, 달래 주고 싶었다거나…….”
“…….”
“치, 친해지고, 싶었다거나.”
되묻는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답은 명료했다. 없다. 희성이 제 아들이라고 해도 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유월이 아이를 사랑하니, 해수는 아이를 보호하는 것뿐.
그러나 그는 저택에 도착하기 전 들었던 진료 보고를 되짚었다. 안정기에 들어서 몸은 괜찮지만, 산모의 정신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정신적 안정은 신체와 무관하지 않다. 첫째가 있다고 해도 배 속의 둘째를 잃는다면 유월은 무너질 것이다. 오직 그 생각하에 그는 입을 열었다.
“주말에 전시회가 열려. 그곳에 희성이랑 같이 가 볼까 해.”
그 말에 유월의 눈이 크게 뜨였다. 권성으로 들어온 후, 해수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두 번째 사고 이후, 손을 다쳤기 때문이었다. 다리와 달리 손은 나았으나, 미술은 천희영의 목숨줄을 붙잡는 수단이었기에 미련 없이 관두었다.
하지만 유월은 그 미래마저 자신이 망쳐 버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고,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입을 다물었다. 그럴수록 유월의 죄책감은 더욱 커질 테니. 그런 제가 먼저 그림 이야기를 꺼냈으니 유월로서는 놀랄 만도 했다.
“……괜찮겠어?”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어려워. 희성이는 한창 뛰어놀 때고, 난 다리가 불편하니까.”
다리. 유월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권해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그녀가 “해수야.” 하고 입을 떼는 순간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노력은 해 볼게.”
“응?”
“그 대신.”
동시에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등에 곧장 그의 탄탄한 몸이 닿았다. 유월이 가볍게 바르작거리며 놀란 말을 내뱉기 전이었다.
“유월이가 알려 줄래?”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누른 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이한테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 말에 품속의 유월이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 또한 부모의 부재가 컸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으리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해수는 남들보다 비틀린 사람이었다. 고리타분한 설명은 와닿지 않을 게 분명할 터. 유월은 그가 가장 애착을 보이는 상대를 생각했다. 그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평소대로 하면 돼.”
“평소대로?”
“나, 나한테 해 줄 때처럼 말이야.”
권해수는 정유월을 가장 바닥까지 떨어뜨린 사람임과 동시에 저를 끌어 올린 사람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게 보여 주는 그의 다정함만큼은 진실이었으니까.
그러자 해수가 재밌든 답변을 들은 양 피식 웃었다.
“아니지, 유월아.”
동시에 몸이 다시 돌아갔다. 허리를 감싼 해수가 가까이 밀착했다. 볼록한 뱃가죽 아래, 어느새 몸집을 키운 성기가 느껴졌다.
“아무리 내가 미친놈이라고 해도 자기 자식한테 좆을 세우진 않잖아.”
“뭐…….”
“물론 너라면 그랬겠지만.”
유월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버둥거렸지만 이미 팔목은 해수에 의해 가볍게 붙잡힌 상태였다.
“왜, 그런 말을 해. 왜…….”
“글쎄. 틀린 말도 아니지 않나.”
가볍게 웃은 해수가 그녀의 옷을 끌어 올렸다. 수유패드 너머로 흘러나온 모유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내가 매일매일 네 젖을 먹는 건 사실이니까.”
유월은 다른 산모에 비해 유독 젖이 많이 도는 체질이었다. 아기에게 먹여도 남아도는 젖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 되었다. 매일같이 제 젖을 찾는 저 덕분에, 이제는 그가 젖을 빨아 주지 않으면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이거 봐, 유월아.”
그가 유월의 가슴을 아래로 움켜쥐어 올리며 속삭였다.
“네 몸이 나를 네 아이로 인식하고 있어.”
그가 가슴을 꽉 움켜쥘 때마다 살찐 가슴이 달콤한 크림이라도 가득 차오른 양 출렁거리며 흔들렸다.
“나한테 젖을 먹여 주고 싶어서 줄줄 흘리고 있다고.”
증명이라도 해 주듯 부푼 젖꼭지가 빠끔거리며 모유를 내뱉었다. 유월은 부정이라도 하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그건, 네가…… 흐읏!”
그러나 그녀가 채 부정하기도 전, 해수가 젖꼭지를 베어 물었다. 그러곤 그대로 강하게 빨기 시작했다.
“아, 아응!”
부푼 젖꼭지가 쭉쭉 빨릴 때마다 젖이 그의 입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게 느껴졌다. 꿀꺽. 꿀꺽. 목울대가 일렁이며 젖을 삼키는 게 느껴지는데도, 한참 모자라다는 듯 흡착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아, 안 돼, 싫어. 그만, 응……!”
“하아, 싫어?”
가슴 끝을 집요하게 물던 권해수가 젖을 문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나쁜 말 하면 안 돼, 유월아. 배 속의 아이가 듣잖아.”
“그건…….”
“어쩌지.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아빠를 싫어하겠네. 희성이처럼.”
그 말에 유월의 숨이 멈췄다. 희성을 임신했을 때, 유월은 그를 멀리했다. 망가진 다리로 인해 물리적으로는 가까웠으나, 심적으로는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에게 차근차근 마음을 연 것은 희성이 태어난 이후였으나, 지금도 완전히 열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게 설마 아이에게 드러난 걸까.
그래서 희성이가 아빠를. 어쩌면 배 속의 이 아이도.
