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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3화. 개척촌


제국이 영토를 넓히는 방법은 보통 두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는 발테른 공국 같은 인간들의 국가나 영지를 정복하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이종족의 영토나 마물의 구역을 개척하는 식으로 확장되었다. 제국의 영토 대부분이 이 개척을 통해 넓어졌다. ​ 이종족과 마물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가장 확실한 기준은 여성의 존재였다. 엘프나 드워프처럼 흔히 알려진 이종족은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며, 서로의 생식 행위를 통해 번식한다. 반면 마물은 오롯이 남성 개체만 존재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번석에 타 종족의 여성을 이용한다. 정착지를 공격하고 종족의 남성들을 죽이고 여성들을 데려가 자신들의 씨앗을 품게 한다. ​ 제국은 그런 마물들이 있는 구역들을 점령하고 개척한다. 그리고 인구 포화 상태인 제국의 중심부의 빈민이나 혹은 새로운 땅을 얻기 원하는 자들을 개척한 영토로 보냈다. 아무리 개척해도 막상 그곳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언젠간 다시 마물이 돌아오고 땅은 황폐해진다. 그렇기에 영토를 유지하려면 마을을 만들고 사람을 보내고 도로를 연결하고 치안을 지킬 자들을 파견해야 한다. ​ 그런 연유로 대다수의 개척촌은 마물들의 영역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항시 마물의 습격에 시달렸고 간혹 아예 마을이 통째로 마물에게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 자체적으로 어느정도의 무력을 보유하거나, 아니면 제국 기사를 통해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다. ​ 이번에 우리에게 들어온 의뢰도 그런 개척촌에서 보낸 것이었다. 전달된 내용은 단순했다. 마을 여성들의 실종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 "일단은 자세한 내용을 직접 들어봐야겠지?" ​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이런 개척촌의 의뢰는 적혀 있는 내용과 실제 상황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시시각각 마물의 위협에 시달리는 곳이기에 우리가 가는 중에도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몰랐다. 다그락 다그락  말발굽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개척촌은 상당히 외진 곳이라 마차를 타고 갈 수도 없었고, 말을 타고 가야만 했다. 두 사람은 비록 몰락했어도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서 승마에 대한 기술은 당연히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평민인 나는 전혀 아니었는데, 가뜩이나 비싼 말 유지비를 제국이 모두 감당해줄 수 없었기에 기사 아카데미에서도 따로 가르치진 않았다. ​ 그 덕에 나는 엘레노아 앞에 같이 타고 있었다. 루크레치아는 태생적으로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같이 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 "카엘구운~" ​ 갑자기 내 귓가에 말꼬리를 늘리며 간드러지게 부르는 엘레노아의 부름에, 나는 나도 모르게 괜히 몸이 뻣뻣해졌다. ​ "편하게 몸 기대라니까…? 그렇게 꼿꼿하게 허리 세우고만 있으면 몸에 안좋아." "흐흠…. 하지만 엘레노어" "나참 뭐가 그렇게 부끄럽다는건데…. 자 이리오세요." ​ 나는 엘레노아의 말에 한 번 루크레치아를 쳐다봤다. 그녀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말을 타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몸에 힘을 풀고 엘레노아의 몸에 기댔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커다란 가슴에 기댔다. 비록 기사 정복을 입어 목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빳빳했지만, 묘하게 부드러운 쿠션감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혀야만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엘레노아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놀리기 바빴다. ​ 그렇게 한동안 말을 타고 황무지를 가로질렀다. 군데군데 이정표로 세워둔 푯말이나 혹은 돌무더기들로 거리와 위치를 가늠했다. 그리고 곧 빈약한 목책…, 사실상 거의 울타리라고 부르는 게 맞을 정도로 빈약한 방어 시설을 가진 정착촌에 도착했다. 벽 근처에는 해자라고 파둔 구덩이들이 있었는데, 그리 깊어 보이진 않았다. 우리가 나타나자 목책 뒤에 있는 망루에 서 있던 인원들이 분주해지는 게 느껴졌다. 곧 빈약한 무장을 한 사람들이 목책 위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고, 초조한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 "그, 그대들은 누구인가!" ​ 그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노인이 외쳤다. 