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EP078-외전-결혼 (9)
아침 9시.
아직은 조금 이른 오전.
나처럼 휴가를 나온 사람이라면 굳이 침대에서 일어날 필요 없이 조금 더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해도 될 때지만….
“…….”
해변으로 나왔다.
약속… 아니, 약속을 한 건 아니다.
‘전… 내일 아침 일찍, 사람들 없을 때 바닷가에 나가려고요. 9시쯤…?’
“…하아.”
미치겠군.
이런 시간부터 뭘 기대하고 있는 거지? 나는, 대체….
“…지부장님?”
“…….”
“일찍 나오셨네요? 바닷가.”
“…승윤 씨는 어디에 있지?”
“오빠는 아직 객실에 있어요. 아침잠이 많거든요 오빠…. 그래서 조금만 더 자고 나올 걸요?”
헤이즈.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 옆, 파라솔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는 헤이즈.
새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지만, 흐릿하게 안에 입은 수영복이 비쳐서 보일 것 같기도 하다.
“수영… 하실 거예요?”
“…….”
“아, 맞다. 어제 말씀드린 수영복, 이 아래에 입고 나왔는데.”
“…그래서?”
“…….”
대답 대신 나를 올려다보면서 살짝 웃는 헤이즈.
헤이즈는… 변했다.
하지만 어디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변했는지 정확하게 분석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내 취향, 내 욕망에 얼추 들어맞는 방향으로 변했다는 거다.
“아직 오빠도 본 적 없거든요. 이런 스타일은 처음이라서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
“…….”
“…겉옷 벗어.”
“…♡”
헤이즈는 내 요구를 거스르지 않는다.
순종적으로 셔츠 단추를 톡, 풀고, 다시 풀고… 전부 다 풀어낸 다음에 손으로 셔츠자락을 잡아, 젖힌다.
몸을 거의 가려주지 않는 검은색 슬링샷이댜.
“…어때요?”
“…….”
“마음에… 드세요?”
“…내 마음에 들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죠. 지부장님이 흥분해야… 오빠가 기분 좋아질 수 있는데.”
“그건… 핑계다.”
“어젯밤에도 오빠, 진짜 기분 좋아하면서 세 번이나 쌌어요.”
“…….”
세 번.
반면 내가 헤이즈와 살을 맞대며 사용한 콘돔은 여섯 개.
본능적인 우월감이 차올라 나를 고양시킨다.
게다가 눈 앞에 있는 이 암컷… 그리고 이 수영복.
발기는 막을 수 없는 수순이다.
“…발기, 하셨네요.”
“…….”
“아까부터 저, 여기 앉아 있었는데… 이쪽으로는 사람이 거의 오지 않더라고요.”
헤이즈가 자신이 앉아있는 돗자리의 옆, 벽처럼 세워진 처다란 바위를 가리키면서 말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오빠, 보통 두 번 정도 싸면 만족하는데. 어제는 세 번이나 쌌어요.”
“…….”
“제가 거짓말을 하고 지부장님이랑… 하고 왔다고 하니까.”
“…그건 옳지 않다.”
“그러면서 오빠는 계속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계속? 어디까지 계속?
아, 그래. 그 선을 정하는 건… 이 암컷. 헤이즈다.
“지부장님이 싫다면,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일어나.”
“…….”
“따라와.”
남의 여자를 탐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모조리 흥분에 흡수될 뿐이다.
배덕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들어진 감정은 전부 아랫도리로 쏠려, 이성을 가볍게 짓누른다.
바위 뒤, 그늘 아래로 들어오자마자 내 손이 움직인다.
이번에도 손이 멋대로 움직인 건가? 아니면 내 의지로 손을 내밀어서 헤이즈의 가슴을 움켜쥔 건가?
은은하게 느껴지는 달콤한 향수의 잔향만이 선명하다.
“쉿….”
“…….”
가슴을 움켜쥔 내 손을 잡지만, 떼어내기보다는 오히려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헤이즈.