유월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녀의 상상이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것을, 권해수는 여유롭게 지켜보았다. 그녀가 그를 밀어내는 건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는 자신을 망친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유월은 아기가 그를 싫어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기의 피와 살, 그 절반은 권해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때마다 그는 그녀의 결핍이 너무도 기꺼웠다.
때마침 아이가 퉁, 발길질을 하며 뱃가죽 너머로 자신의 의견을 내보였다. 유월의 얼굴이 차게 굳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궁지로 몰아가는 것을 보니, 역시 피는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기특하게도.
“어서, 유월아.”
그가 동그란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유월을 재촉했다.
“알려 줘야지. 아기가 궁금해하잖아.”
유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수치심을 유발하기 위해 일부러 하는 말임을 알았다. 하지만 정말 아이가 들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유월의 가슴을 콱 움켜쥐었다.
“……시, 싫어하는 게 아니야. 아기야.”
달래듯 애써 밝은 척하는 목소리가 안쓰러울 만치 떨렸다.
“그냥, 엄마가 아빠 때문에 좀 놀라서 그랬어. 그러니까…….”
말을 이어야 하는데, 그럴듯한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사이 좋은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아기가, 우리 아기가 놀라지 않도록……. 유월은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단정하고 결 좋은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으며 그와 눈을 맞췄다.
“처, 천천히…….”
“…….”
“체, 체하니까…… 천천히 먹어 줘. 응?”
아기가 놀라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흘러나온 애원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눈시울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목소리는 목이 졸리기라도 한 것처럼 힘겨웠다. 그러나 옅은 웃음기를 띠었던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에 짙은 정복욕이 깃드는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아, 아아……!”
다시금 젖을 삼켜 문 그가 강하게 흡착하기 시작했다. 입안 전체로 흡착하며 쭉쭉, 탐하다가 입술을 모아 통통한 젖꼭지를 깨문다. 그에 맞춰 입안으로 모유가 핏핏 쏘아진다. 꿀꺽, 탄탄한 목울대가 움직일 때마다 그가 착취한 모유량을 상상케 했다.
“해, 해수야, 천, 천천, 히……!”
그녀의 애원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스읍, 달큼한 젖내를 맡기도 하고, 그 짧은 사이 흘러나온 젖을 혀로 핥아 올리기 바빴다.
“아기야, 네 엄마한테서는 단내가 나. 아기 냄새”
갉작갉작. 커진 유륜을 파헤치듯 핥던 그가 옆으로 사악 혀를 미끄러뜨리며 말했다.
“그래서 아빠가 엄마한테 매달리는 거야. 아기 같아서.”
“응, 으응……!”
“그치, 유월아?”
대답해야지. 둥근 둔덕을 이로 깨물며 재촉하자 유월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빠가,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 어, 엄마 안 아프게 해 주려고.”
유월은 자신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재차 이유를 대었다. 아빠가 아기의 젖을 빠는 건 엄마를 위한 일이라고.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그가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입에 담았던 사랑을, 이제 유월이 말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욕설을 중얼거린 그가 더욱 깊게 몸을 맞췄다. 그와 동시에 크기를 키워 발딱 세운 좆이 그녀의 아래를 뭉근하게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흐아……!”
찔걱. 뻑. 쯜벅. 뻐억. 젖은 아래가 비벼지고, 젖을 빨리는 소리가 겹쳐 들린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음란한 소리에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배 속의 아기에게 위아래, 질질 물을 흘리는 자신을 몰랐으면 했다. 차라리 이 행위가 사랑이라 느꼈으면 했다. 그를 증명하듯 해수가 반대편 젖을 집어삼킴과 동시에 어서 저도 빨아 달라며 꼿꼿해졌던 젖이 만족스럽게 젖을 내뿜었다. 해수의 목울대가 느릿하게 움직이며 젖을 삼켰다. 젖은 천을 강하게 치대고, 꿀꺽이며 모유를 삼키는 소리가 더욱 커진다.
자신의 몸이 위, 아래 물을 질질 흘리고 있다. 그 사실에 오싹한 절정이 살갗을 타고 내달린다. 아니, 아직은 아니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지나면…….
그러나 그때였다. 뻑.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입술이 떨어졌다. 아래를 밀착하던 움직임도 마찬가지였다. 유월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목전까지 다가왔던 절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조금만 더, 앞으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코앞이 절정이었는데.
먹던 사탕을 빼앗긴 아이처럼 유월이 눈을 깜빡였다. 아직 열감이 식지 않은 뺨에 입 맞춘 해수가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부탁할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줘야지, 유월아.”
“…….”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는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하지 않으면 모르잖아.”
해수의 커다란 손이 부푼 배를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자신이 행하는 이 모든 건, 아기에게 알려 주는 교육이라는 듯.
순간적으로 정신이 돌아왔다.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유월의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으나, 해수는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면 여기서 그냥 끝낼까?”
다정한 척 굴면서도 노골적인 압박에 유월이 떨리는 호흡을 참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상했다. 아기의 몫일 게 분명한 젖을 매일같이 빨아 먹는 그도. 혹여 아이가 들을 것이 무서워, 그를 어르고 달래 젖을 먹이면서도 아래를 적신 자신도. 임신한 부부가 행하기엔 너무도 외설적인 배덕이자 수치였다. 알고 있었지만.
“제발…….”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이미 쾌감을 알아버린 몸이었다. 권해수가 길들인 몸. 이보다 더 큰 감각을 맛보고 싶었다. 그녀가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눈을 감은 채로 바들바들 떨면서.
“해, 해 줘…….”
