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EP0091-0086화-귓가의 속삭임 2
순간 귀를 의심했다.
레오폴트가 준 목걸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
그래.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눈을 뜰 수 없는 것도 전부 그 때문일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루크레치아가 그 자식에게서 받은 물건을 목에 걸고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손끝으로 느껴지는 목줄의 감촉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카엘. 당신에게서 편지를 받고 두 사람을 구할 방법을 한참 생각했어요.”
……편지?
루크레치아, 그게 무슨 소리야….
“두 사람이 로엔덤에게 붙잡혀 위험에 처했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제가 드디어 아카데미 시절 카엘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두 사람을 구할 방법을 모색해봤지만…. 이제 막 돌아온 가문의 힘으론 한계가 있었어요.”
루크레치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결국 카엘이 편지에 적어준 대로 황태자 전하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처음부터 카엘의 말을 들었다면 카엘이 이렇게 되기 전에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루크레치아!
머릿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미친 듯이 외쳤다.
나는 그런 편지를 보내거나 황태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리자드맨들의 습격을 받은 순간부터 나에게 그런 걸 시도할 여유 따윈 없었다.
발테리아에 도착했을 때는 잠시 숨을 돌리기도 전에 배신당해 붙잡혔고, 그대로 엘렌브룩으로 납치됐다.
당연히 루크레치아에게 제대로 연락할 방법이나 시간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나는 혼자 제도에 남겨진 루크레치아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걱정은 단순한 우려로 끝나지 않았다.
레오폴트.
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레오폴트가 나를 사칭해 루크레치아에게 편지를 보낸 게 분명했다.
그 녀석 말고 이런 일을 할 사람은 없었다.
느긋한 미소 뒤에 음흉한 본성을 숨긴 채 나를 사칭하고, 내가 위험하다는 말로 루크레치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유도했겠지.
게다가 우리가 로엔덤에게 붙잡혔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는 건, 볼프람과 레오폴트가 모종의 협력 관계에 있다는 의심까지 들게 했다.
설마….
모든 게 다 레오폴트의 계획이었나?
연회장에서 발테른의 옛 가신들이 엘레노아에게 접근했던 것부터, 리자드맨의 습격, 그리고 우리 둘이 루크레치아와 떨어진 채 로엔덤의 손에 넘어간 것까지….
전부 함정이었던 건가?
나와 엘레노아를 제도에서 떼어놓고 돌아오지 못하게 만든 사이에 레오폴트가 내 안위를 미끼로 루크레치아를….
“카엘.”
루크레치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말했죠?”
그녀가 내 손을 조금 더 세게 붙잡았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저는 모든 걸 바칠 수 있다고요.”
아니야!
루크레치아!
난 그런 뜻으로….
제발 내 목소리를 들어줘.
제발…!
“다행히 당신과 엘레노아를 구할 수 있었어요.”
루크레치아의 목소리가 더욱 떨렸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게 됐으니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내 손을 붙잡은 그녀의 손에는 한 치의 떨림도 없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알게 된다면 자책하지 마세요.”
루크레치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때 얘기했잖아요. 카엘의 곁에 서 있는 걸 선택한 건 저라고.”
그녀의 손이 내 손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 선택에 대가가 있다면 치를 거예요.”
잠시 숨을 고른 그녀가 낮게 덧붙였다.
“그리고 그게 카엘을 구하기 위한 거라면 얼마든지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요.”
또다시 나 때문이었다.
또 나 때문에 루크레치아가 무언가를 희생했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고, 그녀 역시 원하지 않았을 누군가의 품에 안기면서까지….
순간 머릿속에서 몇몇 장면이 번쩍이며 스쳐 지나갔다.
레오폴트와 루크레치아가….
“…….”
이상했다.
분명 머릿속에서 무언가 떠오르려 했는데, 짙은 먹구름이라도 낀 것처럼 형체를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마치 머리가 어딘가 고장이라도 난 것 같았다.
도대체….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 거지?
그때 내 손을 감싸고 있던 온기가 천천히 멀어졌다.
“카엘.”
루크레치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곧 전하를 뵐 시간이라 이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 이름만으로도 머릿속이 다시 뜨거워졌다.
“부디 빨리 깨어나 주세요.”
루크레치아의 목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다음에는….”
잠시 망설이는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루크레치아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드릴게요.”
그녀의 따뜻한 숨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
루크레치아!
아무리 목이 찢어져라 외쳐도 내 목소리는 머릿속에서만 울릴 뿐이었다.
루크레치아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끼이익
곧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방 안이 다시 싸늘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루크레치아는 레오폴트에게 점점 다가가고 있을 것이다.
막아야 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의식만 깨어 있는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피곤한 건지, 머리가 무거워지고 생각도 점차 느려졌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선명하던 분노도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끝내 의식이 다시 깊은 곳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더욱 짙어지는 느낌과 함께, 나는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스윽 스윽
무슨….