한쪽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리고 소리를 죽여야 한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렇게 뻔뻔한 여자였나, 헤이즈? 네가?
너는 변했다. 지금도 변하고 있다.
…내 취향으로.
“곧, 오빠… 나오거든요.”
“…….”
“시간… 별로 없는데.”
“…무릎 꿇어.”
“…♡”
그대로 수영복 바지를 젖히고 자지를 꺼냈다.
이미 준비를 끝내고 입을 벌리고 있는 헤이즈의 머리를 붙잡은 뒤, 망설임 없이 허리를 앞으로 처박아버린다.
“으웁, 그, 읍…♡ 으, 븝…♡”
“…….”
더스트에게도 종종 입으로 처리를 해달라는 요구를 하곤 했지만, 이건….
…비교하는 것부터 미안할 정도로 기분 좋은 구멍이다.
본격적으로 이 좁고 미끈거리는, 말캉한 혀가 살살 움직이며 자지를 핥아주는 구멍으로 자지를 처박아대려던 그때.
“어라… 여기 맞는데. 돗자리도 우리 거고….”
“…….”
바위 뒤에서 승윤 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찔한 흥분에 압도되어 짓눌렸던 이성이 간신히 고개를 들어 한 마디를 뱉는다.
이대로 들키면 너는 물론 헤이즈까지 큰일이 나는 거라고.
일반인을 상대로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
하지만 그런 이성의 외침은… 이내, 제 쪽에서 먼저 고개를 흔들면서 끈적하게 자지를 빨아대는 헤이즈의 입이 주는 쾌감에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
이 암컷을 저 열등한 일반인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지금 당장 이 년의 뱃속에 내 씨앗을 가득 쏟아낸 다음에, 그것이 소화되는 동안 연인의 옆에 머무르게 하는 것도 좋겠다.
이 탐스러운 몸이 누구의 것인지 확실하게 만드는 거다.
“쮸브웁-♡ 으웁, 웁-♡ 쮸우읍, 으움…♡”
“…….”
바위 너머에서 돗자리에 승윤 씨가 앉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에도 헤이즈는… 머리를 계속해서 움직인다.
조금은 느리게. 하지만 평소처럼 적극적으로, 입술을 오므리고 혀를 써가며… 목을 벌려 끝까지 자지를 삼킨다.
“그읍, 으, 읍…♡”
“음?”
“…….”
나는 무엇을, 어째서 망설이고 있는 거지.
이미 너도 선을 넘은 거나 마찬가지다, 매튜 앤더슨.
즐겨.
뷰르르르르르릇-♡ 뷰우우웃-♡
“…♡”
꼴까악-♡ 꼴까악-♡
***
“…오빠.”
“음?”
은지의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내 뒤쪽에서 은지와 매튜 씨가 같이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은지는… 조금 숨이 가빠 보인다.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는 와중에도 땀으로 젖은 머리칼이 목덜미에 달라붙은 모습이 눈에 띈다.
아직 아무런 얘기도 듣지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린다.
“오빠 기다리다가… 우연히 매튜 씨랑 마주쳐서 얘기 좀 하다가 왔어.”
“어… 어. 얘기….”
“…봤어?”
“응?”
“…아니야, 오빠.”
싱긋 웃으면서 내 옆으로 다가와 돗자리에 앉는 은지.
매튜 씨는 아무 말없이 목례를 하고는, 반대편 바닷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간다.
“…….”
“오빠.”
“…응?”
새로 샀다던 은지의 수영복은 와이셔츠에 덮여 잘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바라보면 뭔가 비쳐서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 어깨에 고개를 살짝 기대면서 팔을 살포시 껴안는 은지가 내 관심을 차지한다.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에 맞춰 귓가에 스며드는 나긋나긋한 목소리.
“오늘도… 어젯밤처럼, 오빠가 기분 좋아질 수 있게 해줄게. 망상이 나올 틈도 없게.”