“…….”
“빨리, 해, 해 줘. 나, 나 좀 어떻게 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이 뒤로 넘어갔다. 풀썩 몸이 침대에 눕혀지자, 유월이 깜짝 놀라며 허겁지겁 배를 끌어안았다. 그와 동시에 한쪽 다리가 천장을 향해 높이 들렸다. 흠뻑 젖은 천 너머, 통통해진 음핵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이어질 행위를 채 인식하기도 전이었다. 수려한 낯이 젖은 천을 벗길 생각도 없이 그대로 빨아올렸다.
“아, 하으아!”
거친 천과 부드러운 혀끝이 통통한 음핵을 동시에 괴롭혔다. 아래가 질질 애액을 흘리자 쯜걱거리는 소리가 한층 짙어졌다. 일부러 한가득 빨아 주지 않고, 건드리기만 하는 움직임이었다. 젖은 천 너머로 혀가 움직일 때마다 쓸리는 감각에 허리가 번쩍번쩍 튀었다. 보채기라도 하듯 몸이 비틀렸다. 그러자 해수가 제압이라도 하듯 허벅다리를 끌어안았다.
“어떻게 이러지.”
도톰한 조갯살 안으로 파묻힌 날렵한 콧날이 향기를 맡듯 스읍, 깊게 숨을 들이쉰다.
“어떻게 매번…… 이렇게 단내가 나. 응?”
“응, 으읏, 아아……!”
예민한 살갗으로 음욕으로 가득한 숨이 고인다. 향기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몽롱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그가 양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엉덩이가 좀 더 높은 각도로 들린다 생각한 순간이었다. 벗기는 것도 성가시다는 듯 그가 갈급한 손길로 젖은 부위만 드러나도록 팬티를 걷었다.
“아, 아아……!”
그와 동시에 피가 몰려 딴딴해진 음핵이 뜨거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다렸던 감각이 순식간에 쏟아졌다. 가장 예민해진 살점이 기뻐하며 울컥울컥 애액을 쏟아 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핥아 올리던 혀가 좁은 입구 속으로 밀려든다.
“거기, 안 돼, 응……!”
안 된다고 발버둥을 쳐도 붙잡힌 아래를 벗어날 수 없었다. 까만 머리카락이 허벅지와 음부를 간지럽힌다. 유월은 손을 내려, 천천히, 제발. 천천히……. 젖을 먹일 때처럼 아이 달래듯 애원했으나 다디단 과육을 먹는 움직임은 더욱 게걸스러워졌다.
“흐. 흐익, 흐읏…….”
아래가 움찔움찔 튀어 올랐다. 눈앞이 번쩍거리고, 아플까 봐 세게 쥐지도 못했던 그의 머리칼을 꼭 그러쥔다. 수치도 모르고 들썩거리는 아래에 싸한 감각이 몰림과 동시에…….
“흐, 흐아……!”
핏. 피잇. 보짓물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동그란 둔덕을 타고 쾌감의 산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자신이 찾아낸 샘물을 기쁘게 받아먹고, 양쪽으로 쫙 벌려 낸 조갯살의 사이도 핥고, 그마저도 부족해 엉덩이를 타고 흘러내린 둔덕까지 혀로 전부 핥아 내고 나서야, 해수가 고개를 들었다. 까만 머리카락, 그와 대조되는 하얀 얼굴과 단정한 이목구비가 음란한 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야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그가 웃었다.
“엄마가 되어서, 물을 많이 흘렸네.”
“흐, 흐아.”
“이래서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 유월아.”
타이르듯 말하는 투였으나 쾌감으로 몽롱해진 머리는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기껍다는 듯 소리 내어 웃은 해수가 그녀의 뺨에 입 맞췄다.
“하긴, 아기도 알 건 알아야겠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간신히 정신을 차리기도 전이었다. 잘그락, 금속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갈라진 둔덕 위로 씨근거리는 좆이 턱 내려앉았다.
“아…….”
자궁과 깊게 입 맞추기 위한 둥그런 귀두. 한참 전부터 쿠퍼액을 질질 흘리는 좆 끝. 그리고 그 기둥을 감싼 흉흉한 핏줄은 어서 보지를 맛보고 싶다는 듯 연신 꿈틀거리고 있었다. 몇 번을 받아들였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위압감. 본능적인 두려움에 그녀가 입을 달싹인 순간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한쪽 다리가 그의 어깨에 걸쳐졌다. 음부가 드러남과 동시에 뜨끈한 자지가 그대로 그녀의 안쪽을 밀고 들어갔다.
“아, 하윽……!”
방금까지 절정에 내몰렸던 뜨끈한 내벽이 갑작스러운 침입에 구불거리며 침입자를 밀어냈다. 그러나 어림없다는 듯 그가 허리를 더 깊게 밀어 올렸다. 꾸욱. 꾸우욱. 동그란 선단이 기어코 자궁구와 깊게 맞물렸다. 천장을 향해 치솟은 발끝이 파르르 떨림과 동시에 절정이 그녀의 척추뼈를 핥아 내렸다.
“설명.”
힉힉거리며 절정의 여운에 흠칫흠칫 떨고 있을 때였다. 손을 뻗은 해수가 건반을 두드리듯 그녀의 뺨을 톡톡 간지럽혔다.
“기분 좋은 건 알겠는데, 유월아. 설명해 줘야지.”
“흐읏, 아, 아아……!”
“아기가 착각하잖아. 엄마 따먹힌다고.”