무슨 소리지?
가라앉아 있던 의식이 낯선 소리에 천천히 떠올랐다.
혹시나 했지만 여전히 눈앞은 캄캄했고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못한 탓인지 정신이 또렷하지 못했다.
그때 그 이상한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스윽 스윽
그리고 그 소리가 날 때마다 내 자지에서 자극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지만 점점 자극이 더 크게 느껴졌다.
몸이 멀쩡했다면 그 자극에 떨었을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그저 자지가 점점 커지기만 했다.
이 와중에 이건 멀쩡했구나….
“카엘. 이렇게 커졌네요.”
루크레치아의 목소리였다.
순간 몽롱하던 정신이 단숨에 또렷해졌다.
“카엘. 당신의 것처럼 당신도 일어나면 좋을 텐데….”
나도 그러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 당장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다.
“제가 너무 늦게 와서 이렇게 화났나요?”
루크레치아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다녀간 뒤로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네요.”
……일주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싸늘하게 식어 갔다.
그저 잠깐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난 것처럼 느껴졌는데….
자, 잠깐.
그렇다면 루크레치아는 일주일 동안 나를 보러 오지 않고….
“그동안 전하의 저택에 있었어요. 매일 찾아오고 싶었는데….”
그녀는 내 손을 잡아 자신의 목으로 가져갔다.
여전히 그녀의 목에는 가죽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이렇게 목걸이가 걸려 있어서 쉽게 나올 수가 없었어요.”
루크레치아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처음으로 그분의 저택에 방문했던 거였어요. 다행히도 그 분이 당장 도움의 대가를 받으려고 하지 않아서 그동안 카엘을 만나러 왔던 거였는데….”
루크레치아…?
왜 레오폴트를 그분이라고 부르는 거야….
“카엘. 그분의 저택에 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뭔지 아나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루크레치아.
갑자기 왜….
“가장 먼저 목줄을 제대로 차고 있는지 확인 받았어요. 그분의 저택에는 집사장이 한분 계신데 그 분이 점검해요. 혹시라도 일상 생활을 하면서 헐겁게 하진 않았는지, 부끄러워서 풀진 않았는지…. 그분의 상징이 새겨진 목줄은 절대 풀어서 안되니깐요.”
자지에 피가 쏠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옷을 벗어야 해요. 저는 전하의…, 개니까 감히 옷을 입고 있을 수는 없어요.”
루크레치아의 말을 듣고 있으니 머릿속에서 그 장면이 떠올랐다.
“집사장은 크게 제 몸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요. 다만 주위에 있는 병사들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져요. 당장이라도 제 몸을 덮칠 것 같은 그 이글거리는 눈빛들…. 그 눈빛들 앞에서 완전히 벗고 나서야 저택에 입장이 가능해요. 게다가….”
병사들과 집사장이 보는 앞에서 옷을 한꺼풀씩 벗기 시작하는 루크레치아, 그리고 그녀를 눈으로 덮칠 듯 쳐다보는 병사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하나둘씩 벗고 던지자 그녀의 창백한 피부를 감싸고 있는 순백의 속옷이 나오지만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완전히 벗어던졌다.
“그렇게 한꺼풀씩 벗을때마다 한마디씩 던져요. 카엘. 그 말들은 차마 말해주고 싶지 않네요. 너무나도 부끄럽고….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말들이라….”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천박하고 음란한 말들이 그녀에게 쏟아지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게 알몸이 된 다음 몸수색을 할 차례에요. 카엘. 과연 그걸 누가 할까요…?”
그녀의 질문에 내 머릿속 상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쳐다보던 병사들이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알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가슴을 들춰보기도 하고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허벅지를 만지기도 했다.
“처음엔 정말로 몸수색을 하는 것처럼 만지기 시작하는데, 점차 더 깊숙한 곳으로 손을 넣어요. 그러니까 처음엔 허벅지를 만지던 손이 점차 올라와 제 음부 주위를 쓰다듬어요. 그 다음…. 가슴을 꽉 쥐어버리는데…. 매번 터질 것처럼 꽉…. 아주 꽈악….”
병사들의 손짓이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단순히 만지는 게 아니라 주무르기 시작했고 그녀의 가슴이 그들의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왔다.
“특히 개중에는 제 약점을 마구 짓이기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때마다 저는 꼴사납게 가버리면서…, 애…, 애액을 쏟아내요.”
루크레치아는 부끄럽다는 듯,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렇게 그들에게 한껏 희롱당해 몸이 잔뜩 달아오른 상태로 저택에 들어가죠. 그 다음….”
그 다음…?
“드디어 주인님을 마주할 시간…, 이랍니다.”
자지가 터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