떨리는 목소리에 낯선자 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루크레치아가 말을 몰고 조금 더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품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양피지엔 이들이 의뢰한 내용과 우리의 신원을 보증하는 도장이 하나 찍혀 있을 것이다. ​ "우린 그대들의 의뢰를 받아 도우러 온 제국 기사다. 무장을 내려놓고 문을 열도록." "그, 글씨가 안 보이네! 우리가 믿을 수 있게 말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와주게!" 제국 기사라는 말에 그들의 어조가 조금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경계심은 가득했다. 가끔 제국 기사들을 사칭하여 정착촌을 약탈하거나 학살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경계심은 얼핏 당연한 것이었다.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일이었다. 루크레치아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봤다. 나와 엘레노아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곧 루크레치아는 말에서 내려 목책에 가까이 다가갔다. ​ "오오…." ​ 그녀가 목책에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의 외모를 본 젊은 마을 남성들이 탄성을 질렀다. 방금 전까지 경계하던 자들의 자세가 어느새 흐트러져 있었다. "보이나?" ​ 한동안 그들의 시선을 지켜보던 루크레치아는 노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제서야 노인은 정신을 차리고 종이를 유심히 바라봤다. ​ "어흠... 얼른 문을 열어라!" ​ 노인이 안쪽을 바라보며 크게 외치자 곧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 문이 열렸다. 그제서야 엘레노아와 나도 말에서 내려 루크레치아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목책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 나는 그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퀭한 눈과 허름한 옷들. 개척촌들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식량 상태나 물자가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눈빛은 단순히 경계하는 게 아니라 묘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 간간히 마을 청년들의 불순한 눈빛이 내 연인들의 몸 위로 쏟아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되뇌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하루에도 수십 번은 더 저 불결한 눈빛과 싸워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그녀들도 딱히 그런 걸 원하지 않았고. "기사분들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 마을의 촌장입니다." 목책 위에서 소리 치던 노인이 다가와 말했다. ​보통의 개척촌은 가장 연장자가 촌장을 맡는 게 보통이긴 했다. "일단 제 집으로 가시지요." 촌장은 앞장 섰다. 그리곤 주위에 지팡이를 휘두르며 몰려든 사람들을 해산시켰다. 촌장의 집은 마을 정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다른 집들과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크기만큼은 조금 더 컸다. 집으로 따라 들어가니 촌장의 부인이 우리에게 마실 것을 가져왔다. ​ "인근에서 나는 약초로 만든 물입니다." ​ 촌장은 허허 웃으며 권했다. 우리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많은 어려움이 느껴졌다. 비록 제국 기사의 대다수가 평민이긴 해도, 가끔은 몰락한 귀족들도 있었다. 그리고 제국 기사의 무력이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면 평민의 위치에서 편하게 생각하기엔 어려운 존재들이었다. ​ "으음.." ​ 그녀들은 나무잔을 들고 한모금씩 마셨다. 조금은 쿱쿱한 냄새와 쓴 맛이 나는 묘한 물이었다. 다들 한모금 마신 뒤로는 두번 다시 손을 대지 않았다. ​"저희가 들은 정보는 마물이 마을의 여성들을 납치했다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내가 파티의 리더로서 가장 먼저 촌장에게 물었다. "으음…. 맞습니다. 거의 한 달 전에 한 명이 사라진 뒤로 오늘까지 거의 10명 넘게 사라졌습니다." ​ 촌장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 한 달 전에 첫 실종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나무꾼의 딸이 아빠를 찾기 위해 인근 숲으로 따라 들어갔다가 실종된 것으로, 처음에는 당연히 숲으로 들어갔기에 스스로 위험을 자처한 부분이라 다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밤중에 실종되거나, 다 같이 밭에 일을 하러 간 순간 사라지기도 했다. 아무리 불침번을 세워도 소용없었다. 결국 여성들을 같은 집에 모두 몰아넣어서야 간신히 멈췄다. 