절정으로 흐려진 눈을 하면서도 아기가 걱정됐는지, 유월은 더듬거리며 배로 손을 내렸다. 악몽을 만날까, 두려워하는 아기에게 속삭여 주듯 몇 번이고 사랑해서 그래. 아빠가 엄마를 사랑해서……. 하고 속삭였다.
“잘했어, 유월아.”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듣던 해수가 고개를 비틀어 창백하게 질린 발목에 입술을 눌렀다.
“이제 알려 주자.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상냥한 척 굴고 있으나 음욕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그를 깨달은 유월이 늦게 바르작거렸으나, 이미 늦었다. 거대한 살덩이가 안을 치받기 시작했다.
“아흣, 흐아!”
단단한 성기가 밀려 나갔다가, 한계까지 쿵 밀려 들어왔다. 좆 기둥이 콱 조여드는 내벽을 꾸득거리며 파헤쳤다. 거칠게 안을 두드리고, 짓찧는다. 질 주름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흉흉한 핏줄 다발은 분명한 약탈이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아래는 더욱 축축하게 젖어 들고 있었다.
“유월이 아기는 어디쯤 있을까.”
“해, 해수야, 거기, 응, 너무 깊……!”
“여기쯤 있나? 응?”
헐떡이는 웃음과 함께 두툼한 귀두가 자궁과 꾸욱, 깊게 입 맞췄다. 눈앞이 번쩍 튀고, 보지가 자지를 꽉 베어 물었다. 해수가 난처하다는 듯 웃었다.
“큰일이네. 하아, 아기가 곧 나와야 하는데 이렇게 좁아서는.”
“흐읏, 아, 아으……!”
“아아, 그래도 이렇게 물을 많이 흘리면 나오기는 쉽겠다. 그치?”
아기야. 엄마가 널 위해 물을 싸고 있대. 엄마도 노력하고 있어. 마치 그들의 섹스가 모두 아기를 위한 일인 양, 해수가 상냥히 속삭였다.
그 말에 유월은 고개만 끄덕였다. 자신의 수치보다 아기가 이 사실을 모르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이 섹스가 사랑이기를, 행복하고 귀여운 아기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그를 향해 개처럼 한쪽 다리를 벌리고선 연신 물을 내뿜는 자신은 분명한 쾌락에 젖어 있었다. 이 행위를 정말 사랑이라 여기는 것처럼.
“아흐, 흐익……!”
흥분을 감추지 못한 보지가 또다시 흥분의 잔재를 질금질금 흘려보냈다. 그러나 권해수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좆물로 임신해 배가 불러 있는데도,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는 듯 굵직한 성기를 밀어 넣는다.
“해수야, 나 갔어, 갔는……!”
유월이 헐떡이며 애원했다. 한계까지 닿은 쾌감은 폭력과도 같았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그럼에도 듣지 못한 것처럼 좆 기둥이 더욱 안쪽으로 밀려 들어온다. 이미 배가 불러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또 배부르도록 좆물을 먹이고 싶다는 듯 분명한 목적을 가진 채로.
이건 분명한 식욕이었다.
그리고 난 잡아 먹히는 거야. 배 속의 아이마저도…….
살갗을 타고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창백한 손끝이 더듬거리며 침대를 짚었다. 벗어나기 위해 힘을 준 순간, 곧장 몸이 아래로 이끌렸다.
퍽!
“아아앙!”
반동으로 결합이 더 깊어짐과 동시에 퉁퉁 부은 음핵이 그의 좆 뿌리와 깊게 키스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보짓물을 지렸다.
“쉬야 했네, 우리 유월이.”
“안 돼, 더, 더는, 아, 아앙!”
“아기가 오줌싸도 할 말 없겠다. 그치? 엄마가 오줌싸개니까.”
아니야. 이건. 유월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으나 그런 그녀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가 헐떡이며 웃었다. 애액과 좆물이 철썩거릴 때마다 하얀 포말이 장미꽃잎 같은 보지 위로 연거푸 쌓인다. 절정도 마찬가지였다. 크고 작은 절정이 연신 그녀의 몸을 꿰뚫었다.
“아, 아흐, 흐잇……!”
죽을 것 같았다. 뇌가, 호흡이, 몸이, 제어가 되질 않았다. 소리가 멀어졌다가 사라지고,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가 다시 돌아오길 반복했다.
“하, 씨발…….”
연거푸 이어진 절정으로 쫀득해진 보짓살이 그의 좆을 꽈득꽈득 짓씹었다. 선이 고운 눈매가 일그러지고, 허리를 붙든 팔뚝에 핏대가 솟았다. 허리를 털어 내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쿵. 쿵. 쿵. 들이박는 힘이 강해질 때마다 마찰로 빨갛게 달아오른 보지와 좆 뿌리 사이에 거미줄 같은 포말이 덧대어진다.
폭력적인 쾌감이 쏟아진다. 끊이질 않는다. 그녀를 옭아맨다. 하나가 된다. 천천히 세상이 멀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하읍……!”
그가 고개를 숙여 그대로 그녀에게 키스했다. 혀를 옭아매고, 자신의 숨결을 옭아맴과 동시에 자지와 보지가 빈틈없이 맞물렸다. 기다렸다는 듯 귀두 끝에서 뜨끈한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
숨이, 막혔다. 유월이 팔을 바동거리며 벗어나려 했으나 해수는 놔주지 않았다. 그녀는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절정에 꿰뚫려 파르르 떨어야 했다.