“…….”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어젯밤에는 망상이 올라오지 않았음에도, 콘돔 두 박스를 써가며 매튜 씨에게 따먹히고 온 은지의 이야기에 세 번이나 사정을 해버렸으니.
그리고….
지금, 귓가에서 속삭이는 은지의 입이 열릴 때마다 느껴지는 정액의 비릿햔 향기 때문에.
“나, 오늘도 열심히 해볼 테니까. 기대… 해줄거지?”
“…응.”
“…♡”
어딘가 어긋나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나는….
그런 불안함보다 훨씬 크게 심장을 두드리는 기대, 흥분, 배덕감, 괴로움, 그 모든 것에 결정을 맡기기로 한다.
여전히 은지는… 사랑스러우니까.
***
매튜 씨의 비서가 된 지는 이제 겨우 일주일이 좀 넘은 수준이지만….
히어로 데뷔를 한 뒤로는 옆에서 쭉 보기도 했고,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예전부터 알기도 했고.
더스트 언니가 왜 매튜 씨한테 관심이 있었는 지, 조금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해.
물론 나는 오빠가 더 좋아. 당연히.
“안녕하세요, 지부장님.”
“…….”
“여기 호텔 레스토랑… 꽤 비싸 보여요. 정말 사주시는 거예요? 각자 계산해도 되는데.”
“…앉아.”
“…♡”
지난번에 매튜 씨랑 사교계 모임에 참석했을 때.
물론 발코니에서 두 번이나 질내 사정 당해서… 자궁 가득 매튜 씨의 정액을 채운 채로 다니느라 잘 집중하지 못한 건 맞지만.
그때 매튜 씨가 소개시켜준 사람들, 다들 뭔가 대단한 사람들 같았어.
그리고 나도, 이제 S급 히어로니까 그런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들었고.
“그런데 왜 오빠는 안부르고 저만 부르셨어요?”
“…….”
“네?”
더스트 언니가 남겨둔 문서를 계속 읽어보니까, 매튜 씨는 인내심이 강해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소유욕이나 과시욕, 독점욕… 아무튼 그런 욕심이 큰 사람이라고 하더라?
“있잖아요, 지부장님.”
“…말해.”
“기사 보셨어요? 저랑… 지부장님이 같이 호텔 들어가는 사진, 찍혔나봐요.”
“…….”
“그것도, 호텔 로비에서… 지부장님이 제 엉덩이, 꽈-악 붙잡고 있는 사진으로.”
“…….”
더스트 언니는 똑똑한 사람 같아.
매튜 씨의 정의감이 욕망이랑 뒤섞여서, 도발하면 응징하고 싶어하는 성향으로 나타났다는 것도 알려주고.
아… 그러다가 결국엔 배신한 거니까, 멍청한 건가?
“신인 S급 히어로의 연인은 은퇴한 영웅? 막 그런 제목들로 나오던데….”
“…….”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럴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오빠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오빠랑 헤어지게 됐더라면.
그대로… 매튜 씨의 여자가 됐을 것 같아.
그야 매튜 씨는… 대단하잖아?
아, 더스트 언니는 이럴 때 ‘우월하다’는 표현을 쓰면 매튜 씨가 좋아한다고 했지?
“일반인과 연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 오빠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그랬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이미 사진들도 잔뜩 찍혔고… 전화도 엄청 오고 있거든요. 지부장님도 그렇죠?”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오빠.
오늘도 오빠가 기분 좋아해줄 얘기들, 많이 만들어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은지는… 여전히 오빠를 그 누구보다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헤이즈는… 매튜 앤더슨의 여자다.”
“…….”
“…이렇게 공개하는 건 어때요? 겉으로만.”
“겉으로만.”
“네. 겉으로만. 속은… 저랑, 매튜 씨랑, 오빠만 알게.”
역시 더스트 언니야.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흥분하실 거라는 강조된 메모.
저렇게 식탁보를 움켜쥔 채로 부들거리며 떨리는 커다란 주먹을 보니까….
사실인 것 같네…♡