하지만 평생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그들은 제국 기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렇게 우리 일행이 이곳으로 왔다. ​ "일단 집에서 실종된 곳으로 안내해주시죠" ​ 노인은 곧 우리를 허름한 집 중 한 곳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남편과 함께 이곳에 정착했으나 남편이 먼저 병으로 죽고 혼자 살아가던 과부의 집이었다. 그 탓에 마을 안에서 실종됐음에도 한참 동안 몰랐다. ​ "기사님들 또 도와드릴게 있습니까?" "아뇨. 일단 저희들이 좀 살펴보겠습니다." ​ 촌장은 고개를 끄덕이곤 집에서 나갔다. 그가 나가자 우리 세 사람은 텅 빈 집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 “후배님 의견은 어떻습니까?” ​ 루크레치아의 질문에 나는 옅은 침음을 내며 입을 열었다. ​ "일단 마물이라고 단정 짓기엔 조금 어려워. 처음에 의뢰를 받아들였을땐 당연히 마물들이 납치해간거라 생각했는데…." ​ 마물들이 번식하기 위해 택한 가장 편한 방법은 개개인의 전투력이 떨어지다못해 거의 전무한 수준인 인간 여성을 납치하는 것이었다. ​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마물 코빼기도 보지 못했고 여자들은 계속 실종되었어." “다만 한곳에 몰아넣은 뒤로는 추가 실종이 없었습니다.” "일단 조금 더 뭐라도 찾아봐야겠는데. 쉽게 끝날줄 알았는데…." "자자. 그럼 일단 이 집부터 샅샅히 뒤져보도록 하죠!" ​ 엘레노아의 말과 함께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가장 먼저 다락방부터 살펴봤다. 마물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은 빛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어둠 속에 있는 걸 좋아하니, 혹시라도 마물이 숨어 있다면 이곳에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락방은 꿉꿉한 먼지 냄새만 날 뿐 별다른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 별다른 소득 없이 다락방에서 내려온 카엘은 부엌쪽으로 향했다. 식탁으로 보이는 탁자 너머 위로 금발이 삐져나온게 보였다. ​ "루크레치아?" ​ 나는 금발의 주인을 부르며 탁자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한쪽 무릎을 대고 쪼그려 앉은 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 "뭐라도 발견한거야?" “네, 후배님. 마물의 체액으로 보입니다……. ​ 루크레치아는 나무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무 바닥에 약간 누리끼리한 액체 덩어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다. ​ "으음…, 뭐지?" ​ 내가 다가가려는 순간, 루크레치아가 손을 뻗어 그 액체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흰 장갑을 끼고 있어서 맨 피부는 아니었으나, 딱 봐도 더러워 보이는 액체를 서슴없이 만지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순간 움찔했다. 루크레치아는 손가락에서 찐득하게 떨어지는 액체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바라보다가 살짝 코에 가까이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 “아까 마신 차와 냄새가 비슷합니다.” "차?" ​ 그녀의 말에 아까 마셨던 이상한 맛의 차가 떠올랐는지, 나는 살짝 부르르 떨었다. 두 번 다시 먹기 싫은 맛이었다. 우리 앞에 있던 촌장은 홀짝홀짝 잘도 마시곤 했지만……. ​ "루크레치아 그럼 이제……." 그 정도면 충분하다, 라고 내가 말하려는 순간 루크레치아가 살짝 혀를 내밀었다. 그 순간 나는 왠지 나도 모르게 몸이 살짝 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저 평범하게 혀를 내밀고 있는 모습인데, 그 혀가 점차 손가락에 묻은 액체로 다가가는 모습은 참으로 묘했다. 누리끼리한 색과 묘한 점성이 괜스레 나로 하여금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다. ​ '왜…, 왜이러지….' ​ 나 스스로도 의문이 생길 내면의 고민을 마주하는 사이, 루크레치아는 혀로 손가락을 핥았다. 핑크빛이 감도는 부드러운 혀가 딱딱한 손가락에 눌린 채, 흰 장갑 위에 묻어 있는 누런 액을 쓸어갔다. ​ "으음…." ​ 루크레치아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가 침을 뱉었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 ​ "후배님?" "어…. 어? 루크레치아?" “엘레노아에게 가죠. 마물입니다. 고블린처럼 체구가 작은 종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 루크레치아는 그렇게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을 수색 중일 엘레노아를 찾아 부엌을 나갔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바닥에 있는 누런 액을 바라보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루크레치아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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