입술이 떨어진 건 한참 후였다. 입과 보지에 만족할 때까지 제 것을 먹여 준 사내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후…….”
땀과 애액으로 젖은 머리칼을 대충 쓸어 올렸다. 성욕을 분출해 탁 트인 시야 속으로 유월이 보였다. 그의 아내는 제 좆을 머금은 채 히극, 끅, 하며 어린아이 같은 신음을 힘겹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절정의 여파 때문인지, 좆 끝이 울컥거리며 내뱉을 때마다 배 속이 꿀꺽거리며 삼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의 입매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역시, 내 말이 맞아.”
그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그가 옴찔거리는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난 네가 내 자식이었어도 똑같이 했을 거야.”
“흐, 흐읏…….”
“그리고 아내로 삼아, 기어이 아이를 낳게 했겠지.”
영원히 떼려야 땔 수 없는 천륜. 그 천륜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자식. 이처럼 완벽한 관계가 또 있을까. 음습한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웃을 때였다.
“흐…….”
돌연 유월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훌쩍이며 눈물을 흘리는가 싶더니, 곧 작은 주먹으로 그의 팔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의 섹스는 폭력적인 편이었기에, 유월이 저를 원망하며 때리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아프지도 않은 주먹을 대꾸 없이 맞아 주던 해수는 힘 빠진 그녀의 손이 제 배를 통, 두드리자 재빨리 손목을 잡아 저지했다.
“배 때리면 안 되지, 유월아.”
“저, 저리 가, 싫어.”
“아기가 아파하잖아. 응?”
“시, 싫어. 흐, 싫어……!”
한데 오늘따라 유월의 거부가 심했다. 그가 유월의 양손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울음과 타액으로 빨개진 얼굴이, 저를 보기 싫다는 듯 외면하자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정유월.”
이윽고 그가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의 본성은 원래 이것이었다는 양, 오싹하리만치 서늘한 음성이었다.
그러자 유월이 흠칫 몸을 떨었다. 몸과 정신에 새겨진 두려움을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닫힌 입매는 여전히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제게 단단히 마음이 상한 듯했다. 어떻게 해야 입을 열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아, 아기…….”
훌쩍이며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기가 들었을 거야.”
“아기가 뭘 듣는데.”
“이, 이상한…… 말을…….”
채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듯 유월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계속 말해 보라는 듯 해수가 눈썹을 치켜세우자 유월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넌 아빠인데, 자꾸 임신이니, 따, 따먹니, 그런 말을 하면, 아기가…….”
“…….”
“아기가…….”
“아기가 보고 배울지도 모른다고?”
느릿하게 제 마음을 꿰뚫는 목소리에 유월은 입을 꾹 다물었다. 위아래, 물을 흘려 놓고 여전히 나올 게 있는지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제야 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무슨 생각을 하나 했더니, 그런 귀여운 생각을 다 하고.
그럴 일은 없었다. 유월과 처음부터 가족으로 만나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이 있기는 했으나, 지금도 썩 만족스러웠다. 임신이니 따먹니. 그런 말을 내뱉은 건 그저 정유월이 수치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게다가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기에 배 속의 생명체는 아직 세포에 불과했으니…….
아니지.
돌연 입가의 웃음이 사라졌다. 정유월은 부모에게 버림받았단 사실에 강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억지로 임신시키고, 둘째까지 가지게 했다. 예상대로 정유월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다. 정유월을 제 곁에 붙여 놓게 된 원인이 역설적으로 정유월을 살게 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권씨 피는 어디 가지 않구나 싶었다.
그러니 피를 타고 흐르는 이 미친 소유욕을 생각하면 완전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가 웃음기 사라진 서늘한 얼굴로 그녀의 동그란 배를 지그시 바라볼 때였다.
“우, 우리 아기잖아…….”
그때였다. 훌쩍이던 유월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 아기지만 해수 네 아기이기도 해.”
“…….”
“그런데 왜 계속 내 아기라고만 해. 왜 자꾸…….”
다시 생각해도 서러운 듯 유월이 히끅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되짚었다. 확실히, 희성을 임신했을 땐 자주 ‘우리 아기’라고 불렀지만, 둘째를 임신했을 땐 노골적으로 ‘네 아기’ 혹은 ‘유월이 아기’하고 부르며 주지시켜 주었다. 네가 허튼 생각을 하는 순간, 배 속의 아이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제 좆물로 생겨난 생명에게 별다른 애착이 없었으니. 방금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를 안다면 아마 유월은 혼절할 터였다.
그러나 자신의 아기가 아니라 ‘우리 아기’임을 주장하며 훌쩍이는 정유월을 본 순간, 제 자식임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음습한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월아.”
그가 다정히 유월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해 주며 말했다.
“그게 싫었어? 우리 아기인데 자꾸 네 아기라고 해서?”
“싫어, 지금도 싫어. 나, 나쁜 말만 하고…….”
정말이었는지 다시 유월이 바르작거리며 제 품을 벗어나려 했다. 어림없다는 듯 해수가 빠르게 잡아채 그녀를 제 품 가득 끌어안았다.
“으응, 미안해. 내가 잘못했네. 임신시켜 놓고 모르는 척 굴어서.”
“흐…….”
“남편 자격 없었다, 그치.”
그가 그녀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술을 눌렀다. 진정하라는 듯 토닥여 주자 거칠었던 숨이 차근차근 안정을 되찾는다. 자신이 정성껏 길들인 결과였다. 어느 상황에서든 자신에게서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설사 그것이 자신이 선물한 구렁텅이라고 하더라도.
“아기라 하지 말고 앞으로 우리 아기라고 할까?”
끄덕끄덕하던 고개가 돌연 멈추었다. 이내 붉은 입술이 천천히 달싹이는가 싶더니.
“아, 아이들 아빠도 해…….”
슬그머니 다른 조건을 덧붙인다. 이런 식으로 요구하면 자신이 들어주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알았어, 알았어. 아이들 아빠 할게.”
그러니 어서 뚝 하라는 듯, 그가 그녀의 어깨와 목덜미에 연신 느릿한 키스를 남겼다. 등도 살살 쓸어 주자 천천히 유월의 울음이 사그라들었다.
고작 이런 말로 안정을 찾는다. 걱정할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자신을 향해 곧장 달려올 수 있도록, 끝까지 답장하지 않은 사내의 말을, 끝까지 믿는다.
아직도 이렇게 순진하면 어쩌자는 건지.
권해수는 그런 아내가 더없이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입술을 찾아 파고들자 거친 정사로 숨을 색색거리면서도 힘겹게 제 혀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그라진 적 없는 자지가 느릿하게 보짓길을 문질렀다. 뒤늦게 알아차린 유월이 바르작거렸으나, 그가 ‘우리 아기에게 다시 한번 알려 주자’는 핑계를 대자, 더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는 가느다란 유월의 발목을 붙잡으며 생각했다.
역시 아이라는 족쇄를 걸어 주길 잘했다고.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그가 다시 좆질을 이어 갔다.
***
전시회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권성가에서 소유 중인 미공개 컬렉션이 대중에 공개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는 무명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었는데, 그것들이 하나같이 호평 일색이었다. 덩달아 예술 비평계에선 권성이 순수미술의 발전에 앞장선다는 말이 자자했다.
그러나 혹자는 현재 권성의 이사 자리에 오른 권해수가, 과거에 있었던 천희영과의 일을 덮기 위해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권해수가 역으로 그녀의 슬럼프를 쥐고 흔든 것은 아니냐면서. 실제로 천희영의 화풍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권해수와 비슷해졌으니, 허무맹랑한 가설은 아니었다.
그를 생각하면 불륜설에 휩싸여 몰락하는 그 순간까지 권해수가 사이코패스라고 외치던 천희영의 발악이 부질없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크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희성이 전시회장의 외형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차에 타기 전만 해도, 희성은 엄마랑 같이 가고 싶다며 울적해했다. 외출은 좋은데, 엄마가 없고 아빠가 있다는 것이 신경 쓰였던 듯했다.
당황한 유월이 어떻게 달래야 하나 고민했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해결되었다.
해수가 “아기가 엄마랑 같이 쉬고 싶대.”라고 덧붙인 것이다. 희성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긍했다.
“아기야, 오빠 형아 다녀올게.”
유월의 배에 딱 달라붙어, 아직 성별을 알 수 없는 동생에게 인사를 남기느라 다소 시간이 소요되긴 했지만. 어쨌든 해수와 함께 무사히 차에 탑승했다.
“도착했습니다.”
그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희성이 기다렸다는 듯 폴짝 뛰어내렸다. 창밖으로 보았음에도 커다란 전시회장에 “와아.” 하고 감탄을 내뱉었다.
“도련님, 뛰지 마세요. 그러다 넘어집니다.”
“빨리 들어가고 싶어요.”
“이사님과 같이 들어가셔야지요.”
비서의 말에 희성이 “아, 맞다!” 하고 해수의 곁으로 다가왔다. 냉큼 달려오는 걸 보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보던 해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얌전히. 달리면 안 돼.”
“네에.”
희성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애석하게도 희성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전시회장 앞, 작은 분수대에서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이 뛰노는 곳을 향해 달려간 것이다.
유월이 신경 써서 차려 입힌 옷이 물에 젖기 전, 경악한 비서가 날렵하게 희성을 낚아챈 덕분에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정희성.”
결국 권해수는 최후의 수단을 썼다.
“아빠 손잡아.”
“…….”
“전시회장에선 놔줄게. 들어갈 때까지만 잡아.”
제한을 걸었음에도 희성은 머뭇거렸다. 그러나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알았는지, 전처럼 울지 않고 얌전히 해수의 손을 잡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시선이 쏟아졌다. 권해수가, 그것도 두 번의 사고를 당해 절름발이가 된 재벌가의 후계자가 아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공식적인 행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들이랑 사이가 안 좋다지 않았어? 성도 다르다던데.”
“어? 아들이야? 딸 아니고?”
“와, 그래도 진짜 닮았다. 어떻게 저렇게 닮냐.”
수군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희성은 하나에 몰두하면 다른 건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었다. 희성이 그림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저, 이사님. 잠시…….”
그때였다. 해수의 등장에 부리나케 달려온 관장이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림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그런데 무명이란 이름으로 전시되어 있기도 하고,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도 종소세 처리를 해 달라고 말씀하시는지라…….”
세금 세탁을 문의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힐끗 희성을 내려다보았다. 눈치 빠른 아이는 어른들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얌전해져 있었다.
그러나 답답한 방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여전히 싫은지, 활발하던 기색이 한풀 꺾여 있었다.
그에 그가 “정희성.” 하고 다시 아이를 불렀다.
“아빠 잠깐 일 다녀와야 하는데.”
“알아요…….”
“다른 데 안 가고 비서 아저씨들이랑 있을 수 있겠어?”
그 말에 희성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눈이 순식간에 반짝거린다.
“네!”
“또 뛰어다니지 말고.”
“네!”
“모르는 사람하고 종알종알 대화도 하지 말고.”
“……네!”
마지막 대답이 조금 느렸던 것 같긴 하나, 해수는 되묻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는 희성의 뒤를, 비서들이 힘겹게 뒤따랐다. 멀어지는 희성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냥 속 시원히 탈세하고 싶다고 말하면 될 것을, 최대한 돌려서 말하는 관장 때문이었다.
결국 그가 ‘세금만 떼고 다시 돌려주는 것. 그리고 또 뭘 원하는지를 명료히 말해라.’ 하고 정리를 해 준 뒤에야 빠르게 끝마칠 수 있었다.
방을 나서며 해수가 힐끗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주말인 데다 방문 자체가 늦었던 지라 어느덧 폐장 시각이었다. 희성이 지루하다며 울상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방을 나섰건만, 보이는 것은 난감한 얼굴의 비서들이었다.
“그, 이사님.”
미간을 좁힌 해수를 향해 비서들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도련님께서…… 안 보이십니다.”
***
깜빡. 희성은 눈을 떴다. 아이 특유의 큰 눈망울이 잠에서 덜 깬 듯 두어 번 크게 깜빡였다.
전시회장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긴 했지만, 얼마 안 가 지루해졌다.
그래서 희성은 잠시 비서들이 한눈판 틈을 타 자리에서 몰래 도망쳤다. 다른 데 갈 생각은 없었다. 조금 더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었을 뿐.
그러다 외진 전시장에서 마음에 쏙 드는 그림들을 발견했다. 요리조리 들여다보니 눈이 무거워졌고, 조금만 쉰다는 것이 깜박 잠들어 버린 것이다.
희성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자신이 들어온 곳은 이미 불이 꺼져 있었다.
문득 옆 짝꿍이 말해 준 무서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혼자 남겨진 아이를 기어코 데려가 버린다는 귀신이.
희성의 몸이 바짝 굳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늘 곁에 가득하던 어른들이 없었다. 기어이 큰 눈동자에 눈물이 그득 고인 순간이었다.
닫혀 있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희성이 흠칫 고개를 들었다.
“아, 아빠…….”
권해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희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디 가면 안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흐…….”
참으려는 듯, 턱에 작은 땅콩을 만들던 희성은 결국 다시 와앙,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자 뒤편에 있던 비서들이 진땀을 흘렸다. 희성이 있었던 곳은 무명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된 곳이었다. 구매 의사를 밝힌 그림이 유독 많은 곳. 잠깐 열어 두었다가 해수의 결정이 끝나는 동안 막아 두었던 곳인데, 하필 그 찰나에 희성이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일찍 문을 닫은 곳이라 생각해 여기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자신들의 불찰로 벌어진 일이다. 뒤편에 있던 비서들이 난감해하며 희성에게 다가가려 하자, 해수가 손을 들어 그들을 저지했다.
“나가 봐요.”
조심스럽게 덧붙이려던 비서들은 다른 말 없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어른들이 사라지자 희성이 눈에 띄게 몸을 움츠렸다.
혼날 걸 알면서도 저지르고 보는 건 엄마를 닮은 건지.
그래도 저 그림들이 천희영에게서 되찾은 자신의 그림이라는 걸 생각하면, 감이라는 게 있어서 이곳에 온 것 같긴 한데.
무심한 얼굴로 한때는 제 그림이었던 것을 바라보던 해수가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정희성.”
부름에도 희성은 말이 없었다. 지그시 아이를 지켜보던 그가 희성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희성은 움찔 떨긴 했으나 피하지 않았다.
“정희성.”
“…….”
“희성아.”
평소에는 잘 들을 수 없는 호칭에 희성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이었다.
“희성이는 아빠가 싫어?”
도리도리.
그건 정말 아니라는 듯, 아이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학교에서 왜 울었어?”
“그건…….”
아이가 작은 입술을 오물거린다. 말하기 힘들다는 뜻이었으나, 아이의 시선은 자신의 왼쪽 다리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아빠가 다리를 저는 게 창피했나.
그런 거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유월에겐 마음 아픈 이유가 되겠지만. 어쨌든 이유를 확인했으니 되었다. 그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아프잖아요…….”
아이의 말이 그를 붙잡았다.
“학교 둘러보려면 계속 움직여야 하는데, 아빠는 다리가 아프니까…….”
“…….”
“아, 아빠 아픈 거 싫어요.”
말하면서도 서러운 듯 눈망울에 큼지막한 눈물이 고였다.
제 일도 아니건만 서럽게 훌쩍이는 모습이 마치 정유월 같았다. 자신이 애착을 가진 유일한 존재, 정유월. 정유월의 아이. 그 아이가 자신을 생각하며 울고 있다. 제가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유월과 함께 있을 때를 제외하면 잘 움직이지 않던 입매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희성아.”
감정 없는 목소리가 부드럽게 바뀌었다. 희성이 홀린 듯 고개를 들었다.
“아빠가 희성이한테만 비밀 알려 줄까?”
“비밀……?”
어머니에게만 다정히 지어 주었던 미소가 자신에게도 지어진다. 희성이 홀린 듯 아빠에게 귀를 가져다 댔다. 눈물로 어른거렸던 눈동자가 점점 크게 뜨였다.
“저, 정말이에요?”
“응. 그러니까 아빠 다리는 걱정 안 해도 돼.”
“하지만…….”
“대신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엄마가 알면 배 속의 아이랑 엄마가 아야 하거든.”
그 말에 희성의 입이 합, 다물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입을 막기까지 한다.
잘했다는 듯 미소 지은 권해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자 저를 따라 폴짝 자리에서 뛰어내린 희성이 익숙하게 제 손을 잡았다.
그가 잡은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지팡이를 쥔 쪽이 아니라 다른 쪽을 잡아야 하는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희성은 배시시 웃을 뿐이었다. 그 순간 아무것도 모르면서 부엉이를 그렸다고 해맑게 웃는 어린 정유월이 겹쳐진다. 제가 임신시킨 존재. 정유월의 족쇄이자 그의 핏줄. 그들의 자식.
우리 아기.
지난밤, 제 아내를 서럽게 울게 만들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그 말을 입에 담는 대신, 반대 손을 들어 희성의 앞머리를 살살 흩뜨려 주었다. 간지럽다는 듯 아이의 까르륵거리는 소리에 희미하지만 권해수의 입매도 조금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
나름 험난한 하루를 보냈던 희성은 저녁을 먹자마자 곯아떨어졌다. 훌쩍이며 잠들었던 잔과 달리 냠냠, 맛있는 소리까지 내면서.
“희성이가 아빠랑 놀아서 정말 재밌었나 봐. 뭐 하고 놀았는지는 절대 안 알려 주던데.”
“…….”
“해수 너도 안 알려 줄 거지?”
유월이 그리 물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이를 바라보며 웃던 유월과 달리, 해수는 희성을 고요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해수야?” 하고 부르자, 그제야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본다. 왜 그렇게 빤히 볼까 생각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
“희성이는 널 닮았어.”
분명 비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는데, 대답 대신 정반대의 말이 돌아왔다. 유월이 처음 듣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날 닮았다고?”
“응. 특히나 웃을 때.”
“어, 아닌데. 나보다는 널 더 닮았어.”
유월이 부정하며 시선을 내렸다. 이것 보라는 듯, 쿨쿨 잘 자고 있는 희성을 바라보았다.
“봐. 피부 하얀 거랑, 눈이랑 코랑. 전부 다 예쁘잖아. 너 닮았는데…….”
“예뻐?”
“응?”
유월이 멈칫하자 해수가 가까이 다가왔다. 어느새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그가 빙그레 웃었다.
“어젠 밉고 싫다면서.”
“그건…….”
“다시 보니까 예뻐, 나?”
그가 얼굴을 가까이하며 달콤히 속삭였다. 잘못 걸렸다. 그의 집요함에 불이 붙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으나, 희성과 닮았다는 말을 꺼낸 이상 무를 수 없었다.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피한 유월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처, 처음 봤을 땐 그렇게 생각했어.”
“…….”
“……움직이는 인형도 있나 싶을 만큼.”
민망했는지 유월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저 스스로 약점을 쥐여 준 건 아닌가 싶어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나도 그랬어.”
생각과는 다른 말에 유월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도 유월이 네가 인형인 줄 알았거든.”
“…….”
“너무 예뻐서.”
인형이 아닌 걸 알고 난 후엔 박제를 고민할 만큼.
유월과 배 속의 아이를 위해 뒷말은 기꺼이 숨긴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는 꼭 이렇게 달콤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곤 했다.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얼굴 위로, 사랑이란 감정을 선명히 덧그렸다. 한 번도 고장 난 적 없는 것처럼.
“……아이들은?”
그에 유월이 홀린 듯 입을 열었다.
“아이들도…… 예뻐?”
해수는 가만히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동그란 배 위에 손을 올린 그녀의 눈동자에 희망이 차 있었다. 오늘의 외출과 부자만의 비밀로 인해, 어쩌면 제 남편이 일반적인 사람처럼 부성애를 깨닫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거듭 자식과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버릇은 과거 때문일까, 아니면 제가 그렇게 가르친 덕분일까. 뭐가 되었든 버릇을 잘못 들였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해수는 말없이 시선을 들어 벽을 바라보았다. 높게 자리 잡은 헌팅 트로피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망치려던 어머니를 잡을 때, 아버지가 함께 잡아 온 것이었다. 아버지는 저것을 직접 달면서 어머니의 죄책감을 유도했다. 네 도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똑똑히 지켜보라는 듯. 자신이 최초로 눈에 익힌 사랑의 형태였다.
“해수야?”
침묵이 불안했는지, 유월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해수가 다시 시선을 내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사랑해.”
“…….”
“사랑하고 있어.”
영원히 숨겨 두려던 자신의 비밀을 타인과 공유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었으니, 어쩌면 그녀가 눈치챌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넘겨주었다. 정유월과 닮은 것이라 생각하니 가능한 일이었으니, 그녀와 닮은 존재에겐 사랑한다는 말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아, 역시.
“이건 사랑이야, 유월아.”
확신을 담은 말에 유월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한 번도 돌려준 적 없던 대답에 놀라면서도,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그는 말 대신 그녀를 끌어안아 주었다. 가르친 대로, 정유월의 안식은 오직 권해수뿐이었으니.
고마워. 고마워, 해수야. 그렇게 속삭이는 그녀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잠든 희성을, 배 속의 아이를, 제 아내를 바라보았다.
오직 정유월을 위해 만든 새장 속에 다른 새들이 채워진다. 그 느낌은 썩 나쁘지 않았으니, 이 세계는 언제까지고 평화로울 것이다.
정유월, 그녀만 제 곁에 있다면.
외전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